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닉인데? 절대 못 잡아"… 문제의 우울증갤러리, 어떻게 해야 할까 [스프]

김보미 기자 2024. 8. 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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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또다시 집단성범죄가 발생했다는 내용, 지난 편에서 전해드렸습니다. 가해 남성들의 행위 자체도 문제지만, 이번 편에서는 범죄를 더 수월하게 했던 환경에 대해서 짚어보려고 합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vi4Eo0TiEIB ]
 

"범죄자들한테는 최적의 공간"


취재 중에 만난 익명의 유저들과 피해자들은 우울증갤러리를 '범죄자들에게 최적의 공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 말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경찰에서 유동 IP라 특정 못 한다. 그리고 그냥 수사 중지가 나버렸어요."

- 디시인사이드 성범죄 피해자

3년 전부터 우울증갤러리에 자신의 불법 촬영물과 능욕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피해자 A 씨, 이때부터 '지옥의 삶'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혹시나 또 본인의 사진이 올라오지 않을까 매일매일 밤을 지새우며 게시판을 모니터링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몇몇 닉네임을 특정했고 직접 증거물까지 채증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글 게시자를 잡아낼 수 없었습니다.
 
"보니까 통신사 IP였거든요.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변호인 선임해서 고소했는데 결국 특정이 안 되고 수사 중지가 나버렸어요."

- 디시인사이드 성범죄 피해자

이유가 뭐였을까요? 먼저 해당 커뮤니티의 운영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디시인사이드는 1999년도에 생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입니다. 그동안 '익명성'을 내세워 많은 유저들을 끌어모았죠.

초기에는 가입할 때 이메일을 기입했지만, 2021년도부터는 아예 이메일 정보도 폐기하며 완전한 익명성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고정닉', '유동닉'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고정닉'은 고정된 닉네임이란 뜻인데, 사이트에 정식 가입해서 하나의 닉네임으로만 활동하는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판다'라는 닉네임으로 가입했다면, 특정 식별코드를 부여받고 쭉 '판다'로 글을 올리게 되는 겁니다. 같은 닉네임으로 활동하니 게시판 안에서 어느 정도 정체성은 드러나는 셈이죠.

반면 '유동닉'은 가입 자체를 하지 않고, 글을 쓸 때마다 새롭게 닉네임을 정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글을 쓰면 옆에 IP 주소가 남습니다. '판다(211.251)' 이런 식으로 말이죠. 글을 쓸 때마다 닉네임을 바꾸어도 같은 장소에서 글을 게시하면 '아빠 판다(211.251)', '엄마 판다(211.251)' 이런 식으로 IP는 동일하게 뜨는 겁니다.


IP가 기록되는데 왜 못 잡는단 얘기가 나올까요? 문제는 유동 IP입니다.

IP는 크게 고정 IP와 유동 IP로 나뉩니다. 고정 IP는 말 그대로 딱 고정된 IP 주소 한 개를 할당받아 쭉 사용하는 것이고, 유동 IP는 고정적이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다른 IP 주소를 할당받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집이나 직장에서 사용하는 건 대부분 유동 IP입니다. 쉽게 설명해 보자면, 300세대가 사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300세대 모두 다른 고정 IP 주소를 할당받는 게 아니라 300개보다 적은 IP를 가지고 공유합니다. 예로, 내가 노트북을 쓰다가 끄고 나면 내가 쓰던 IP를 옆집에서 그 IP를 받아서 컴퓨터를 할 수도 있는 식입니다. IP를 돌려쓰게 되는 것이죠.

수사기관이 특정 IP를 잡아냈다고 해도, 어느 집에서 글을 올린 건지 특정하려면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한 겁니다. 더군다나 만약 피시방이나 카페 등 외부 장소를 옮겨가며 글을 올리거나, VPN을 통해서 우회를 했다면 수사는 더욱 어려워지겠죠.

