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가짜 과학
지난 1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이 다시 등장했다.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1주년을 맞이해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일부 괴담 발신자와 야당의 황당한 억지를 언론이 다시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부끄러운 오류와 억지에 대한 반성이나 괜한 혼란에 시달렸던 국민에 대한 사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현대 과학과 기술을 거부하고 정부와 과학자를 불신하도록 만들었던 불통과 억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방류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던 '괴담'
후쿠시마에서 방류를 시작하면 곧바로 우리나라 해역이 전부 삼중수소를 비롯한 치명적인 방사성 오염물질로 뒤범벅이 되고 감당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의 핵심이었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의 해양 방류 계획을 밝힌 2019년 가을부터 등장해서 우리 사회를 통째로 뒤집어 놓았던 괴담이 정작 본격적인 방류가 시작된 작년 8월 24일부터 언론과 유튜브에서 신기할 정도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방류가 시작되어 구체적인 실측 자료가 실시간으로 공개되면서 엉터리 괴담의 핵심이었던 부끄러운 '가짜 과학(fake science)'이 설자리를 잃어버린 덕분이었다.
지난 1년 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서 7차례에 걸쳐 태평양으로 방류한 오염수의 총량은 5만5000톤에 이른다. 현재는 지난 7일에 시작한 8차 방류가 진행 중이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이용해서 방사성 핵종의 대부분을 제거한 '처리수'(treated water)를 바닷물로 충분히 희석한 후에 해저 터널을 통해 방류한다.
물론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후쿠시마 근해의 삼중수소 오염도를 '후쿠시마 제1원전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던 때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국제 사회에 제시한 확실한 약속이다. 문재인 정부도 일본의 그런 계획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지난 1년 동안 후쿠시마 인근 해역의 삼중수소를 비롯한 방사성 핵종의 농도가 기준치를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었다. IAEA의 전문가가 방류 현장에 상주하면서 함께 확인했고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도 29차례나 전문가를 파견해서 확인했다.
모두 243개소에 해양 방사능 조사 설비를 설치·운영하면서 모든 관측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해역에서도 이상 징후가 확인된 적이 없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 대한 적극적인 방사능 검사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약 5만 건에 가까운 방사능 검사 중 실제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된 경우가 없었다. 더욱이 일본의 후쿠시마 인근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수입은 여전히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수입하는 수산물에 대해서도 엄격한 생산지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가 총 1조6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고 최근 설명했다. 괴담이 아니었더라면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명백한 낭비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100% 확신했다면 그런 예산을 집행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은 억지다.
● '불확실한 미래'를 먹고 사는 괴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괴담'은 당장 공개적 확인이 불가능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삼는다. 세월이 흘러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괴담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물론 괴담으로 발생하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괴담을 만들어낸 인물이나 단체가 사과하거나 비용을 떠맡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KTX 터널 완공과 함께 사라진 2003년 천성산 도롱뇽 괴담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함께 사그러들었던 2008년의 광우병 괴담이 그랬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괴담이나 작년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도 마찬가지였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1주년을 맞이해서 언론이 애써 되살린 후쿠시마 오염수 2차 괴담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제2의 태평양전쟁'이라고 우겼던 야당은 "오염수가 우리 바다로 돌아오는 것은 4~5년 후의 일이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다"면서 억지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2011년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2년 동안 하루 500톤의 오염수가 직접 바다로 흘러 들어갔던 명백한 사실을 무시한 궤변이다. 실제로 상당한 수준의 해양 오염이 발생했지만 우리 해역에는 지금까지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났는데 아무 일 없지 않냐로 들이대는 것은 무지(無知)와 경망의 비논리"라는 주장은 그런 사실을 무시한 무의미한 억지라는 뜻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의 원조(元祖)였던 일부 학자들의 입장이 기묘하다. 쿠로시오 해류도 모자라 낯선 '심층해류'와 '평형수'까지 들먹이면서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당장 우리 해역이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특히 제주도의 해녀가 위험하다고 떠들썩하게 경고했다가 뒤늦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금 배출되는 물은 정류된 것이기 때문에 처리수에 가깝다. 1조 원을 투자해 (방사능 검출) 조사를 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나올 수가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생방송 뉴스에서 "(태평양에서 잡은 생선으로) 저녁 식사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혔던 2013년 11월 자신의 당초 입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물론 세상을 불안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예산을 낭비하게 만든 억지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 '가짜' 과학과 '유사'(類似) 과학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1995년 '악령이 출몰 세상'(사이언스북스, 2022)에서 '유사 과학'(pseudo science)의 폐해를 통렬하게 지적했다. 유사 과학은 경험을 통해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확인할 수도 없고 과학적으로 반증(反證)하는 일도 불가능한 억지를 말한다.
