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마켓컬리의 ‘60일 정산기한’은 정당한가?

김진희 2024. 8. 2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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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 위메프, 알렛츠...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업체들입니다.

1조 3천억 원이 넘는 미정산 사태를 두고 여러 원인 분석과 대책이 이어졌습니다. 오픈마켓이 소비자들의 결제대금을 손대지 못하도록 별도 관리해야 한다, 판매자 정산주기를 법제화해야 한다 등입니다. 원인 중 하나로 60일이 넘는 긴 정산 기한도 지목됐습니다. 정산을 바로바로 했더라면 그만큼 피해액이 쌓이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판매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오픈마켓 뿐 아니라 쿠팡의 로켓배송, 컬리의 샛별배송도 정산기한이 최대 60일입니다. 쿠팡과 마켓컬리도 이커머스 플랫폼인데, 이들의 '정산기한 60일'은 괜찮은 걸까요?

■ 쿠팡·마켓컬리는 왜 정산기한을 최대 60일로 늘렸나?

티몬, 위메프 등 오픈마켓은 정산기한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습니다. 오픈마켓은 '통신판매중개업'으로 분류돼 유통업 규제 대상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다보니, 소비자가 결제한 대금을 제때 판매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두 달 넘게 중간에서 가지고 있었던 건데요.

쿠팡, 마켓컬리도 두 달 동안 판매자에게 대금을 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거래의 90%는 업체로부터 직접 물건을 사들이는 '직매입' 방식인데요. 쿠팡 로켓배송, 마켓컬리 샛별 배송이 하루 만에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 수 있는 건 바로 이 '직매입' 덕분입니다. 업체에 주문을 넣고 물건이 창고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최대 60일이 돼야 대금을 지급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8조(상품판매대금 등의 지급) ② 대규모유통업자는 직매입거래의 경우에는 해당 상품수령일부터 60일 이내에 해당 상품의 대금을 납품업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신설 2021. 4. 20.>

이전까지는 대금 지급 일수를 정하지 않았는데, 2021년에 지급일을 '60일 이내'로 규정한 겁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신설된 이후 정산기한은 더 길어졌습니다.

쿠팡은 최대 정산기한이 50일이었지만 2023년 1월부터 60일로 변경했고, 마켓컬리는 올해부터 최대 정산기한을 30일에서 60일로 늘렸습니다.

'직매입 60일 이내'로 명문화할 당시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오히려 정산을 더 늦추는 빌미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는데,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 60일보다 더 빠른 기간 내에 지급하고 있는 업체들이 오히려 60일 때문에 더 뒤로 갈 것 아니냐는 말씀이 있었는데요. 저희들은 아마 이 지급을 빨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업체 간에 좋은 경쟁이기 때문에 그동안은 더 빨리 지급하는 쪽으로 계속 운영이 되어 왔다. 60일이라고 정한 것은 너무 장기간으로 하는 업체들을 좀 앞으로 끌어당기게 하는 그런 취지라는 말씀을 드리겠고요.

그리고 저희가 유통 분야 공정거래 협약 이런 것을 통해서 그 안에 대금 지급 기일을 계속 조금씩 더 당기는 쪽으로 유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저희들이 업체들과 잘 협의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제21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2021. 2.24.)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쿠팡과 마켓컬리는 대규모유통업법 등을 들어 정산기한을 오히려 늘렸습니다.
다음은 쿠팡과 마켓컬리의 공식 입장입니다.
쿠팡. "대규모유통업법을 비롯한 공정거래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이번 지급기한 변경은 지급 조건을 법 규정에 맞추기 위합니다. 소상공인과의 동반성장을 위한 노력과 지원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번 계약 변경도 거래 파트너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상생 노력의 일환입니다."

마켓컬리. "컬리는 전체 상품의 94%가 직매입으로,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하게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른 정산 주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직매입은 매입 빈도가 높아 횟수별 정산이 매우 복잡할뿐더러, 컬리의 사업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식품 외 비식품 상품군을 점차 늘려가면서 상품별 특성에 최적화된 정산주기가 필요해 기간을 구분하여 파트너사에 지급하고 있습니다."

■ " 지급기한 변경은 파트너사들을 위한 조치? … 거래업체들도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어쩔 수 없이 갑과 을을 소환합니다. 판매자들은 '을'입니다. 방송 인터뷰는 반드시 '음성변조'를 요구했습니다. 행여 관련 인터뷰를 했다가 갑의 노여움을 살까, 그래서 주문이 끊길까 눈치를 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게 아닙니다.

"마켓컬리는 지난해까지는 30일 안에 들어왔어요. 예를 들어 5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판매된 분을 6월 30에 줬어요. 근데 올해부터 갑자기 이걸 60일 주기로 바꿨어요. 쿠팡이 60일 주기거든요. 그러면서 발주는 되게 자주 들어와요. 2-3일에 한번씩, 조금씩 조금씩 소량으로 발주하면서 저희한테는 60일 정산주기를 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일은 많아지고 정산은 늦게 받는 꼴인 거예요." - 거래 판매업체

쿠팡과 마켓컬리가 하루 배송을 위해 창고에 물건을 가져다 두더라도 재고 부담은 떠안지 않기 위해 물품을 자주, 소량 발주한다는 겁니다.

