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5년만에 빛 본 '구하라법'… 자녀 버린 부모, 상속 박탈
10만명 입법청원 구하라법
정쟁에 밀려있다 늑장 통과
전세사기법 여야 통큰 양보
피해자 20년 공공임대 거주
사각지대 있던 PA 간호사
이르면 내년 6월에 합법화
거부권·재표결끝 폐기 진통
의료공백 사태에 급물살 타
◆ 국회 첫 민생법안 통과 ◆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은 한국 사회의 인식 변화를 제때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을 오롯이 보여준 사례다.
양육 의무를 외면한 부모가 자녀가 사망한 뒤 수십 년 만에 등장해 상속권을 주장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국민들은 비정한 부모에 대해 상속권 박탈을 요구해왔다.
20대 국회 때인 2019년부터 관련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거듭 발의했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10만명 이상이 입법 청원을 했고,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며 "정치권과 법조계가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통과된 구하라법에는 부모가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학대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가정법원 선고로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종전에도 유사 법안이 있었으나 2019년 말 가수 고(故) 구하라 씨의 오빠가 "어린 하라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사망 이후 상속 재산의 절반을 받아가려고 한다"며 입법을 청원하면서 구하라법으로 불리게 됐다. 국민 청원에는 10만명 이상의 국민이 찬성하며 화제가 됐지만 지난 20~21대 국회에선 정쟁에 밀려 논의도 제대로 못한 채 폐기된 바 있다. 구하라법이 다시 주목받게 된 건 지난 4월 헌법재판소 판결 덕분이다. 고인 의사와 관계없이 직계존·비속에게 일정한 비율의 유산 상속을 강제하는 유류분 제도에 대해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날 통과된 구하라법은 2026년부터 시행되지만 헌재의 판결(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사례에도 소급 적용될 수 있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이미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에 대해 여야가 한 발짝 양보해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래준 사례가 됐다.
지난 5월 '선보상 후회수'를 담은 야당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당초 민주당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 사들여 전세보증금을 돌려준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는 '선구제 후회수' 법안을 고집했다. 야당은 경매 차익이 적거나 거주를 원하지 않은 경우 등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를 위한 보완책을 요구했다.
그러자 정부·여당은 피해자가 비슷한 보증금 규모의 민간 주택을 찾아오면 임대를 제공하고, 피해 지원 범위도 대폭 넓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야당이 이를 수용하며 여야는 전세사기특별법을 합의 처리하게 됐다.
이날 통과된 간호법은 간호업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의료계에서 오랜 쟁점이었던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의료행위가 이르면 내년 6월부터 합법화된다. 미국·영국 등에서는 PA 간호사가 일찌감치 법제화됐지만 기존 국내 의료법에는 근거 규정이 없었다.
간호법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재표결 끝에 폐기됐다. 간호법을 둘러싼 상황은 의료 대란이 장기화하면서 반전됐다.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PA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해지자 정부·여당 측에서 민주당에 간호법 통과를 요구하면서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29일 총파업을 예고해 간호법 처리가 시급하다는 여야 공감대가 커지면서 28일 법안소위는 여당이 야당 의견을 대부분 수용하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처음 관련법이 제안된 뒤 19년 동안 수차례 좌절된 간호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한 셈이지만 의사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간호법은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왜곡하는 또 하나의 재앙이 될 것"이라며 "의료행위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지, 교육은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있던가. 결국 몇몇 고위 관료들과 간호협회, 그리고 병원장들만 '노 났다'"고 반발했다.
[위지혜 기자 /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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