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창준 前 국정원 방첩국장 “정보 수집 넘어 영향력 공작까지… 시대 맞게 간첩법 개정을”
흑색·회색요원, 위장신분으로 잠입
우리 공직자, 해외서 체포 공작 표적
위기 넘기려 포섭 당하는 경우 많아
1996년 러서 최덕근 영사 피살처럼
신분 노출 순간 신변 안전 장담 못해
형법, 日 모방해 1953년 만들어져
합리적 논의 거쳐 변화상 반영해야
다음은 유 전 국장과 일문일답.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 간첩이 얼마나 많은가.
“적나라하게 말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 국정원을 비롯한 방첩기관이 간첩의 신분을 파악하고 활동을 추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정보기관 요원이 국내에 들어와 있다. 양국 간에 어느 정도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 ‘우리가 몇 명 보낼 테니 당신들도 몇 명 들어오는 것이 좋겠다’고 사전 협의해 백색 요원이 합법적으로 오간 경우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자라니 회색 또는 흑색 요원을 잠입시킨 것이다. 흑색 요원은 학원 강사나 유학생, 상사 주재원, 심지어 사업가로 위장 신분을 갖추고 들어와 있다.”
―외국 간첩 적발 사례를 설명해달라.
“예를 들어 우리 공직자가 해외 근무 중 술자리에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시비가 붙는다. 이후 수사기관이 체포한다. 이 사람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평소 형님 동생으로 지내던 현지인을 부른다. 그럼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될 것이다. 이후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된다. 그렇게 시작된다.”(군검찰은 정보사 기밀을 유출했다가 최근 적발된 군무원도 중국 측에 포섭된 뒤 억대 금품을 받은 대가로 범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유 전 국장이 말한 ‘내국인’을 활용한 국가기밀 탈취의 대표적 사례다.)
―정보사 요원 신상 유출이 가져올 파장은.
“더 나아가야 한다. 과거엔 정보만 수집하고 갔다. 지금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영향력 공작’(인지전) 단계로 넘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해 대한민국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단 것이다. 가짜뉴스를 유발하거나 허위사실을 퍼뜨려 혼란을 조장하는 식이다. 이를 막기 위해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이 간첩죄를 포괄하는 ‘국가안보죄’를 발의했다. 상당히 진일보한 법안들이다. 지금 형법은 일본의 전시 형법을 모방해 1953년 만들어졌다. 합리적 논의를 거쳐 시대 변화를 반영한 법 개정을 시급히 해야 한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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