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물어야 할 의무 [세상읽기]

한겨레 2024. 8. 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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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헌법 제7조 제1항이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는 것일까? '책임'과 관련된 의미의 영어 단어를 써보면 '어떻게'에 대해 좀 더 쉽게 짐작을 할 수 있다.

공무원의 책임은 국민이 묻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행동)만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과 무관하며, 권한 남용이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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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발언을 마친 뒤 배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공무원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헌법 제7조 제1항이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는 것일까? ‘책임’과 관련된 의미의 영어 단어를 써보면 ‘어떻게’에 대해 좀 더 쉽게 짐작을 할 수 있다. 리스폰시블(responsible), 어카운터블(accountable), 앤서러블(answerable). 모두 책임을 진다는 의미의 형용사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의 말이나 행위가 선행해야 의미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묻거나 요구했을 때, 반응하거나 설명하거나 답을 한다는 의미다. 공무원의 책임은 국민이 묻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행동)만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과 무관하며, 권한 남용이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일 때가 많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따르면, 대통령이 조만간 국정 브리핑을 또 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지난 6월 국정 브리핑에서 ‘포항 앞바다 석유 매장 가능성’을 던져두고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떴고, 에너지 정책 주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쏟아지는 질문에 ‘대통령이 결정한 사안, 해당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우왕좌왕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래서 대통령은, 산업부는 그 뒤 ‘세계적인 전문가가 진단한 최대 140억배럴에 이르는 석유와 가스’에 대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19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대통령은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에 대해 말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에 대해 언급했다. 그래서, 국가를 수호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을 조사하고 수사해서 적법한 제재를 가해야 하는 주무 부서 공무원들은, 그 이후 무엇을 했는가?

대통령이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하면 국민은 당연히 ‘그래서?’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반국가세력이 암약하고 있다’고 말해도 ‘그래서?’라고 물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석유를 파내고 반국가세력을 소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일 하라고 월급 주고 있으니 묻는 게 당연하고, 공무원인 그는 답하는 것이 당연해야 한다. 이 정부에서 대통령과 주요 공직자들의 말의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져, ‘이번에도 그냥 해보는 소리였나 보다’라고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냥 해보는 소리’라면 그것에 대해서조차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국정 브리핑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의대 증원’ 정책이 각 의과대학의 혼란을 넘어 전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실패를 인정하는가? ‘의료 혼란이 심각하지 않으며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데 근거가 무엇인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사람을 고용노동부 장관에 지명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사람을 통해 헌법에 부합하는 노동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방법이 무엇인가?

‘일제 시대 선조들 국적은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독도가 분쟁지역’이라고 발언하고 자신의 행위가 왜 문제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전 국방부 장관이자 현 국가안보실 실장, ‘1945년 광복’을 인정하지 않거나 못하는 독립기념관장, ‘건국절 논란 때문에 몇번째 광복절인지 답할 수 없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국가안보실 차장을 데리고 어떻게 ‘영토 보전과 헌법 수호의 책무’를 이행해나갈 것인가?

이동관, 김홍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통해 일관되게 추진했던 정책이 법원의 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지금에도, 기존 정책을 계속 추진해나갈 생각인가? 대통령이 말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이자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을 하는 주체가 문화방송(MBC)이라고 판단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가? 그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가?

제대로 물어야 한다. 끝까지 잊지 않고 물어야 한다. 그가 혹은 그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답을 내놓기를 기대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런 정부를 만들어낸 엔(n)분의 1의 책임을 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가 잊지 않고 다음에는 이런 정부를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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