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이 기막힌 스릴러가 끝내 들려준 쿵 소리의 정체
[엔터미디어=정덕현] 고요한 숲속에 자리한 펜션. 턴테이블 위에 올려진 바비 블렌드의 레코드판이 돌아가며 'Ain't No Love in the Heart of the City'가 흘러나온다. 고요해서 더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울 가득한 바비 블렌드의 목소리는 어딘가 절절하면서도 쓸쓸하다. 그 앨범은 이미 세상을 떠난 전영하(김윤석)의 아내가 취미로 모았던 것들 중 하나다. '당신이 곁에 없어서 사랑은 없다(Ain't no love since you're not around)'고 외치는 바비 블렌드의 노래가 더 절절하게 들리는 이유다.
아내가 죽은 후 창고에 넣어뒀던 그 앨범을 꺼낸 건 어느 날 펜션에 아이와 함께 온 손님 유성아(고민시) 때문이다. 하지만 유성아가 떠난 후 방을 치우다 그 레코드판을 들어올린 영하의 손이 순간 흠칫한다. 판 위에 피가 튀어 있다. 그러고보니 곳곳에 락스로 무언가를 치운 흔적들이 역력하다. 블랙박스에 찍힌 유성아가 떠나는 장면을 보니 놀랍게도 아이가 없다. 그 방에서 무언가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걸 감지하지만 전영하는 이를 신고하지 않는다. 대신 흔적들을 지우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영하의 '외면'은 진짜 있던 일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지게 해줄까.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현재 벌어진 영하의 사건과 함께 과거 2001년 인근 호수 근처에 있던 레이크뷰 모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병치한다. 억수로 비가 쏟아지던 날, 모텔 바깥에 서 있던 차를 본 모텔 주인 구상준(윤계상)과 그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이다. 구상준은 그 차에 탄 지향철(홍기준)에게 다가가 굳이 모텔에 들이지만, 그 선택은 엄청난 비극으로 돌아온다. 그가 희대의 연쇄살인마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벌어진 토막살인사건은 모텔을 또 구상준의 가족을 모두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현재 벌어진 전영하의 사건과 2001년 벌어졌던 구상준의 사건을 굳이 시간을 구분해 적시하지 않고 병치해 보여준다. 따라서 시청자들에게는 이것이 같은 시간대에 벌어진 것 같은 착시효과를 만든다. 물론 보다 보면 그 두 사건이 시점이 다르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지만 굳이 모완일 감독은 왜 이렇게 모호하게 시점 처리를 했던 걸까. 그건 다른 사건이지만 두 사건이 너무나 닮았고 또 연결고리 또한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그 연결고리는 이 작품이 화두처럼 매회 던져 놓은 내레이션에 단서가 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이 내레이션은 영국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했던 '아무도 없는 숲에서 큰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조지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지각되지 않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뜻이다. 즉 아무도 보지 못했다면 커다란 나무가 쓰러진 게 아니고 쿵 소리도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자신이 직접 살인현장을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치부했던 전영하의 생각은 과연 사실이었던가. 오히려 있는 사실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이런 일은 구상준의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겨난다. 연쇄살인범 지향철을 모텔에 들인 일 하나로 구상준과 가족들은 지독한 비극을 겪지만 그 누구도 그 비극의 실체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렇게나 자기들끼리 떠들어대고 심지어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들을 벌인다. 언론은 자극적인 범죄 이야기만 할 뿐, 이로 인해 생겨난 구상준 같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지향철조차 면회를 온 구상준이 누군지 몰라본다. 왜 나냐고 묻는 구상준에게 지향철은 말한다. "나는 그냥 내 길을 가고 있었고 그 길 위에 너네들이 있었지. 거기 왜 있었어요? 그때 그날에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었는데. 이런 질문들을 본인 스스로한테 해요. 남탓하지 말고. 네 가족들이 뒈진 건 뒈질 팔자니까 그랬지. 나랑은 상관이 없어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영어 제목이 <더 프로그(The frog)>다. 즉 누군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를 뜻한다. 그 누구도 주의 깊게 봐주지 않아 그런 죽음은 없는 것처럼 치부되고 심지어 아무렇게나 떠드는 이들에 의해 2차 피해까지 겪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이 스릴러는 담고 있다. 2001년 구상준에게 벌어졌던 사건이 이러한 개구리가 된 피해자들의 고통을 그렸다면, 현재 전영하에게 벌어진 사건은 그런 누군가에게 벌어진 일을 외면한 이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그린다.
그렇게 떠나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나갈 것 같았던 사건은 1년 후 다시 그 펜션을 찾은 유성아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유성아의 폭주는 그래서 끔찍한 사이코패스의 잔혹함과 더불어 외면함으로써 사건을 방조했던 자들이 또한 공범일 수 있다는 단죄의 의미도 담겨 있다. 결국 이 독특한 스릴러는 이 두 사건을 통해 아무도 없는 숲속이지만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고 쿵 소리도 났다는 걸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사건 사고들. 하지만 그것을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저 지나치고 아예 벌어지지 않은 일들처럼 치부하는 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 외면이 장차 부메랑처럼 우리에게도 돌아올 충격적인 쿵 소리를 이 작품은 섬뜩한 스릴러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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