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는 왜 자꾸 선수들에게 질까… 1위 지탱하는 수평 리더십, 선수들 악착같이 뛴다
[스포티비뉴스=광주, 김태우 기자] 지난 2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는 이범호 KIA 감독과 팀 베테랑 최형우 사이의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옆구리를 다친 최형우의 복귀 시점을 놓고 양쪽의 생각이 조금 달랐다.
이범호 감독은 민감한 부위인 만큼 최대한 신중하게 다루길 바랐다. 급하게 복귀했다가 한 번이라도 더 다치면 말 그대로 시즌이 끝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형우는 이 감독의 그런 우려를 이해하면서도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100% 상태가 아닐지라도 스스로 느끼는 통증이 없기 때문에 굳이 더 쉬고 있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논쟁은 최형우의 고집이 이 감독의 고집을 이겼다. 최형우의 뜻대로 23일부터 퓨처스리그 재활 경기에 나가기로 했다. 인상적인 건 감독이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감독이 타이틀을 앞세웠다면 그냥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도 있었다. 선수 기용 권한과 주요 사안의 최종적인 결정은 감독이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임도 진다. 하지만 이 감독은 선수와 트레이닝파트의 의견도 폭넓게 수렴하고 있었다. 최형우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감독의 리더십은 ‘소통’과 ‘수평’을 근간으로 한다. KBO리그 역사상 첫 1980년대생 감독인 이 감독은 현재 KIA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몇몇과는 같이 선수 생활을 했다. ‘선배님’, ‘형’에서 이제는 감독이 됐는데 감독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일상 대화에서도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긴장한 선수들에게는 가벼운 장난도 걸고, 농담도 툭툭 던진다. 그리고 많이 듣는다.
오랜 기간 같은 전장에서 뛴 최형우는 “감독님은 나뿐만 아니라 안전한 것을 원하신다. 뭔가 시간을 좀 더 주기도 하고, 빼주기도 하신다”고 고마워했다. 철저히 선수 위주로 모든 것을 관리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최형우는 “그런데 결국은 감독님이 대부분 진다. 물론 밑에 애들은 아니겠지만 같이 오래하고 했으니까 뭔가 대화를 하면 우리가 이겨먹을 때가 있다”고 웃었다.
2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경기에서도 이 감독이 결국은 선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선발로 나선 양현종은 4회까지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 요건에 1이닝을 남겼다. 그런데 KIA가 4-0으로 앞선 4회 무사 만루 기회에서 갑자기 비가 내려 경기가 52분이나 지연됐다. 선발로 나선 양현종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양현종은 계속 걷고, 또 공을 던지며 몸의 열을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비 때문에 4회와 5회 등판 사이에는 이미 1시간 이상의 간격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5회에는 의도적으로 완급을 조절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구속이 뚝 떨어졌다. 그렇게 위기에 몰리자 이범호 감독이 마운드에 직접 올라 양현종과 대화를 나눴다. 양현종은 더 던지겠다고 했고, 이 감독은 부상 위험이 있으니 우려가 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양현종은 5회를 어렵게 마쳤고 승리투수가 됐다. 양현종은 경기 후 “감독님이 올라와서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고, 오래 쉬었기 때문에 계속 던지면 부상이 올까봐 염려가 된다고 하셨다. 괜찮다고 대답했고 5회를 마무리 짓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이 감독의 우려는 분명한 사실이었고, 양현종 또한 이를 알고 있었다.
양현종은 “비로 중단된 상황에서 팀이 크게 리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단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더 던지고 싶었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운드에 올랐는데 1시간 정도 길게 쉬다 보니 조금 버거운 느낌이 있었다”면서 “다음 등판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서 벤치의 교체 결정이 나면 따르려고 한다.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약속했다.
선수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면서 결정한다. 선수들도 존중받는 느낌을 공유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뛰고,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한다. 자신들의 의견을 감독이 수렴해줬는데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게 KIA는 선수들의 의지가 하나로 뭉쳐 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최형우는 “팀 분위기는 지금 최고다”고 단언한다. 이 감독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수평적인 리더십은 선수들의 책임감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감독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도 팀을 한곳으로 묶으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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