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매직’ 안 통한 늦더위, ‘스릴러 매직’으로 달래볼까
9월이 코앞인데 한낮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35도를 맴돈다. 자연의 힘이라는 ‘처서 매직’(절기상 처서가 지나면 마법처럼 선선해진다는 의미의 신조어)도 역대급 더위 앞에선 맥을 못추는 모양새다. 늦여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스릴러 매직’으로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여름 막바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스릴러 드라마 2편이 시청자의 흥미를 끌고 있다. MBC 금토 드라마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 Black Out>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다.
지난 16일 첫 방송된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 Black Out>은 모범생 고정우(변요한)가 하루아침에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같은 학교 친구 2명을 살해한 혐의로 10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정우가 출소 후 고향으로 돌아오자 마을은 술렁인다. 죗값을 치르고 나왔지만 정우는 여전히 자신이 사건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블랙 아웃’(의식 상실) 상태였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출소한 뒤 그날의 진실을 추적하는 정우의 시선을 좇으며 전개된다. 사라진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나가는 과정에서는 이 도시의 권력자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욕망이 드러난다. 정우의 누명이 어떻게 벗겨질지, 매 회차 조금씩 주어지는 단서를 통해 함께 추리해나가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재미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2010)을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 <화차>의 변영주 감독의 첫 드라마 도전작이기도 하다. 같은 시간대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 SBS <굿 파트너>에 밀려 4%대 시청률을 기록 중이지만 더운 늦여름에 잘 어울리는 스릴러다. 총 14부작이다.
추리의 재미보다 더위에 찬물을 끼얹은 서늘함을 원한다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적합하다. 지난 23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 8부작 드라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Black Out>과 사뭇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인적이 드문 숲속에서 홀로 펜션을 운영하는 영하(김윤석)에게 어느 날 예정에 없던 투숙객이 찾아온다. 모자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아이는 하룻밤 머물고 떠난다. 손님이 떠난 자리를 살피던 영하는 아이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지만, 두려움에 모른 체 한다. 1년 뒤, 여자가 다시 한 번 펜션을 찾아온다. 호수 옆 모텔을 운영하는 상준(윤계상)도 손님을 맞는다. 손님이 떠난 객실에선 처참한 상태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상준과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난다.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지만 피해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이들은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이 드라마가 여타 다른 작품들과 다른 개성을 갖는 것도 이 지점이다.
드라마는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각각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서스펜스 스릴러로서 장르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충실해 8부 내내 묘한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영상과 미장센은 그 자체로 볼거리지만 극에 깔린 미스터리함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언뜻 관계 없어 보이는, 영하의 펜션과 상준의 모텔에서 각각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이 극 후반부 하나로 모아지는 과정이 흥미롭다.
김윤석, 이정은, 윤계상, 고민시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특히 갑자기 찾아온 미스터리한 불청객 ‘성아’ 역의 고민시가 눈길을 끈다. 그는 지고지순한 첫사랑(<오월의 청춘>), 톡톡 튀는 다방 마담(<밀수>)에서 기묘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미친 여자’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다소 느리게 흐르는 초반부는 물론 빠르게 진행되는 중·후반부까지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극을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보기 드물게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이다.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모완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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