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저런들 정상훈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웃는 거예요. 웃음은 삽시간에 퍼져요.
제가 아무 맥락 없이 바보처럼 막 웃고 있으면,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웃기 시작해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공연이 한창이죠. 보통 공연 전에는 뭘 드세요?
주로 한식 먹습니다. 식사를 안 하는 배우들도 있어요. 노래할 때 배를 많이 쓰는데 속이 차면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절대 안 먹는 음식도 있나요?
단 음식은 피하는 편이에요. 단 걸 먹으면 목이 끈적해지면서 가래가 생기잖아요. 순간적으로 호흡을 훅 들이마시면 기침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럼 노래 한 마디를 버려야 돼서 큰일 납니다.
요즘처럼 더울 때면 식중독도 조심해야겠어요.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환절기에 식중독 많이 걸리잖아요. 예전에 들은 건데 어느 한 작품은 배우들이 공연 전에 다 같이 김밥을 시켜 먹었다가 배탈이 나서 공연 직전에 취소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먹는 것 외에도 공연 기간에는 꽤 많은 것들이 제한될 것 같아요. 공연 기간에 꼭 하거나 하지 않는 게 있나요?
뮤지컬 공연 동안에는 목 관리가 가장 중요해요. 목이 언제 가장 많이 나가느냐? 웃을 때예요. 평소에 저는 누가 웃기면 자지러지게 따라 웃거든요. 그럼 금방 목이 나가요. 어느 날은 정문성 배우가 웃는데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왜 그렇게 웃냐고 물어봤더니 성대를 띄워서 웃으면 목이 안 나간대요. 그래서 저는 공연 기간이 되면 웃는 소리가 바뀝니다.
그간 여러 뮤지컬에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만의 특별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구조적으로 특별한 점이 있죠. 보통 뮤지컬 극장에서 오케스트라 부스는 관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거든요. 이번 작품은 오케스트라 부스가 무대 위에 있어요. 눈으로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되고 있구나’ 보면서 감상할 수 있어요. 그것 자체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죠. LED 스크린을 활용해서 배우들 연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이번 작품만의 특별한 점이기도 하고요.
가수 출신 뮤지션 배우들이 많죠. 그런 경우에는 노래 걱정은 없을 텐데, 반면 정극 배우가 뮤지컬에 출연하면 노래가 걱정될 것 같아요. 배우님은 연기와 노래 중 무엇이 더 어렵나요?
아주 간단해요. 뮤지컬은 이름부터 ‘뮤직’이 앞에 있잖아요. 노래가 1번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노래가 어렵습니다. 저는 코미디부터 정극까지 연기를 다양하게 해봤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실수를 하더라도 도망갈 구멍을 알아요. 대사를 까먹거나 틀려도 애드리브로 대처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노래는 달라요. 박자가 있으니까 실수하면 감출 방법이 없죠.
회차가 반복돼도 노래 연습은 매번 똑같이 하나요?
그럼요. 저는 공연 전에 한 곡도 빠짐없이 다 연습해요. 한 번씩 스스로 질문을 해봐요. ‘네 주머니에서 큰돈이 나가는데 넌 이 작품 볼래?’ 하고요. 관객이 귀한 돈 내고 보러 와주셨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게 돼요.
관객이 극장을 나서면서 ‘이것만큼은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다면요?
‘한 번 더 보고싶다’ 생각해주시면 최고죠. 뮤지컬 배우에게는 입소문만큼 기분 좋은 칭찬이 없어요. 최소한 관객이 ‘본전은 찾았다’ 생각하실 수 있게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죠. 그것은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요. 다만 댓글은 잘 안 보는 편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1인 9역을 맡으셨죠. 공연 중에 대사가 헷갈릴 때는 없습니까?
오히려 회차가 쌓이면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내 머릿속에서 타임라인이 백지가 되는 느낌. 그때 자칫 대사나 가사를 놓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사를 몸에다 붙이는 작업을 합니다. 예를 들어 “총구는 위에 빵빵”이라는 대사가 있으면,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고 하늘로 쏘는 제스처를 정해놓는 거죠. 그럼 혹여 대사 순서가 헷갈려도 손이 먼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대사가 생각나요. 일종의 안전장치죠.
