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아 칼럼] '만삭 낙태 생중계' 유튜버만 탓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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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청중 2만명이 모여 떠들썩하던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장은 숙연해졌다.
2022년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후 미국 각 주가 낙태금지법을 통과시키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했던 것을 꼬집은 발언의 주인공은 해들리 듀발.
낙태권 부활의 당위성을 상징하는 듀발이 전당대회 무대에 선 것은 민주당이 출산 관련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는 권리를 이번 대선에서 쟁점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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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입법 손놓은 국회와
제도 개선 뒷짐 정부도 책임
낙태, 의료시스템에 편입해
국민 생명권·건강권 지켜야
"부모의 아이를 임신한 아이가 뭐가 그렇게 아름다울까요?"
지난 19일 청중 2만명이 모여 떠들썩하던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장은 숙연해졌다. 2022년 연방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후 미국 각 주가 낙태금지법을 통과시키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했던 것을 꼬집은 발언의 주인공은 해들리 듀발. 듀발은 다섯 살 때부터 계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12세에 임신했다가 유산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첫 임신 테스트를 받고 그때 처음으로 선택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트럼프의 낙태금지 정책으로 오늘날 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선택권이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낙태권 부활의 당위성을 상징하는 듀발이 전당대회 무대에 선 것은 민주당이 출산 관련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는 권리를 이번 대선에서 쟁점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여성의 권리를 강조했다.
민주당이 낙태권 이슈화에 적극적인 것은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 6월에 실시된 AP·NORC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61%가 '합법적인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를 성과로 내세우던 트럼프 전 대통령마저도 "트럼프 행정부는 여성과 그들의 생식권을 위해 매우 좋을 것"이라며 태세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낙태'가 미국 대선판을 흔들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 정치권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입법을 주문했지만 국회는 5년째 손을 놓고 있다.
낙태를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을 뿐이지 임신중단을 합법으로 보는 법률도 없는 입법 공백 상태가 지속되면서 혼란은 커지고 있다.
임신중지라는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이 어려운 것은 물론 임신중지를 위해 언제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곳도 없다. 시술이 아닌 약물로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화됐지만 한국에서는 유산유도제 처방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불법으로 유통되는 약물을 복용하는 사례도 많다. 부작용과 위험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다. 낙태가 허용된 나라들이 대체로 12~24주를 수술 가능 기한으로 정해 놓은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기준도 없다.
한 여성 유튜버가 임신 36주 차에 낙태 과정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올린 반인륜적 사건도 이런 혼란과 무관하지 않다. 임신 36주 차의 태아는 당장 태어나도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산모와 의사를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해당 의사는 '30주 이상도 낙태가 가능하다'며 낙태 영업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낙태는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살인 혐의로 입건됐다. 하지만 비난받을 대상은 이들뿐이 아니다. 국회와 보건복지부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낙태죄 존치와 폐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얽힌 민감한 문제다. 종교계와 여성계의 의견 대립이 팽팽한 문제를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 정치권과 정부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할 경우 '36주 태아 낙태'와 같은 비극적인 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죄를 물을지보다 임신중지를 어떻게 의료체계에 포함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 국회와 정부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생명윤리를 해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어렵다고 피할 일이 아니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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