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중 국적’ 텔레그램 창업자, 세계 각국서 구애받고 표적도 되고
“텔레그램 창업자는 각국 정부의 구애를 받았고 표적이 됐다.”
아동 음란물, 마약 밀매 등 불법 행위를 방치한 혐의로 지난 24일 프랑스에서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전격 체포된 사건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28일 이런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각국 정부가 지난 몇 해 동안 텔레그램과 두로프에 접근해온 여러 정황을 공개했다. 러시아와 프랑스, 아랍에미리트(UAE), 카리브해 섬나라인 세인트키츠 네비스 등 4중 국적을 갖고 무정부주의자처럼 살았던 그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각국의 수사 협조를 거부하고 거처를 옮겨왔던 것, 그러면서도 이들 정부의 투자와 시민권 제공 등 구애를 받아왔다. 텔레그램은 감시·통제해야 할 논란의 시스템이었던 동시에 각국 보안 당국에 매력적인 플랫폼인 사실이 분명해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년 전인 지난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두로프와 점심을 함께하며 텔레그램 본사를 파리로 이전하라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이보다 한해 전인 2017년 프랑스 스파이들이 아랍에미리트와 합동으로 그의 아이폰을 해킹한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두로프가 이들 국가의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았던 때다. 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에 제동을 걸기 위해 그를 체포한 것이란 게 프랑스 사법 당국의 설명이지만, 일각에선 암호화된 시스템 내 숨겨져 있는 고급 정보들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는 당시 두로프 해킹 사건의 암호명을 ‘퍼플 뮤직’이라 불렀으며, 프랑스 보안 당국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요원들을 모집하고 테러 공격을 계획하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이후 두로프와 두 나라의 관계는 반전을 거듭한다. 그는 2021년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 시민권을 잇따라 취득했고, 텔레그램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본사를 옮긴 뒤 7500만달러(약 1003억8천만원) 이상의 투자를 받는다. 서방국가들과 비교하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중동에서 그가 활동한 것도 이례적인데, 아랍에미리트에선 보안 등의 이유로 텔레그램을 이용한 음성 통화 등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점심’이나 두로프 휴대전화 해킹 사건이 그의 체포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두로프와 프랑스, 아랍에미리트와의 복잡한 관계”를 언급하며 “그가 체포되면서 그를 구애하고, 통제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전세계 각국 정부들이 주목받게 됐다”고 했다.
한때 그를 반정부 인사로 규정했던 러시아 정부의 대우 또한 지난 10여년 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중이다. 2006년 그가 러시아판 페이스북 프콘탁테(VKontakte)를 만든 뒤, 이 곳이 반정부 세력이 모이는 플랫폼으로 주목받자 크렘린은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요구해 갈등을 빚었다. 2011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 플랫폼을 통해 조직되자 크렘린이 매각을 압박했고, 결국 두로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시위대의 통신 내용을 공개하라는 정부 압박을 피해 러시아를 떠났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 정부 내 텔레그램 영향력은 막대해졌다. 암호화되는 특징을 이용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전방 소식을 전달하는 용도로 텔레그램을 사용하게 됐고 정부 또한 텔레그램을 통해 선전전에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전날 브리핑에서 프랑스가 두로프의 유죄에 대한 “상당한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소송이 “정치적”이고 통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으로 풀이된다.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의 토머스 그레이엄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크렘린은 이 시점에서 텔레그램과 화해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텔레그램을 폐쇄하려던 러시아 정부가 두로프의 체포에 대해 분노를 표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역설적”이라고 짚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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