업체들은 불만이 있어도 왜 60일 동안 판매대금을 주지 않는지 강력히 따지지 못합니다.

"매출은 컬리랑 쿠팡이 제일 많고요. 저희 전체 매출의 반 이상이 사실 거기서 나와요. 그 두 곳이 무너지면 저희는 굉장히 타격이 크거든요. 소기업으로서 사실 회사 이름 밝히고 이런 얘기를 하면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인 거죠. 무슨 프로모션할 때 안 넣어줄까 봐요. - 거래 판매업체

안 쓰고 싶어도 안 쓸 수 없는 … 선 정산대출

물건을 팔아놓고도 제때 돈을 받지 못하는 업체들. 60일 동안 돈은 못 받아도 생산은 계속 해야 합니다. 앞으로 받을 돈은 있지만, 당장 수중에 돈은 없습니다. 이들을 겨냥한 금융상품이 출시됐으니 바로 '선 정산대출'입니다.

'선 정산대출'이란 나중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받게 될 정산 자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 주는 상품입니다. 1·2·3 금융권 모두 '선 정산대출'을 해 주는데, 3금융권으로 갈수록 이자는 더 세집니다. 시중은행에선 연 6% 안팎 이자로 대출을 받지만, 3 금융권까지 넘어가면 법정 이자 한도인 20%에 가까운 고금리가 적용됩니다. 쿠팡과 마켓컬리 판매자라면 1금융권에서 대부분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간혹 심사에서 자격 요건에 미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2·3 금융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업체들은 하소연합니다.

한 판매업체는 이자가 아까워 안 쓰고 싶어도 안 쓸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산주기가 60일이다 보니까... 물건은 계속 판매가 되잖아요. 그럼 물건 생산할 때 공장에 대금을 지불해야 되잖아요. 근데 그 대금이 없잖아. 이미 물건은 5억 어치 다 팔았어. 내일 또 팔아야 하는데... 공장에 대금을 지급해야 물건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선정산을 받아서 물건값을 지불하고 계속 납품을 하는 거예요. " - 거래 판매업체

제때 정산을 받기만 한다면, 굳이 '선 정산대출'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당연히 온라인플랫폼으로서도 할 말이 많을 겁니다. 오픈마켓과는 달리 직매입의 경우, 물류·재고 관리 등 수반되는 비용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런 비용은 이미 소비자가에 반영된 게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쿠팡·컬리·이마트·롯데마트, 어차피 같은 직매입?

티메프 사태가 터지자 여기저기서 토론회가 마련되고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티메프와 같은 오픈마켓 대책이 필요하단 목소리와 더불어 온라인몰의 직매입 정산기한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쿠팡, 마켓컬리의 직매입은 이마트, 롯데마트와 같은 '대규모유통업법' 내 정산기한 규제를 받습니다. 참고로 이마트는 정산기한이 최대 45일, 롯데마트는 최대 50일입니다.

어차피 직매입이란 방식은 같으니,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같은 규제를 적용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쿠팡, 컬리는 오프라인 매장보다 훨씬 더 많은 상품을 취급합니다. 판매물품을 전시할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마트, 롯데마트에선 빙그레·롯데· 해태 등 주로 브랜드 아이스크림을 팔지만, 쿠팡과 컬리에선 중소 업체에서 생산·수입한 아이스크림을 포함해 훨씬 다양하게 판매합니다.

온라인몰이 오프라인 몰보다 훨씬 더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판매자와 거래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규제가 능사가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규제가 능사는 아닙니다. '대규모유통업법' 사례에서 봤듯이 '직매입 60일 이내' 라는 신설 조항은 오히려 일부 기업들이 정산기일을 늘리는 근거가 됐습니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26일, '획일적이고 섣부른 규제는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이커머스 사업자에 대한 획일적 규제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산기한 단축과 관련한 무리한 규제 도입이 기업의 현금 유동성을 악화시켜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거란 우려도 이유 중 하납니다.

반면,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

Q. 일괄 규제를 하면 이커머스 시장이 위축될 수 있으니 '자율'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A. 왜 이커머스사업자가 두 달 동안 판매자가 받을 대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두 달 동안 정산을 안 하고 있어야만 기업이 돌아가는 건지... 사실 그건 바람직하지 않거든요. 그게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잖아요. 그럼 정산주기를 짧게 하면 시장이 안 돌아갈까? 대금을 다른 데 활용할 수 있게 여지를 남겨주고, 그래야만 시장이 돌아갈까?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서로 잘 되려고 거래를 하는 거지 나만 잘 되고 상대방은 잘 안 되면 그것은 제대로 된 거래가 아니잖아요. 그런 거래의 구조가 잘 정착돼야 한다고 보고요. 정부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거래 당사자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줄 수 있는 부분들이 필요합니다. 이미 거래는 '상품'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거래 외에 다른 부수적인 걸로 또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행위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이정희/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쿠팡과 컬리는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판로를 확대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 공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더 좋은 이커머스· 더 오래 가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소상공인과 상생할 수 있는 정산기한에 대해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동반성장', '상생'이 핫한 추세입니다.
※ KBS산업과학부는 온라인플랫폼 등 각종 상거래에 대한 소상공인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연락처 hydrog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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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기자 (hydrog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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