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로창고극장 "청년예술가 발굴…'인큐베이팅 팩토리' 시작"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전세대출 연장을 하려는데 집주인이 바뀌었어요. 집주인 눈치가 보여서 한꺼번에 요청하고 싶은데 은행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았어요. 서류들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은행 직원 대답이 '몰라요' 하더라고요. 내가 어디에 머물 수 있느냐가 달려있는데 누구에게는 모른다는 한 마디로 가능한 이야기구나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세사기에 대한 극본을 쓴 계기예요." (프로젝트 사이 이민구 연출)
국내 최초의 민간 소극장 삼일로창고극장이 청년예술가 발굴 프로젝트 '삼일로 인큐베이팅 팩토리'를 시작한다. 오는 9월12일부터 극단 전원의 '비타민 D', 프로젝트 사이의 '개 짖는 소리', 공연창작소 숨의 '광인일기' 세 작품을 선보인다.
손정우 삼일로창고극장 이사장은 28일 서울 중구 저동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예술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극장이 청년 예술가들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년예술가 발굴·지원…'인큐베이팅 팩토리'
극장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예술가 발굴 및 작품 개발은 물론 새로운 연극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3년간 3단계 로드맵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1단계로 예술인 발굴에 주력한다. 2단계인 내년에는 연극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작품 유통망을 확보한다. 2026년 3단계는 지속적인 작품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이 기획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극장은 매년 새로운 1단계 청년 예술인을 선정한다.
김정근 삼일로 인큐베이팅 팩토리 총예술감독은 사업이 단발성에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며 "영화계의 '기생충'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연출을 발견한다면 연극협회의 다른 사업에 참여하거나 해외 페스티벌에도 진출시킬 것"이라고 했다.
김건표 드라마 투르그는 "삼일로창고극장만의 공간을 재발견해 독창적인 연출을 발굴, 육성시키자는 게 (인큐베이팅 팩토리의) 핵심 역할"이라며 "삼일로가 다시 연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삼일로만의 연극이 개발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란 드라마 투르그는 "한 명의 드라마 투르그가 한 작품을 각각 책임지는 체계가 아니라 세 명이 세 작품을 같이 논의하며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식으로 소녀가 죽었다는 가짜 뉴스…'비타민 D'
이 작품은 미디어의 정보를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작품 속 대중을 통해 우리 모습을 돌아보자는 취지다. 이를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무대 위에 보다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백로라 드라마 투르그는 "콘텐츠 자체보다는 극장에 들어온 관객들이 미디어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모바일 이버시브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며 "관객이 입장하는 순간부터 스마트폰을 켜고 시작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12~15일 공연을 앞두고 있다.
주거 불안정은 전쟁이다…'개 짖는 소리'
전세사기를 당한 하준은 고시원 앞에서 새벽 2시마다 짖는 개를 죽이고 개집에서 살게 된다. 전세사기의 주범인 '빌라왕'을 찾았지만 바지사장이던 빌라왕들은 이미 자살한 상태. 전셋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게 된 하준의 개집에 전쟁난민 마람이 찾아온다. 마람은 동물원의 고뿔소 뿔을 잘라 팔려는 계획이다. 하준은 마람의 계획에 동참해 함께 동물원으로 향한다.
이민구 작·연출은 "청년들이 내 집을 갖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받아들일 때 생기는 불안은 전쟁터의 불안과 닮아있다"며 "이 불안의 공통점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작품을 썼다"고 설명했다.
요즘 광인은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광인 일기'
한 청년이 청년인턴제 합격으로 우쭐한 나날을 보낸다. 얼마 안 가 서류심사 논란으로 채용은 무효 처리되고 몇 달간 받은 월급까지 반환해야 될 위기다. 상실감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어느 날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지만 불만을 표출하는 것조차 귀찮아 입을 꾹 다문다. 시체 같은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청년은 자신이 광인인지조차 모른다.
우리의 상상 속 광인은 흔히 괴성을 지르고 몸부림치는 과흥분 상태다. 하지만 지금은 이불 속으로 파고만 드는 현재 청년들의 상태가 이 시대가 광인이 아닐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정욱현 연출은 "우리 시대의 광인은 누굴까, 누가 청년을 미쳐가게 했나 하는 질문으로 시작하게 됐다"며 "공연을 통해 광인이 돼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경각심을 동시에 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일로 창고극장은 국내 최초의 민간 설립 극장이다. 연출가 방태수가 1875년 명동성당 뒤편 삼일로 큰길 옆 언덕배기 허름한 창고 건물을 사들여 '에저또 창고극장'으로 꾸미며 시작됐다 1977년 배우 추송웅(1941~1985)이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초연해 1인극 열풍을 이끌었다.
재정난으로 폐관과 재개관을 거듭한 극장은 인쇄소나 김치공장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2013년 서울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위탁 운영으로 재개관했다. 올해부터 3년간은 한국연극협회가 위탁 운영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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