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애인 선수들 “간부들 담배 심부름, 주말 불려가 짐 나르기도”
해당 간부 “심부름·폭언은 인정·사과할 것…훈련 강요는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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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장애인역도연맹 일부 간부들이 특정 선수들에게 개인 심부름을 시키고 폭언·욕설을 일삼으며 대회 출전을 강요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불의의 사고로 뇌병변 및 시각 장애를 갖게 된 ㄱ씨는 작년 7월부터 인천장애인역도연맹에 선수 등록을 한 뒤 운동을 시작했다. 선천적·후천적 장애인들이 함께 인천문학경기장 내 훈련장에서 구슬땀을 쏟았는데, 올해부터 일부 간부들의 부당하고 무리한 요구가 시작됐다.
시작은 담배와 복권 심부름이었다. 후천적 장애인인 ㄱ씨와 ㄴ씨는 허아무개 연맹 고문의 지시로 수차례 담배와 복권을 사서 배달했다. 담뱃값은 허 고문이 선수들 계좌로 입금했다. 복권 심부름을 한 ㄴ씨는 복권을 구매한 비용을 돌려받지 못했다.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다른 선수들은 나이가 어리고 지적 장애를 가진 분들이다 보니 우리 둘에게만 심부름을 시킨 것 같다. 하지만 도가 지나쳤다”고 토로했다. 허 고문은 대회가 끝난 뒤 남은 생수통을 모아 팔겠다며 선수들에게 작업을 시키기도 했다.
불합리한 지시는 주말에도 계속됐다. 양아무개 연맹 부회장은 4월27일 토요일 오후 선수 ㄱ, ㄴ씨와 지적 장애인 선수 한명을 불러 자택 냉장고를 아파트 재활용 수거함으로 옮기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산업재해로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던 ㄴ씨와 뇌병변으로 오른쪽 팔다리가 불편한 ㄱ씨는 양 부회장의 부탁을 지시로 받아들였다. ㄴ씨는 “주말이라 집에서 쉬는 날이었는데, ‘나오라’는 부회장의 말을 듣고 거부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식사 준비도 두 사람의 몫인 때도 있었다. 통상 선수들과 연맹 소속 직원들은 개인 돈으로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해왔는데, 고아무개 사무국장의 지시로 ㄱ씨와 ㄴ씨는 6월부터 7월 사이 약 보름 이상 장을 본 뒤 음식을 조리하고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ㄱ씨는 쉬는 날 ‘다른 선수들의 밥을 준비하라’는 요청을 거부하자 “넌 나한테 찍혔다”는 말을 사무국장으로부터 들었다.
이밖에 두 선수는 연맹이 대회 출전을 위한 무리한 훈련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목 특성상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데, 간부들이 “아파도 역도장에 와서 쉬어라”, “연차를 너무 많이 써도 좋지 않으니, 쉬더라도 역도장에 나와 동생들에게 본이 돼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며 훈련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ㄱ씨는 “진단서까지 보여줬음에도 연차를 적당히 쓰라며 (훈련장에) 나와서 쉬라고 했다. 나는 엄연히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인데, 건강 악화로 인한 연차 사용도 소속 회사가 아닌 연맹의 눈치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ㄴ씨 또한 손목 부상을 이유로 대회 출전을 망설이자, 허 고문으로부터 “미련한 놈”, “미친놈”, “멍청한 놈” 등 폭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부당한 지시를 한 당사자들은 일부 사안을 놓고선 사죄의 뜻을 밝혔으나, 훈련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자유의사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허 고문은 “(담배 심부름을) 한 10번 정도는 부탁했던 것 같다. 저를 포함해 모두가 장애인이다 보니, 보행이 가능한 선수들이 좀 더 움직이는 상황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폭언 및 훈련 강요를 놓고선 “운동하는 데 나태한 느낌이 들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잔소리였다. 두 선수에게 정중히 사과하겠다”고 덧붙였다.
고 사무국장은 식사 준비를 놓고 “선수들이 싫어하는데 억지로 (식사 준비를) 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제가 (반찬을) 챙겨다 주고 같이 먹었다”며 “(식사 준비를) 오래 한 것도 아니다. 잠깐 몇 번 해서 먹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각자 알아서 먹게 됐다. 누구도 억지로 시킨 사람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연차를 내고 쉬든지 아니면 운동장에 나와 쉬든지 그건 선수들이 선택하면 된다. 저는 선수들이 아프다고 그러면 쉬라고 하는 편이지 나와서 있으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누구도 (훈련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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