워낙 역할이 많다 보니 옷 갈아입는 것도 일이겠어요.
아유, 무대 뒤에서는 난리가 나요. 흐름이 안 깨지려면 보통 15초 안에 갈아입어야 돼요.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요?
되더라고요. 저는 1인 다역을 유난히 많이 했어요. 대학로에서는 ‘1인 다역 배우’로도 꽤 유명했거든요. 1인 다역이 힘들어도 계속 생기는 이유가 있어요. 인건비를 줄여야 되거든요.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1인 다역이면 출연료가 조금 더 많나요?
전혀요. 한 역할을 맡든 아홉 역할을 맡든 출연료는 똑같습니다.(웃음)
배우들은 ‘웃는 연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코미디 연기를 워낙 잘하시는데, 웃는 연기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요?
웃는 연기를 잘하려면 진짜 웃겨야 돼요. 진짜 웃기다고 생각하고 웃어야지. (그후 정상훈은 10초 동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대박인데요. 방금 그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웃는 거예요. 웃음은 삽시간에 퍼져요. 제가 아무 맥락 없이 바보처럼 막 웃고 있으면,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웃기 시작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소리를 효과음으로 넣는 이유도 그거예요. 사람들은 누가 웃기 시작해야 웃거든요.
코미디언에게 무대에서 가장 큰 상처는 욕이 아니라 침묵이라고 하더라고요. 배우님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물론이죠. 내가 웃기려고 대사를 쳤는데, 너무 조용할 때. 그런 적 엄청 많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혼자 속으로 생각하죠. ‘나 이거 웃기려고 한 거 아닌데? 나 지금 연기하는 거야.’ 관객들이 빵 터졌을 때도 똑같아요. 내가 지금 하는 코미디를 연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연기가 과해져요. 관객이 웃든 안 웃든 연기를 잘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하죠. 만일 ‘어, 안 웃네?’ 생각하는 순간 연기가 과해지거든요. 그럼 관객은 부담스러워지죠. 장사꾼이 물건 팔 때 ‘사세요 제발 사세요’ 애쓰면 사람들은 도망가잖아요. 연기도 똑같아요.
1998년 드라마 <나 어때>로 데뷔하셨죠.
처음 연기를 시작하던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연예인이 되고 싶었죠. 방송에 나오면 돈을 벌 수 있겠더라고요. 그 당시 제일 유명했던 연예인이 신동엽 형이었거든요. 신문에 ‘서울예전 출신 신동엽’ 같은 제목이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서울예전에 가면 연예인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래 다니던 미대를 반년 만에 그만두고 재수해서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에 들어갔어요.
“사실 요즘 제 무기를 바꾸고 싶어요. 그 무기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노력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요.
하지만 제 무기가 하나는 더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연예인이 목적이라면 배우가 아닌, 가수나 개그맨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실제로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 대학로에서 선배들이랑 3개월 동안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오프닝이랑 클로징을 맡았는데, 관객석에 <나 어때> PD님이 계셨어요. 그게 연이 돼서 처음 연기를 하게 됐어요.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나 어때> 후로도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올랐지만, 무명 배우 생활을 17년 가까이 하셨죠. ‘그만둘까’ 생각한 적은 없나요?
어렸을 때는 막연한 꿈에도 내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쌓이고 주변 상황이 바뀌다 보면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와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너무 늦은 나이.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시기가 오죠. 딱 그 기로에 섰을 때 기회가 왔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 기회가 이었던 거네요.
맞아요. 사실 <SNL>도 처음에는 출연하지 못할 뻔했어요. 당시에 제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산초’ 역을 맡고 있었거든요. 연습 시간 때문에 도저히 <SNL>스케줄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그래서 <SNL>담당 본부장님을 공연에 초대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거든요. 한편으로는 자신도 있었어요. 3시간 동안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끊임없이 나를 설득하는 거니까요. 그날 공연 끝나고 본부장님이 분장실로 오셨어요. “합시다”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SNL>팀에 합류하게 됐어요.