어떠한 객관적 근거도 없는 일방적 주장으로 사람들의 이성과 판단력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주술(呪術)과 미신(迷信)이 가장 널리 알려진 유사 과학이다.
가짜 과학(fake science)은 그런 전통적인 유사 과학보다 더 악의적이다. 스스로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명백하게 확인된 과학적 사실을 정면으로 거부해 버린다. 물론 그런 가짜 과학이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단순한 실수나 오류일 수도 있다. 요소수 대란이 벌어졌을 때 암모니아를 석탄에서 뽑아낸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이 그랬다. 요소수의 품질에 대한 선무당급 전문가의 과도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만들어낸 '가짜 과학'은 차원이 달랐다. 감당하기 어려운 국민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철저하게 외면해 버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열도의 태평양 연안에서 방류한 오염수가 시코쿠와 규슈를 돌아서 우리나라 해역까지 흘러온다는 주장부터 가장 초보적인 과학 상식을 벗어난 억지였다.
정수기의 원리를 따르는 ALPS를 이용한 '처리'와 충분한 양의 물을 이용한 '희석'이 오염수에 의한 오염을 해소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기술이라는 사실도 무시했다. 삼중수소를 비롯한 방사성 오염물질이 바닷물에서 충분히 희석·확산한 후에는 유해성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현대 과학이다.
가짜 과학에서 출발한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고집하던 일부 몰상식한 과학자들의 억지는 볼썽사나운 것이었다. 하루 120톤의 오염수를 처리·희석·방류하는 일이 '유례없는 시도'라고 우기고 "과학적으로 100%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하면 안전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던 전자공학자도 있었다.
그런 입장이라면 자동차와 비행기도 안전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개발한 모든 기술을 '편익'과 '위험'(危害)을 함께 가지기 마련이다. 편익은 극대화하고 위험은 기술 개발과 제도 개선으로 최소화하는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태계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적 안전성'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물리학자도 있었고 어설픈 '과학'보다 확실한 '국민적 신뢰'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과학사학자도 있었다. 국민적 신뢰를 잃어버린 과학자가 함부로 '과학'을 들먹여서는 안 된다는 궤변이었다.
IAEA의 보고서는 신뢰할 수 없고 화학적 성질이 수소와 빼닮은 삼중수소가 생물체의 몸에 '생체축적'이 된다고 우기는 역학자(疫學者)도 있었다. 놀랍게도 모두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특정 대학의 이공계 교수였다.
어설픈 과학자만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도 아니다. 인문학자의 억지도 만만치 않았다. '진보의 과학'과 '보수의 과학' 중 '어느 쪽 과학'이 옳은지를 모르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부끄러운 역사학자도 있었다. 현대의 기술로 세계가 놀라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 사회에 현대의 '과학'과 '기술'을 통째로 거부하는 반(反)과학적 정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언론의 상황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짜·유사 과학을 걸러내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짜·유사 과학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정범진 경희대 교수와 정용훈 KAIST 교수와 같은 원자력공학자의 용기 있는 소신과 노력을 주목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정치권의 현실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괴담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에는 어떠한 맥락도 없었고 어떠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도 없다. 사실 알량한 정치적 이득이 국민 안전과 국가 경제까지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괴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서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정치적 입장의 돌변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적 정치'라고 우기는 정치인도 있었다. 국민에 대한 심각한 가스라이팅이다.
과학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과학 지식과 기술에 대한 말초적이고 단편적인 관심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가능하게 만든 '과학정신'(scientific spirit)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현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언제나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가짜·유사 과학이라는 악령(惡靈)이 춤추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만이 우리를 지켜주는 희미한 등불이라는 칼 세이건의 소중한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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