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정체가 뭐야 [크리틱]

한겨레 2024. 8. 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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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인종 통합이 가장 진전된 영역은 스포츠계와 군이라고 한다.

연예계도 상당히 인종 통합이 됐을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인종 분리가 가장 강고하다고 지적되는 곳은 학계이다.

미국의 예를 보면 소수 인종은 결국 고유 정체성을 찾기 마련이며 사회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기득권 일부를 양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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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묵주. 위키미디어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미국에서 인종 통합이 가장 진전된 영역은 스포츠계와 군이라고 한다. 프로 미식 축구 선수의 53%가 흑인이다. 농구는 73%. 콜린 파월이 흑인 최초로 합참의장이 된 것은 1989년이고, 현 합참의장도 흑인이다. 두 영역은 결과와 규칙의 세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앞에선 인종적 편견도 좀 무력한 듯하다. 연예계도 상당히 인종 통합이 됐을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연예계는 균일하지 않은 세계이며, 셰익스피어 연극이나 오페라에 소수 인종이 출연하는 것은 어려운 일로 남아 있다. 인종 분리가 가장 강고하다고 지적되는 곳은 학계이다. 학계는 진보적 담론의 생산지이지만, 대학 교수 자리를 유색 인종에게 내주는 일은 매우 드물다. 아마 학계는 사회 진보가 먼저 다른 영역에서 충분히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네이티브 아메리칸 학’은 미국 대학에서 네이티브(아메리카 원주민)를 위해 마련된 몇 안 되는 자리 중 하나이다. 2020년 엘리자베스 후버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이 분야 담당 교수로 취임했을 때,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네이티브계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네이티브 정체성을 강조한 옷차림도 주목을 받았다. “마치 ‘인디언’ 액세서리 가게가 그 앞에서 폭발한 것 같았죠.” 동료들은 후버가 세미나든 교수회의든 간에 염주를 쥐고 나오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21년 한 웹사이트가 후버를 ‘네이티브 사칭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곧 오해를 풀겠다고 했던 후버는 돌연 2023년 유전자 검사 결과 자신이 네이티브 유전자가 없는, 그냥 백인임을 알게 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평생 자기 핏줄을 오해한 탓에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했다. 부당하게 차지한 장학금과 여러 기회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러나 교수직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 이들은 적지 않다. 배우 조니 뎁이 그랬고 정치가 엘리자베스 워런도 그랬다. 이런 주장은 근거가 대개 “집안 어른에게서 들었다”뿐이기 때문에 해프닝으로 끝난다. 그렇다고 이 일로 배우나 정치가로서의 생명이 끝장나진 않았다. 그들이 거짓말로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니고 사실 그런 주장으로 얻을 이익도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후버의 경우는 다르다. 네이티브 행세가 가져온 이익은 누가 보아도 막대한 것이었으므로 “나도 몰랐다”는 주장을 믿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올해 2월 ‘뉴요커’는 후버가 자기 정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 후버가 거짓말쟁이임이 입증되면 문제가 해결될까? 또는 보수적 논평가들이 주장하듯 소수자 정체성이 가산점으로 교환되는 정체성 정치학이 더 문제인 걸까? 정체성 정치학이 출세주의자나 거짓말쟁이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는 건 처음부터 분명했다. 그러나 그 약점은 풀어야 할 과제이지 본래의 취지까지 무효가 되는 건 아니다.

한국은 올해 실질적 다인종국가(외국인 5%)가 되었다. 아시아 최초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정체성 정치학은 여성, 성소수자, 지역주의 등과 관계된 것이었다. 그보다 낯선 정체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소수 인종은 결국 고유 정체성을 찾기 마련이며 사회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기득권 일부를 양보해야 한다. 그건 간단한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후버 사건이 보여주듯 말이다. 우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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