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기하학적 재구성…韓추상미술 거장 유영국 미공개作 대거 나와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8. 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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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가 저마다 다른 색깔을 하고 있다.

1948년 서울대 미술부 교수로 부임하면서는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新寫實派)'를 결성해 한국의 현대미술 운동을 주도했다.

현재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 전시로 현지 팔라초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에서 특별전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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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PKM갤러리 개인전
희귀 소작품 포함 34점 전시
유영국 ‘work’(캔버스에 유채, 24.5×33.3㎝, 1967). PKM갤러리
산봉우리가 저마다 다른 색깔을 하고 있다. 강렬한 색채는 대비를 이루지만 오히려 한폭의 색동 저고리처럼 조화롭다. 산의 형태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웅장하면서도 담백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해도 간결하다.

제 자리에서 긴 시간을 건너가는 자연은 한결 같지만 사람의 마음 상태는 시시각각 요동친다. 한국 추상 회화의 선구자인 고(故) 유영국 화백(1916~2002)은 이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자연 풍경을 그렸다. “바라볼 때마다 변하는 것이 산이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것이다.”

유영국 화백의 개인전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가 오는 10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 화백의 1950~1980년대 캔버스 유화 작품과 화가로서 삶의 궤적을 담은 아카이브 자료가 소개된다. 특히 회화 전시작 34점 가운데 21점은 이제껏 외부에 공개된 바 없는 미공개 작품으로, 대작 위주로 작업해온 유 작가가 생전에 간혹 그렸던 10호 이하의 희귀 소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유 화백의 둘째 딸인 유자야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아버지께서 1960년대 서울 약수동에서 사실 적에 화실이 아주 추웠는데, 휘발유가 비싸니까 종종 안방 앞에 있는 긴 마루에서 작은 그림을 그리셨다”며 “소품의 완성도도 굉장히 높았지만 사람들이 소품을 너무 싸게 사려고 하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가격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아예 안 팔고 보관만 해왔다. 그 작품들을 이번 기회에 처음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유영국 화백의 개인전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가 진행 중인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 전시장 전경. 대작을 하기로 유명한 유 작가가 생전에 간혹 그렸던 10호 이하의 미공개 희귀 소품이 대거 전시됐다. PKM갤러리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 화백은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했던 도쿄 문화학원에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김환기, 장욱진, 이중섭 등과 교류했던 그는 가장 전위적인 미술 운동이었던 추상미술을 택했다. 새로운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독립미술협회, 자유미술가협회 등 그 시절 일본에서도 매우 진보적인 미술 단체에서 활동했다. 1948년 서울대 미술부 교수로 부임하면서는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新寫實派)’를 결성해 한국의 현대미술 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6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개인 작업에 몰두하면서 한국 전통의 자연관과 서양의 추상 미술을 접목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격정적인 한국 근현대사의 혼란 속에서 그는 자연을 통해 예술과 삶의 본질을 통찰하고자 했다. 고향 울진의 산, 바다 같은 자연의 풍경을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채와 선과 면, 삼각형 같은 절제된 기하학적 형태와 공간 분할로 재해석했다. 실제 눈앞에 보이는 자연 풍경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대신 자연을 통해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숭고함과 한국적인 정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색채와 형태 실험에 평생을 바쳤다.

현재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 전시로 현지 팔라초 퀘리니 스탐팔리아 미술관에서 특별전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을 진행 중이다. 오는 11월 4일까지 이어지는 유 화백의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은 지난해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 개인전에 이은 유 화백의 두 번째 서구권 전시로, 유럽에서 유 화백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도 유 화백의 ‘산’ 시리즈를 선보이는 ‘보이는 수장고: 유영국’이 9월 29일까지 열린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유영국 선생님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개인전을 열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며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굉장히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국 ‘work’(캔버스에 유채, 73.5×91.5㎝, 1974).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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