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사는것(BUY)도 사는것(LIVE)도 위험…'낙인' 지우려면?
[편집자주] 비(非)아파트 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전세사기로 촉발된 '빌라 포비아'에 공급과 수요가 뚝 끊겼다. 수요가 쏠린 아파트 전세·매매가격은 부풀어 올랐다. 정부는 시장 안정을 위해 비아파트 수요·공급 활성화에 나섰다. 빌라 포비아에 잠식된 시장과 이후 대책을 짚어봤다.
서울의 주택공급에서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은 서민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주거 기회를 제공하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전세사기와 역전세 문제로 인해 이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는 아파트 수요를 부추기고, 결국 아파트값 과열을 부추겼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소형 비아파트 구입 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청약 시 무주택으로 인정되는 비아파트의 범위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비아파트 투자 수요를 자극해 공급을 촉진하고, 다시 한 번 비아파트가 서민 주거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대책이 실제로 빌라 매수세를 촉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특히 침체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세제 혜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아파트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전세사기와 역전세로 인해 시장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정부의 의도처럼 무주택자가 소형 비아파트를 발판으로 삼아 아파트 청약에 나서거나, 유주택자가 임대사업에 뛰어들기는 어렵다.
특히 임대인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126% 룰' 폐지는 이번 대책에서 빠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공시가격의 150%에서 126%로 강화되면서 역전세 문제를 심화시켰고, 이는 빌라 기피 현상을 더욱 가중시켰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비아파트 시장의 회복을 위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제도의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 주택시장이 침체됐을 때, 아파트 분양사업이 어려워지면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사용됐지만, 2015년 이후 세입자 권익 강화 조치가 제도화되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는 임대료 관련 분쟁을 초래했고, 임대사업자가 설 땅이 좁아졌다.
세입자 권익 보호 차원에서 인정건축비, 임대료, 분양 전환 주체 및 시기, 기준 등에 대한 규정이 강화됐다. 비현실적인 표준건축비가 적용되면서 손실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뉴스테이와 기업형 임대주택 등을 도입했지만, 분양 전환 시기가 도래하면서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비아파트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반환보증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3년 정부는 HUG의 반환보증 가입 시 적용되는 주택가격 산정 방식을 변경해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반환보증 가입 범위가 축소됐고, 이는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을 뿌리채로 흔들었다.
임대인은 후임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또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없는 전세주택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임차인들은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전세주택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순수 전세거래 비중이 감소하고, 월세 또는 반전세 거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저소득 임차인의 주거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126%를 135%로 조정하는 등 임차인 보호를 위해 반환보증 가입 대상 요건을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또 역전세대출 프로그램의 시행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환보증제도의 장점을 고려해 일반 임대인도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보증 가입 임대인에게 재산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8·8 대책은 비아파트 시장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지만, 현재로서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비아파트, 특히 빌라에 대한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신뢰 회복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빌라시장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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