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간격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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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개발된 특수 재킷에 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전기 펌프를 통해 부풀려지는 이 기발한 재킷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46㎝의 간격을 유지할 수 있어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주는 게 특징이다.
곡선 승강장은 직사각형의 열차가 이동할 때 모서리 접촉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정한 간격이 반드시 필요한데, 서울지하철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해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100㎜를 초과하는 곳이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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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개발된 특수 재킷에 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영국에서 대중교통이 너무 붐벼 불편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자, 한 호텔이 관광객의 쾌적한 여행을 돕기 위해 개발했다고 한다. 전기 펌프를 통해 부풀려지는 이 기발한 재킷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46㎝의 간격을 유지할 수 있어 일종의 장벽을 만들어주는 게 특징이다. 왜 하필 46㎝일까.
사람 및 물체 사이의 거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근접학(Proxemics)에 따르면 친밀도의 수준이 허용 거리를 결정하는데, 45㎝ 이내의 거리는 가족·연인 등 지극히 밀접한 유대 관계라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하철 객실에서 승객의 행태를 살펴보면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며, 여기에는 간격의 미학이 내재해 있다. 승객들은 첫차·막차와 같이 공간에 여유가 허용되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띄어 앉는 반면, 출퇴근 시간대 복잡한 열차에서 고유한 영역을 침범당하면 반사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지하철 혼잡도가 물리적 거리에 동반되는 정서적 문제로 해석되는 이유다.
지하철에서 적정한 간격은 본령처럼 여겨진다. "열차 간격 조정으로 잠시 정차 중입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자주 들리는 안내방송이다. 배차 간격은 안전한 운행의 전제조건으로서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부여한다. 지하철 요금에서도 간격의 미학적 묘미를 엿본다. 1호선이 개통한 1974년 30원이었던 지하철 요금은 1982년까지 거의 매번 10원씩 올랐다. 그러다 2호선 개통 직후인 1984년 110원에서 140원으로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30원의 인상 폭이 이어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50원씩, 2000년대에는 100원씩 인상되다가 2010년대부터는 150원씩 그 폭을 넓혀 갔다. 10-30-100-150원의 수열은 요금 인상 수준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인상에 따른 시민의 저항을 낮추는 촉매 역할을 했다.
런던 지하철을 보면 승강장 연단과 열차 사이의 틈을 경계하는 의미가 담긴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이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곡선 승강장은 직사각형의 열차가 이동할 때 모서리 접촉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정한 간격이 반드시 필요한데, 서울지하철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해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100㎜를 초과하는 곳이 다수 있다.
이 또한 간격의 미학이다. 적절한 간격의 조화가 가져다주는 안정감 속에서 때로는 그 틈이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좁다란 틈으로 발이 끼거나 소지품이 빠지는 일이 그렇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다. 이 불편한 간극은 오랜 기간의 노력 끝에 다행히 출구를 찾은 듯하다. 2호선 시청역 등에 시범 설치한 자동 안전 발판이 좋은 효과를 보여 내년까지 설치를 확대한다.
돌아보건대 살면서 가장 좁히기 어려웠던 건 머리와 가슴의 간극이었다. 한 자도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 데 자그마치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지하철 혼잡도부터 요금의 현실화까지 산적한 간극을 메우는 일들에 앞으로 얼마나 더 까마득한 시간이 필요할는지.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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