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붕괴 위기] "환자 못 받아요"… 응급실 줄줄이 비상
의료 현장선 회의적 분위기 나와
서울대·이대목동 등 진료 제한
"응급실은 이미 난리가 났다. 응급실 대란 우려에 대해 정부는 '관리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해 구급차가 환자를 싣고 이곳저곳 의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응급실 파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역 응급의료 시스템 붕괴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기화되는 의료공백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현장을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026학년도 의대정원 증원을 유예하는 방안을 한덕수 총리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한 대표가 제안한 의대 증원 유예는 의료 붕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변함없이 의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와 당의 의견이 엇박자 나는 사이, 의료공백으로 인한 파장은 커지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인건비와 관련 수가 인상을 통해 응급실 파행을 막겠다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반응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은 적은 한번도 없는데 지금 수도권과 지방 대학병원 곳곳이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폐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장은 응급실 뺑뺑이로 돌아가신 분이 꽤 된다. 아수라장"이라고 토로했다.
이 가운데 정부는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가산하고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의 전담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추석 연휴에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응급진찰료 수가 가산을 기존 응급의료기관 408개에서 응급의료시설로 확대 적용해 경증 환자를 분산하기로 했다. 경증 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내원 시 본인 부담분을 기존 50~60%에서 90%로 상향한다는 계획도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같은 대안에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경기도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정부는 당장 응급실 인원만 해결되면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응급 수술이 필요한 배후 진료과가 정상화하지 않으면 그 다음 처치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응급 수술이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를 받으면 결국 병원은 애타게 다른 병원에 전원 문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상급병원인 대학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으면 환자의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심근경색 환자가 응급실에 올 경우 응급으로 처치를 해도 응급 이후의 배후 진료과인 심장내과,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하지 못하거나, 의료진의 과로로 수술이 어려운 경우 환자들은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면서 "이로 인한 사고는 의료소송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응급실은 물론 전문의들의 과로가 너무 극심한 상황"이라면서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응급실 마비로 인한 불안감, 공포감이 크지만, 낮에 수술하고 외래를 보면서 야간당직까지 병행하다 보니 체력적 한계 때문에 응급환자를 챙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에 응급환자를 2~5시까지 수술하고 다음날 정상적으로 진료가 어려워, 더 이상 응급실 콜을 안 받겠다는 전문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의료대란 이전에) 심장내과,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휴일에 콜을 받는 횟수가 5회 미만이었는데, 최근에는 18~19번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 대형병원 내과 전문의는 정부가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대 증원 '2000명' 정책을 밀고나가는 사이,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고, 전 학년 의대생들의 유급이 불가피해졌다. 의료계는 올해 졸업생이 없으면 내년 병원에 인턴이 없게 되고, 올해 인턴이 없으면 내년 레지던트 1년차가 없는 만큼 이 여파가 앞으로 4~5년간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28일 오전 정규 시간 외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성인·소아 외상 환자 등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인력 부족으로 정형외과 응급 수술과 입원을 할 수 없고,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은 혈액내과 신규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다음 달부터 매주 48시간 응급실 문을 닫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건국대 충주병원 소속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은 지난주 병원 측에 모두 사직서를 냈다.
의료대란이 단기에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한 시민은 "의료대란으로 국민들은 치료받을 기회와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의료개혁 발표 후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가 드러나며 실망했지만, 정부도 이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애꿎은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불안하다. 어떤 식으로든 출로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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