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선물ETF는 되고, 선물 거래는 안되는 ‘이상한 시장’···미인가 해외거래소로 내몰리는 투자자들
‘선물거래 첫걸음 A거래소와 함께하세요.’
한 가상자산거래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문구다. 한국어로 된 공지사항 등을 보면 일반 국내거래소처럼 보이지만, 국내 영업이 금지된 미인가 해외거래소다.
지난 7월부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이 시행됐음에도 불법 해외거래소는 버젓이 국내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거래소에선 선물을 비롯한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노리고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미인가 해외 거래소를 이용할 경우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해 피해가 예상된다. 일각에선 가상자산의 파생거래를 허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선물거래 금지된 ‘틈새’ 노려 불법 영업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의 조건을 충족해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된 사업자는 총 37개사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 등은 국내에서 원칙적으로 영업이 금지돼 있다. 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는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취득하고, 실명 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을 통해 거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미인가 중소형 거래소들이 한국어 서비스를 지원해 인가를 받은 거래소인 것처럼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일반투자자 입장에선 ‘합법’으로 헷갈릴 소지가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이용자 보호가 가능한 국내거래소와 달리 이들 거래소에선 코인리딩방 및 락업코인(특정기간 코인 매도를 막는 것) 사기 등 범죄에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부 투자자들이 해외 미인가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은 국내거래소와 달리 선물거래 등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는 가상자산법상 영업 범위가 ‘단순 매매’에 한정돼 있어 파생상품을 취급할 수 없다.
업계에서도 ‘미인가 거래소’를 향한 불만이 크다. 국내 거래소는 오랫동안 비용을 들여 이용자보호 조치를 마련하는 등 규제를 받고 있지만, 당국이 정작 불법 거래소를 방치해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 유출이나 리딩방 등 사기 행각은 불법거래소에서 많이 이뤄진다”며 “(당국이) 안전한 거래소라고 홍보하는 국내 거래소는 규제하면서 불법 거래소에는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미인가 거래소가 해외에서 영업을 하는 만큼 원천 차단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굉장히 제한적인 건 사실”이라며 “가장 강력한 조치가 IP 차단인데, 권한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가 선별해 작업하는 것이고 수사기관에서도 수사를 착수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에 대한 파생거래를 일부 허용해 제도권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산자산 파생상품 거래 수요가 큰 만큼 합법적인 틀 내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미 가상자산 선물ETF는 국내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 만큼 당국의 가이드라인만 있으면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다.
한 자본시장전문가는 “해외에선 선물거래가 허용이 됐고 선물을 바탕으로 한 ETF도 허용이 된 만큼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되는 쪽이 합리적”이라며 “선물부터 시작해서 관련 ETF 출시 등을 폭넓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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