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2024] 거제·고성에서 만난 조류와 뒤얽힌 공룡의 흔적…"대단한 지질학적 가치"
26일 찾은 거제 사등면 청곡리 해안가에는 바다 내음이 가득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해안가에는 따개비와 해초가 잔뜩 낀 미끄러운 바위들이 바다와 산의 경계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낮은 자세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바위길을 따라 7분 정도 걷다 보면 이윽고 해수에 침식된 단층 지형에 눈에 들어온다. 바닷물이 빠진 짧은 시간, 하절기 단 6시간만 볼 수 있는 백악기 공룡과 새의 자국이 남아있는 장소다.
2019년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은 국내 고생물학계를 흥분시켰다. 수각류, 용각류, 조각류 세 종류의 공룡 발자국이 한 번에 발견됐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물떼새, 물갈퀴새 등 다양한 조류의 발자국까지 발견하며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했던 증거가 더해졌다.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세 종류의 공룡 발자국이 같은 곳에 한 번에 남아있는 스폿(장소)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며 "여기에 새 발자국까지 함께 관찰할 수 있는 장소는 더욱 찾기 힘든 만큼 지질학적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청곡리 해안가에 남아 있는 공룡과 새의 발자국은 매우 선명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해외 지질학자들은 정확한 발자국의 형태를 관찰하기 위해 불순물을 털어내는 붓과 같은 도구를 꺼내들었지만 바닷물에 씻겨 나간 바위에 남은 공룡과 새들의 흔적은 아주 깨끗한 상태로 맨눈으로도 관찰할 수 있었다. 조각류 공룡인 하드로사우르스의 발자국은 발바닥과 발톱 부분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거제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조각류 공룡의 발자국이기도 하다.
공룡 발자국 바로 옆에는 오리의 물갈퀴와 닭의 세 개의 발톱이 달린 발을 각각 닮은 새들의 발자국이 있었다. 크기만 봤을 때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오리나 닭과 크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예상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처럼 공룡과 새의 발자국이 함께 남아있는 장소는 백악기 말기 공룡과 현생 동물이 뒤섞여 살았던 백악기 말 시대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김 교수는 "우리 지구가 일종의 과도기였던 시기로 백악기 말 생태계가 어떻게 현생 동물 생태계로 변화했는지 연구하는 것과 관련있다"고 설명했다.
청곡리 해안가에는 세계 각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공룡의 또 다른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공룡의 피부 자국이다. 바위의 표면에 새겨진 공룡 피부의 오돌토돌한 흔적은 마치 방금 전까지 공룡이 누워있럼 선명했다.
● 화산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살았던 익룡의 기묘한 발자국
청곡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40분 쯤 이동하면 거제도의 작은 해안마을 갈곶리가 나온다. 거제도의 관광명소 '바람의 언덕'이 있는 곳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탁 트인 바다에 한눈에 들어왔다. 절벽 주변에 쌓인 바위를 타고 내려간 곳에서도 과거 한반도를 누볐던 공룡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었다.
먼저 파도를 맞고 있는 검은색 지층들에선 각 시대별로 지표면의 다양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아래 지층에는 지표면의 퇴적층에서 수분이 증발해 땅이 갈라진 흔적인 건열이 보였다. 가장 위에 있는 지층에는 퇴적물이 물이나 바람에 의해 흔들린 흔적인 연흔이 남아 있었다. 익룡 발자국은 바로 이 연흔이 새겨진 지층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백악기 말기 호숫가 등 물가에서 수분을 섭취하던 익룡의 모습이 상상됐다.
이 지층에는 긴 타원형 홈이나 세 개의 발톱 모양으로 깊게 파여 있는 자국이 곳곳에 있었다. 크기가 15cm 정도 되는 보행열의 간격은 다소 짧게 줄지어 있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의 특징은 앞발보다 뒷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익룡이 앉았을 때 보통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뾰족한 앞발의 자국이 남게 되는데 이곳에는 타원형의 뒷발자국이 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공룡의 걸음걸이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앞으로 학계에서 생각해봐야 할 연구 주제다"라고 덧붙였다.
갈곶리에 남아 있는 익룡과 새의 발자국이 학술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화산 활동이 극심했던 시기에 생성된 몇 안되는 생물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경상분지에 화산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암층인 유천층군에 남아있는 발자국 화석은 해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며 며 "이 암층이 형성된 백악기 말기 생태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학술 자산이다"라고 설명했다.
● 테니스장 면적 암층에 남아있는 1400개의 공룡 발자국
"지금까지 모로코나 마다가스카르에서 연구 활동을 수행하며 수많은 공룡의 발자국을 봐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고성에서 본 공룡 발자국이 '최고'입니다. 정말 깜짝 놀랐고 한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찾은 고성 삼락리 화석산지에서 만난 가니에 유키 일본 지오카나가와 연구원은 "이렇게 제대로 공룡의 발자국을 보존하려는 한국 사람들의 자세가 대단하고 학자로서 대단히 기쁘다"고 말했다. 테니스장만한 크기의 이곳 암층에는 1400개의 공룡 발자국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최소 81마리 이상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암층의 한켠에는 크고 작은 공룡들의 발자국이 섞여 있기도 했다. 가니에 야스미쓰 지오카나가와 연구원은 "엄마 공룡과 아빠 공룡, 아기 공룡의 발자국을 모두 볼 수 있다"며 "이곳에서 살던 공룡 가족의 화목한 모습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렇게 좁은 면적에 이만한 양의 공룡 발자국이 남아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공룡의 보행열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어 공룡이 걸어간 길을 상상하기 쉽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고성과 거제도에는 국내 학계는 물론 해외 학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공룡 발자국 자료가 풍부하다"며 "앞으로도 활발한 연구 활동을 통해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공룡 생태의 비밀을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거제·고성=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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