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전환 빠른 韓기업, 해외기관 관심 커져"
연기금 등 70여 회원사 둔 협의체
산업규모 큰 韓, 저탄소 신속 대응
해외 기관투자가, 한국서 기회 찾아
기업들 생물다양성 고민은 부족
투자자·기업·정부 긴밀히 힘합쳐야
“한국의 경제와 산업 규모가 큰 만큼 아시아 전체의 탄소 감축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한국에서 기회를 찾는 이유입니다.”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의 레베카 미쿨라 라이트(사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AIGCC의 첫 한국 워킹그룹 회의체를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AIGCC에는 총 9개의 워킹그룹이 있는데 국가별 워킹그룹은 중국과 일본뿐이었다.
미쿨라 라이트 CEO는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한국에 덜 주목했던 기관투자가들도 최근에는 관심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녹색금융의 관점에서는 2차전지처럼 이미 친환경 사업에서 실적이 발생하는 기업들뿐 아니라 화학·자동차·조선 등 친환경 전환이 빠른 기업들도 매력적인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모두 한국의 주력 산업이다. 미쿨라 라이트 CEO는 “한국은 강력한 산업 기반을 갖춘 나라이자 글로벌 선두 주자인 만큼 해외의 탄소 규제에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6년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활동 중인 AIGCC는 기후변화·저탄소 투자에 따른 리스크와 기회를 논의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민간 협의체다. 현재 회원사로 이름을 올린 70여 기관투자가의 총운용자산(AUM)은 28조 달러(약 3경 8184조 원)에 달한다. 회원사들은 연기금·국부펀드·보험사·자산운용사 등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금을 운용해 투자받은 기업의 기후 대응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자산 보유자들이 포함된 게 특징이다. 미쿨라 라이트 CEO는 “금융에 주목하는 기후 협의체는 많지만 기관투자가에 초점을 맞추는 단체는 AIGCC가 유일하다”면서 “특히 자산 보유자들은 자본시장의 가장 큰손이자 금융 생태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만큼 기후 대응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현재 국민연금공단과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이 AIGCC에 가입돼 있다. 한국 워킹그룹 조직 이전에도 AIGCC는 삼성전자·한국전력·SK이노베이션·포스코 등과 대화하며 한국 내 활동을 이어왔다. 미쿨라 라이트 CEO는 “글로벌 규제와 투자자들의 압박으로 기후 대응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이 공개하는 자료는 아직 들쑥날쑥한 패치워크와도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2050년까지의 장기적인 탄소 중립 계획뿐 아니라 중기적 목표 및 구체적인 달성 전략 등이 공개된다면 투자자들도 한국 기업들을 보다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에 대한 저평가와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AIGCC는 최근 탄소 감축 외에 투자자·기업들 사이의 화두로 생물 다양성을 꼽고 있다. 최근 AIGCC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증시 시가총액의 71%는 직접적인 자연 의존도가 ‘보통’ 또는 ‘높음’ 수준이다. 상장사들이 수자원 등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수준, 또는 환경오염 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높다는 의미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 수치가 60%로 비교적 낮다. 미쿨라 라이트 CEO는 “생물 다양성을 외면하면 수자원이나 핵심 원자재 부족으로 기업 활동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2021년 가뭄과 물 부족으로 타격을 입은 대만 반도체 산업을 언급했다. 이후 TSMC가 공업용수 재활용에 나선 사례처럼 기후 재해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기후 탄력성’ 강화는 기업 경쟁력의 관점에서 생물 다양성을 고민한 결과다. 미쿨라 라이트 CEO는 이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다.
미쿨라 라이트 CEO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투자자·기업·정부가 보다 긴밀하게 힘을 합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어떤 정책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자본을 움직이게 하는지 3자간의 정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기후변화는 어떤 기업도, 투자자도, 정부도 혼자서 대응할 수 없는 만큼 모든 이해관계자가 합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주희 기자 ginge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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