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통과 열렬 환영" vs "무면허 의료행위 만연해질 것"(종합)
사직 전공의 "전공의들 돌아갈 가능성 더 없어졌다"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오진송 기자 =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간호계와 의사 단체들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간호계는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로 부족해진 의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 위해 투입된 간호사들이 이제 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며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와 전공의들은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직역 간 갈등을 격화시키는 '악법'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간호법 국회 통과에 간호계 "환영…우수한 간호인력 양성하게 돼"
28일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간호법 최종 통과에 간호계는 환호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005년 국회 입법으로 시도된 후 무려 19년 만에 이뤄진 매우 뜻깊고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우수한 간호인력 양성, 적정 배치, 숙련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무가 법제화됐다"고 밝혔다.
간협 관계자는 "의사 부족으로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고 났을 때 법적 책임을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제정안이 통과되면 법의 미비가 해결되는 거니까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환자 입장에서도 법적으로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보다는,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간호사들이 명확하게 정해진 업무범위 안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게 됐다는 건 환영할 만하지만, 동시에 책임이 늘어나는 만큼 (제정안에는) 동전의 양면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간호사들이 소속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도 "불법의료 행위에 내몰려온 PA 간호사들의 의료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라며 환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인력 부족과 전공의 진료거부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을 해결하고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의협 "PA의 무면허 행위에 면죄부 생겨" 맹비난
간호법 제정에 오래전부터 반대해온 의사단체들은 법안의 최종 통과에 '간호사가 의사 행세를 할 것', '악법'이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날 간호법의 국회 통과 직후 "간호법은 간호사가 진단하고 간호사가 투약지시하고 간호사가 수술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밀어붙인 의료 붕괴에 미래를 포기하고 무너진 전공의들은 환자를 버리고 간 패륜아 취급을 하더니, 간호사 특혜법을 조건으로 파업 으름장을 놓은 보건의료노조에게는 발빠른 (법안의) 국회 통과로 화답했다"고 비꼬았다.
또 "불과 1년 전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그 법안 내용 그대로를 여당이 주도해 통과시키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며 "간호법은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악법인 동시에, 간호사들조차 위험에 빠뜨리는 자충수의 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업무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데 따른 혼란 등으로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그 피해가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직역간 각자도생의 분열과 반목 속에서 국민건강과 생명은 뒷전이 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의협은 당장 이날부터 '간호사 불법 진료 신고센터'를 운영해 피해 신고를 받고, 의사들의 정치세력화를 꾀하겠다고도 밝혔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그간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의대 증원과 간호법 문제들을 수도 없이 조목조목 지적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끝내 의사들의 우려와 조언을 묵살했다"며 "의사들은 시민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기 위해 범의료계 차원의 정당 가입 운동을 펼쳐 직접 정치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사직 전공의들 "기장 대신 승무원에게 비행기 맡겨"
집단으로 사직한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간호법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다.
한 사직 전공의는 연합뉴스에 "간호법의 목적은 간호사들로 전공의들을 대체하려는 것"이라며 "과연 이것이 궁극적으로 한국 의료와 국민 건강에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행기로 따지면 의사는 기장, 간호사는 승무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간호법은) 기장들이 일시적으로 비행기 운항을 못 하는 상황에서 승무원에게 조종을 맡기는 것"이라며 "이 경우 승객들(환자)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지, 법안을 추진한 사람들이 과연 나중에 책임을 질지 의문이고 걱정스럽다"고 탄식했다.
간호법 제정안 통과로 전공의들 사이의 복귀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공의는 "저는 솔직히 내년 3월에는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약간 고민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정부에서 이렇게 전공의들을 버리고 가겠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우리도 약간 갈 데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전공의 없이 간호사들로 대형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우리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우리도 살길을 찾아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본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간호법은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왜곡하는 또 하나의 재앙이 될 것"이라며 "결국 몇몇 고위 관료들과 간호협회, 그리고 병원장들만 노났다"고 적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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