특히 수사기관에서 골머리를 앓는 부분은 통신사 IP입니다. 통신사 IP는 개개인마다 다른 게 아니라, 동시간대 같은 지역이면 같은 IP 주소를 배당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 관계자는 "통신사 IP는 잡기가 까다로운 편인데, 같은 시간대 같은 지역에서 같은 IP를 쓴 사람이 수백, 수천 명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어 선별해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다른 증거나 수사기법을 더해서 용의자를 검거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악의적인 애들은 '15초 뒤에 삭제', '10초 뒤 삭제', '5초 뒤에 삭제' 이런 식으로 글을 올려요."

- 디시인사이드 이용자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디시인사이드는 3개월 동안 IP 로그 기록을 보관합니다. 3개월이 지나버리면 누가 어떤 IP 주소로 글을 올렸는지 삭제돼 수사기관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 A 씨는 "3개월이란 기간은 너무 촉박하다. 예전에 올라온 글을 뒤늦게 발견해버리면, 삭제 요청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작성자가 자신의 글을 지워버리면, 기간과 관계없이 IP 주소 등 어떤 기록도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악용해 몇몇 이용자들은 불법 촬영물이나 능욕글을 잠깐 올렸다가 삭제해 버리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괴롭힙니다. 익명의 유저는 "갤러리 안에서 이렇게 하면 잡히고 이렇게 하면 안 잡힌다는 글들이 공유될 정도"라면서, "살짝만 글을 올려놔도 피해 여성들은 자기 닉네임이 이 갤러리에 언급됐다는 알림이 뜨는데,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걸 원하는 거기 때문에 이런 행위들을 반복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게시판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취약한 미성년 여학생들이 많이 오고, 일부 성인 남성들이 다른 목적으로 오고 있다 보니까 너무 문제가 많아요.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강력범죄란 말이죠. 그에 비해 사이트는 너무 접근성이 좋아요."

- 디시인사이드 성범죄 피해자

어떻게 보면 본질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이번 범행 대상이 된 피해자는 모두 미성년자 여학생들로, 대부분 우울감을 극심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위안을 얻고 싶어서 우울증갤러리를 찾게 되었던 경우였습니다. 피해 당시 나이가 만 12세도 있었는데, 성적 판단력이 미숙한 상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갤러리에서 알게 남성들이 친구 혹은 연인으로 친근하게 손을 내밀었고, 그 과정에서 범행이 일어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지 않길 바라야겠지만, 정신적으로 취약한 어린 학생들을 표적으로 삼으려면 이만한 공간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폐쇄해도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겨가"... 근본적인 대책은?


지난해 경찰은 이미 한 차례 디시인사이드에 우울증갤러리 폐쇄 요청을 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폐지가 아닌 '자율규제 강화' 의결에 그쳤습니다. "해당 게시판이 자살 유발 정보 등 범죄를 목적으로 개설됐거나 운영됐다고 보기 어렵고, 대다수 게시물이 단순 우울감 호소 및 도움을 주는 내용 등이 혼재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불법 정보에 대한 삭제 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게시판 전체에 대해 시정 요구를 조치하는 것은 과잉규제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취재진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우울증갤러리란 공간을 통해 여전히 비슷한 범죄가 반복되는 데에 대해 디시인사이드 측에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박주돈 디시인사이드 부사장은 "방심위의 의결에 따라 그동안 베트남과 중국 현지에 모니터링 요원 40여 명을 고용해 삭제 조치를 강화해 왔고, 문제가 되는 VPN 우회 IP 등은 적극 차단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우울증갤러리 폐쇄에 대해선 선을 그었습니다.
 
"선택의 문제인데 저희가 봤을 때는 풍선 효과거든요. 우울증갤러리를 그렇게 막아버리면 이분들 다른 데로 가거든요. 어쨌든 저희는 지금 제도권 하에서 운영이 되는 거잖아요. 그걸 이용자들도 인식을 하고 있고."

- 박주돈 디시인사이드 부사장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보미 기자 spri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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