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헤어질 결심'에 필요한 돈, 1억6000만원…기밀유출 사건의 전말

김인한 기자 2024. 8. 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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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디브리핑] 중국 정보요원에 군사기밀 유출한 정보사 군무원 '사건의 재구성'
[편집자주] '브리핑'(Briefing)이 사전에 정보나 지시 등을 요약해 전달하는 것이라면 '디브리핑'(Debriefing)은 모든 상황이 끝난 뒤 임무 수행 등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한데 모아 시간순으로 독자 여러분께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드리는 코너입니다.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5급 군무원 A씨가 2017년 중국에 포섭돼 각종 군사기밀을 유출했다. / 사진=국방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A씨(49)는 1990년대 후반 첩보 업무에 첫발을 디뎠다. 군생활 초기부터 해외 첩보와 군사기밀 수집 등의 업무를 맡았던 그는 2000년대 중반 들어 정보사 군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A씨는 2009년부터 정보요원으로 해외 군사정보 수집 등의 업무에 전념했다. 당시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극비리로 중국을 들어간 것만 최소 20번 이상. 자신이 첩보활동을 위해 구축해 온 공작망과 접촉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정보사 팀장까지 승진하며 조직의 신망도 받았다.

그런데 2017년 4월 중국 연길공항에서 벌어진 사건은 A씨를 타락의 길로 내몰았다. 당시 A씨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중국 정보기관 소속 조선족 요원들에게 체포 당했다. 조사 과정에서 중국 측의 포섭 제의를 받은 그는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중국 정보요원들이 A씨의 가족들에 대한 신변 위협을 가하기도 했지만 우리 국내 요원들은 해외에서 체포되거나 포섭 제의를 받을 경우 상부에 보고하고 해법을 찾아왔다. 하지만 A씨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군사기밀을 넘겨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부당 거래'를 시작했다.

A씨는 대담했다. 조직의 신망을 역이용해 군사기밀을 지속 탐지·수집·누설했다. 정보사 내부 보안 취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였기에 범행은 대담하게 이뤄졌다. 중국 정보요원의 지시를 받고 기밀 출력, 사진 촬영, 화면 캡처, 메모 등의 다양한 수법을 썼다.

범행은 치밀했다. 휴대폰은 2개를 사용했고 사진 촬영을 할 때 소리가 나지 않는 무음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아 각종 군사기밀을 찍었다. 중국 요원과는 보안을 위해 게임 앱에서 소통했다. 게임할 때 쓰는 음성메시지로 A씨가 중국 측과 소통한 기록만 2000건 이상이다.

중국 측이 원하는 군사기밀을 접근하기 어려울 땐 A씨가 다른 정보 제공을 역제안하기도 했다. 확보한 군사기밀은 영외 개인 숙소로 무단 반출해 중국 인터넷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매번 다른 계정으로 서버에 접속하고 파일별 비밀번호를 설정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영내에 위치한 검찰단 전경 / 사진=김인한 기자


7년 가까이 이어지던 범행은 군 정보 수사기관인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등에 덜미를 잡혔다. 방첩사는 지난 6월 관련 사건을 인지한 이후 수사에 나섰고 A씨를 지난달 30일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A씨가 2019년 5월부터 돈을 받고 2022년 6월부터 중국에 군사기밀을 유출한 객관적 증거도 확보했다.

방첩사는 휴대폰 정보 등을 복원하는 포렌식 기법을 통해 A씨와 중국 측이 대화를 나눈 음성기록 2000건 등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연계될 것으로 보이는 증거도 찾았다.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한 채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블랙요원 명단 유출도 파악했다.

방첩사는 지난 8일 A씨에게 군사기밀 보호법 뿐 아니라 군형법상 일반이적, 간첩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국방부 검찰단에 넘겼다. 간첩죄는 최대 사형에 처하는 중대범죄로 A씨와 북한과 연계성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 검찰단은 A씨의 구속기간(최대 20일) 동안 방첩사의 수사기록을 살펴보고 법리 해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A씨에게 적용된 간첩 혐의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고 일반이적 혐의 적용이 추후 법리 다툼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일반이적 혐의도 중대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최대 사형 혹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간첩죄와 유사한 수준의 처분이다. 군 검찰은 북한과 연계될 가능성이 있는 목소리 증거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한 만큼 추가로 간첩죄 적용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A씨는 이번 수사를 통해 최소 30건의 군사기밀을 중국 측에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중국 정보기관에 약 40회에 걸쳐 4억원의 돈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약 1억6200만원을 차명계좌를 통해 수수했다. 업무비 약 1600만원을 사적으로 사용한 '업무상 횡령'도 식별됐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27일 A씨를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재판은 추후 비공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군사기밀 유출 혐의 등은 대체로 인정하고 있지만 구체적 혐의 등에 대해선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 때 시인하고 있다는 게 검찰단의 설명이다. 중국 조선족 정보요원들은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모두 잠적했다고 한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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