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 반하는 범죄의 문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자신들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 사실을) 말해야 했습니다. 이 증언을 들은 지식인들은 거기에 응답할 책임이 있어요. 이번 책은 할머니들의 말에 대한 페미니스트 지식인들의 응답입니다. 여성학자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어온 고통의 문제에 나름으로 응답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가져가고자 했어요.”
최근 동료 여성학자들과 함께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휴머니스트)을 낸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SF)에서 인류학 박사를 받고 귀국한 1993년에 논문 ‘민족담론과 여성’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위안부’ 담론이 민족주의 담론에 압도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논점을 제시한 글이었다.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라는 부제가 달린 이번 책은 31년 전 세상에 나온 그 문제의식의 한 매듭이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가 엮은 이번 책에는 권은선 중부대 교수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수 등 모두 11명의 연구자가 필자로 참여했다. 야마시타 영애 일본 분쿄대 교수는 ‘야마시타와 영애 사이에서’라는 글에서 “1990년대 위안부 운동은 민족적 피해를 내세움으로써 ‘위안부’ 피해자들이 성폭력으로 입은 상처에 주목하는 일을 어렵게 했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입은 피해는 민족적 피해로 환원할 수 없다”고 썼다.
‘피해자들이 겪은 심적 상처는 육체적 상처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식하기 힘든데 민족 문제라는 관점을 강하게 내세울수록 이러한 측면은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희진 전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한국 ‘위안부’ 운동에서 보이는 “강제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주목했다. 그는 “군 ‘위안부’ 운동은 지금도 (할머니들이 자발적 계약이 아니라 끌려갔다는) 강제성 문제를 끊임없이 방어하고 논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짚고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의 연속적 구조, 즉 가부장제 안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여성들에게 강제와 자발의 구분은 허구”라고 지적했다. “강제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피해자 개인의 삶을 삭제한다”고도 했다.
허윤 부경대 교수는 글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물화되는가’에서 일본 정부의 반발로 더 힘을 얻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소녀상이 순결한 피해자상을 재생산해 다양한 입장과 위치에 있던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전형화하면서 결과적으로 무고하고 순결한 희생자 외의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은실 교수는 서문 ‘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에서 “도쿄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1946~48)에서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다루지 않은 (미국·영국·소련 등) 연합군 쪽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범재판에 제출된 연합군 문서에 위안소 등에 대한 언급이 상당수 남아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연합군 책임을 묻는 게 ‘위안부’를 둘러싼 한일 간 교착 상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고 봤다.
“‘위안부’ 문제는 전시 성폭력으로 전쟁범죄입니다. 그런데 식민지 청산 문제로 치환하니 한·일 사이에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어요. 전쟁을 반대하는 일본 내 평화세력·연구자들과도 힘을 합쳐 (연합군)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전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일본의 전쟁범죄도 드러낼 수 있겠죠.”
그는 꼭 10년 전에 “한국 사회가 열린사회로 가는 데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사고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탈식민 여성주의 입장에서 ‘위안부’를 다루는 책을 내자”고 마음먹었단다.
열린사회가 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는 여성주의자로 여성을 이야기합니다만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차이들이 있어요. 주변인 문제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는 민족 담론의 영향력이 너무 커 내부의 차이나 다양성을 제대로 논의하기 어려워요.”
그는 민족 담론이 한국 ‘위안부’ 운동을 압도하며 보이는 문제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문제가 식민지 청산 속에 위치 지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이 문제가 강제성 논의에만 머물고 있어요. 강제는 물론 맞는 말이고 중요합니다만 이렇게 될 경우 피해자들은 결국 민족 피해의 상징이 됩니다.민족으로 환원되지 않는 혹은 민족의 상징이 되지 못하는 여성 피해자의 고통은 다뤄지기 어려워집니다.저는 이 문제를 전시에 국가가 군인들을 위해 여성의 성을 군수물자처럼 동원한 성폭력 범죄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여성주의 심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은 없을까? “기여라기보다는 (한국 여성주의에)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던졌죠. 전시에 군인을 위로하기 위해 여성의 성을 동원하는 국가 폭력이나 국가 개입을 너무 분명하게 보여주었으니까요. 동원이 강제냐 자발이냐를 떠나 파시즘 국가나 군대, 자본이 여성의 성을 동원하고 배치하는 `위안부’ 문제는 여성주의자들에겐 너무나 중요한 사건입니다. 여성들의 전시 취약성을 보여주니까요. 이 문제는 또 여성들의 전시 취약성이 평상시 여성의 위치, 성폭력의 문제 등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한국의 근대화 국가 권력과 여성의 몸에 대한 의료 담론이 가족계획정책을 통해 어떻게 여성의 몸에 작용했는지 살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떻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유학에서 돌아온 뒤 한국의 페미니즘 담론이 민족 담론에 의해 검열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죠. 제가 93년 한국여성학회 10주년 학술대회에서 ‘민족담론과 여성’을 발표하니 여성학 원로 선생님께서 ‘그러면 우리는 민족주의 하지 말자는 이야기냐’고 하시더군요. 한 ‘위안부’ 연구자는 ‘민족이 여성보다 더 큰 단위이니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고 하셨죠. 저는 그 말에 외부를 향한 저항 민족주의 담론이 내부의 차이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동질화 권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어요.저는 ‘위안부’ 문제는 전쟁과 여성인권 그리고 휴머니티(인간성)에 반하는 범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 출간이 한국 ‘위안부’ 담론의 다양화와 토론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김 교수에게 한국 ‘위안부’ 운동을 이끄는 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물었다.
“위안부 운동을 주도하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정대협 후신)는 시민단체들이 모인 연합단체입니다. 처음 `위안부’ 운동을 시작할 때는 식민 청산이라는 틀 속에서 여러 단체와 연대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성적으로 피해 받은 게 바로 식민지 민족의 피해라는 전제 아래서 다른 시민 단체들이 정대협과 운동의 뜻을 같이 했습니다. 물론 ‘위안부’ 운동에는 식민지의 문제와 민족주의가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나아가야합니다. 외연을 넓혀 지금보다 더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을 가진 단체나 연구자들과도 운동의 차원에서 연대하고 연구도 하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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