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획일적이고 섣부른 규제가 초래할 혁신의 위기

2024. 8. 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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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대표

최근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인해 입점 사업자와 소비자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는 티메프 미정산 피해액이 1조2800억원에 달하고, 피해업체는 4만8124개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번 사태 피해 지원을 위해 긴급 경영안정 자금을 편성하고, 각 지역 피해 업체에 대한 직접 대출이나 이차보전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회와 정부는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정산 기한을 단축하고 에스크로 제도를 의무화하는 등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실제 국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5~30일 이내를 정산 기한일로 정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플랫폼 사업자 책임 강화와 관련 법·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규제당국이 논의하고 있는 추가규제의 주요 내용은 '논밭의 해충을 잡기 위한 제초제'가 아니라 농작물과 토양을 초토화할 정도로 무모하고 강력하다. 과연 국내 플랫폼 생태계에는 어떤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의 재무역량은 어떠하고, 소비자 피해를 포함한 사고율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실태조사라도 되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긴 정산 주기가 아니라, 이미 재무구조가 취약한 특정 업체가 유동성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정산 자금 범위를 넘어 방만하게 활용 또는 유용하다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즉 이번 사태가 플랫폼 산업의 한축인 이커머스 업계 전반의 문제로 단정하고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거나 이중 규제 할 것이 아니라,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경영 지도기준을 준수하도록 이커머스 기업의 유동성 관련 지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획일적이고 섣부른 규제를 도입할 경우 발생하는 부정적 파장은 향후 또 다른 문제를 연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첫 번째는 과도하게 정산기한을 단축하면 일일 정산·송금으로 인한 비용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지급주기·청약철회 등에 따라 정산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함에도 대기업과 달리 시스템 개발이 어려운 벤처·스타트업의 경우 정산기한 단축을 위한 인건비 등 투자비용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벤처·스타트업은 대형 플랫폼과 달리 자금 확보 수단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악화하면 서비스 질 저하, 신규 투자 지연, 인력 축소 등 운영상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투자한 플랫폼 기업들의 기업밸류가 낮아지는 상황으로 향후 신규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정산주기 규제가 도입될 경우 벤처·스타트업이 운영하는 플랫폼은 정상적인 사업 확장과 혁신을 추진하기 어려워지고, 이러한 어려움은 궁극적으로 관련 산업 전체 줄폐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두 번째는 합리적 규제 수준을 넘어 판매대금의 전부 또는 과도한 비율로 제3기관에 예치·신탁을 강제하는 규제가 도입되면,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중소기업을 포함한 오픈마켓 업계 전체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

또 자본력이 부족한 벤처·스타트업에게 시장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대형 플랫폼들이 주도하고 있는 시장에서 벤처·스타트업들은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이며 경쟁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 결과 신생 벤처기업 진입이 감소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줄어들어 우리 경제 성장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산주기 단축, 에스크로 의무화 등 새로운 규제 도입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섣부른 판단으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게 되면 자금경색과 유동성 악화로 중소 이커머스 기업들은 당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고, 결국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혁신적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전체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정은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고, 입점 사업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온라인플랫폼법 도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22대 국회에서는 현재 총 8건의 플랫폼법이 발의된 상황이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관련 법안 제정을 적극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랫폼법은 온라인에서의 독과점을 규제하기 위해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을 사전 지정하고 규제를 시행하겠다는 건데, 이 또한 중소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끼칠 부작용과 해외사업자에 대한 적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두르는 섣부른 규제가 될 수 있다.

벤처기업들은 이번 법안이 법제화되면 벤처기업 혁신 시도가 위축되고, 이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성장동력을 상실한 채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플랫폼 경쟁촉진법을 추진함에 있어 파생되는 우려사항에 대한 동의 현황 (자료=벤처기업협회)

지난 2월 벤처기업협회 설문에서 벤처기업의 68.7%는 플랫폼법 도입을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84.2%는 해당 법안으로 인해 플랫폼 산업이 위축되고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즉 플랫폼법이 도입되면 중소 플랫폼 사업자들을 시장지배적 플랫폼으로부터 보호해 플랫폼 산업 혁신과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국회와 정부의 주장과 실제 업계의 인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기술창업기업 수가 2021년 말 약 24만개에서 지난해 말에는 약 22만개로 10% 이상 감소했다. 옛말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말이 있다. 일부 기업의 방만 경영과 지배적 사업자의 일탈을 바로잡기 위해 도입하려는 규제들이 자칫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통해 성장하는 벤처생태계를 위축시키고 결국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그 빈 곳은 몸집을 키우고 있는 해외기업들이 채울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려는 과정에서 벤처·스타트업과 같은 혁신적 생태계가 불필요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규제 취지를 살리되, 벤처기업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법안 적용 방안을 마련하고, 규제와 혁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대표 eric.sung@kova.or.kr

〈필자〉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은 1972년생으로 대구 달성고,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앤더슨컨설팅을 다니다 2004년 위성통신 안테나·솔루션 전문 기업인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를 창업, 2016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2018년 전파방송기술대상 대통령 표창, 2020년 무역의날 장관 표창, 지난해엔 한국거래소 코스닥 라이징스타 선정, 광대역 국제위성통신 인증, 1억불 수출 탑을 수상했다. 2016년부터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20년 11월부터는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며 국가 경제 활성화와 벤처생태계 발전에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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