폭염보다 더 참기 힘든 것 [뉴스룸에서]
김동훈 | 전국부장
역대급 폭염이다. 전국이 ‘최장 열대야’ 신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30년간 역대 1위 자리를 지키던 ‘20세기 최악의 폭염’ 1994년 기록도 가뿐히 넘어섰다. 더위가 마법처럼 사라진다는 ‘처서 매직’도 없었고, 9월이 코앞인데도 더위는 꺾일 줄 모른다.
아침에 출근하면 받아보는 ‘행정안전부 폭염 상황보고’도 연일 최고치다. 올여름 누적 온열질환자는 3천명을 훌쩍 넘어섰고, 사망자도 무려 30명이다. 100만마리가 넘는 가축이 폐사했고, 양식 피해도 3천만마리를 바라본다. 그런데 폭염보다 더 우리를 ‘열받게’ 하는 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폭염 속 안타까운 사건·사고들이다.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일곱. 1996년 10월생이다. 키 180㎝, 몸무게 75㎏의 건장한 체격으로 육군 현역 복무를 마칠 만큼 건강했다. 그는 에어컨 설치 기사였다. 그 전엔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일을 했다. 지난 13일 폭염 속 전남 장성의 한 학교 급식실에서 온열질환 증상으로 쓰러졌다. 출근 이틀 만이었다. 당시 장성의 낮 최고 기온은 34.4도. 그러나 작업 공간엔 선풍기 2대뿐이었다.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헛소리를 하고 바깥으로 나가 구토를 한 뒤 화단에 쓰러졌다. 그런데 동료들은 그를 1시간이나 방치했다. 팀장은 쓰러진 그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어머니에게 보냈다. “위치를 알려줄 테니 애를 데려가라”고 했다. 어머니가 재촉하고 나서야 119에 신고했지만 끝내 숨졌다. 사망 당시 그의 체온은 40도가 넘어 ‘측정 불가’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팔과 발이 불에 탄 것처럼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며 통곡했다.
체감 온도 35도를 넘으면 시원한 물과 그늘 휴식처 등을 제공하고 매시간 15분 휴식을 해야 한다는 고용노동부 폭염 대응 지침이 있다. 이 지침만 제대로 지켰어도, 그보다 그가 쓰러지자마자 119구급대만 불렀어도…. 유족들로선 생각할수록 땅을 칠 노릇이다.
그는 지적장애 2급이다. 14년 동안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다가 한달 전 퇴원했다. 그 한달 동안 네번이나 실종될 만큼 주위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했다. 그는 새벽녘 파출소 마당에 주차돼 있던 순찰차 뒷문을 열고 들어갔고, 36시간 만에 주검으로 나왔다. 지난 16일 경남 하동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섭씨 35도에서 실외에 4시간만 주차해도 차 안 실내 온도는 50도를 훌쩍 넘는다. 그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처지와 같았다. 순찰차 안에서 탈출하려고 얼마나 절박하게 몸부림쳤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의 아버지는 17일 아침에 이 파출소를 찾아가 딸이 실종됐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공교롭게도 그를 찾으러 출동하려고 순찰차 문을 열었다. 주차한 지 무려 45시간 만이었다. 뒷좌석의 부패한 냄새를 맡고서야 그를 발견했다. 순찰차 문만 잠갔어도, 근무교대 때 순찰차를 점검만 했어도, 기본 매뉴얼만 지켰어도 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803호에 갇힌 딸은 엄마와 마지막 11초 동안 통화했다. “5분 뒤면 숨을 못 쉴 거 같다”는 말을 남기고 결국 아빠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807호 남녀 투숙객은 에어매트 위로 몸을 던졌다. 남성은 연기에 질식해 의식을 잃은 여성을 먼저 창밖으로 내보냈다.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가장자리에 떨어진 여성도, 뒤집힌 매트 위에 떨어진 남성도 결국 숨졌다.
경기도 부천의 한 호텔에서 일어난 화재도 막을 수 있었던 어이없는 참사다. 한 전문가는 화재 원인으로 “폭염 속 연일 가동한 에어컨”을 꼽았고, 합동 감식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810호 객실 에어컨에선 불똥이 침대 위로 튀었다고 전해진다. 재빨리 불티부터 제거했다면, 아니 곧바로 화재 신고부터 했다면, 810호 객실 문만이라도 닫혀 있었다면,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면, 에어매트가 뒤집히지만 않았다면, 고가사다리가 진입할 수 있었다면 애꿎은 7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20대 에어컨 기사도, 40대 장애 여성도, 부천 호텔의 애꿎은 희생자들도 안타까운 죽음 앞에 끝없는 ‘만약에’만 공허하게 맴돈다. 이 여름, 역대급 폭염보다 참을 수 없는 건 기본 지침과 수칙만 지켰다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그러나 막지 못한 허망한 죽음 앞의 슬픔과 분노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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