<SNL>합류 후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1년이 너무 힘들었죠. 그 1년 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거든요. 신동엽 형이 저를 <SNL>제작진에 추천했는데, 저뿐만 아니라 동엽이 형도 눈치 많이 봤어요.(웃음) 그래서 작품 외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죠. 먼저 나서서 팀워크 다지려고 MT도 주최하고, 배우들 대표하는 배우장 역할도 맡고. 보통 배우장은 잘 안 자르거든요. 기획회의 전날에는 밤새워 아이디어 짜 가고. 절실하게 노력했어요.
그리고 칭따오가 나왔죠.
아직도 기억나요. 2015년 3월이었는데, 칭따오 편이 방영되고 곧바로 칭따오에서 연락이 왔다는 거예요. 그 후로 거짓말처럼 광고가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광고 2개씩 찍었거든요.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죠. 그때 김구라 형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하루아침에 바뀐 게 아니라 그만큼 능력이 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물론 그것도 있지만 저는 운이 기가 막히게 맞았다고 생각해요.
칭따오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정상훈을 배우가 아닌 코미디언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평소 자기소개할 때 어떻게 하세요?
‘안녕하세요. 정상훈입니다.’ 웬만하면 수식어 안 붙여요. 정상훈 이름만 알릴 수 있으면 그게 어떤 역할이든 뭐가 중요해요. 한 번은 제 앞에서 두 분이 싸우는 것도 봤어요. 한 분이 “개그맨이잖아” 하니까, 다른 한 분이 “아니야 배우셔” 하면서 싸우시길래, “아유 뭐가 중요해요. 사진 찍을까요?” 했어요. 저를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한편으로는 그게 서운하거나 속상할 때는 없나요?
기분 나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분들 때문에 제가 지금 먹고살고 있으니 감사하죠. 저희는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대중을 대하는 직업은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돼요. 이분들이 준 사랑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돌려드릴까’ 생각해야죠.
돈을 벌기 위해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했고, 지금은 배우로 일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오늘도 너무 즐겁잖아요. 배우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화보를 찍어봐요. 무대 위에서 박수받는 것도 배우니까 누릴 수 있는 경험이고요. 물론 질타와 질책도 있지만 배우로서 감내하고 노력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이 즐겁죠. 아, 그리고 식당에서 서비스 주실 때. 제가 자주 가는 중국집이 있는데 마다해도 꼭 군만두를 챙겨주세요.
연예인 군만두 서비스는 좀 부러운데요.
저는 최대한 안 받으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꼭 “오늘은 잘 튀겼어” 하면서 가져다주세요. 가끔 너무 배가 부르거나 다이어트를 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도 그걸 어떻게 거부해요. 너무 감사하죠.
배우로서 무대 안팎에서 꼭 지키는 철칙도 있나요?
누구나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자기만의 자유로움이 있거든요. 그걸 자칫 막는 게 상대 혹은 선배 배우예요. 조언이랍시고 하는 말들이 그 자유로움을 막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조언을 안 합니다. 무조건 격려해요. 설령 지금 후배 배우의 연기가 안 좋더라도, 계속 격려하다 보면 좋아져요.
‘자유로움’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새롭게 맡고 싶은 역할이 있습니까?
아주 고지식하고, 정말 꽉 막혀 있는, 욕심이 드글드글한 사람. 그런 역할 한번 맡아보고 싶어요.
이유는요?
재밌잖아요. 이 사람은 도무지 소통이 안 돼. 그렇다고 빌런은 아니야. 드라마 보면 그런 사람 꼭 한 명씩 있잖아요. 김의성 형님이 자주 맡는 역할요. 자기만 생각하고 살다가, 진짜 자기가 살아야겠다 싶을 때 “한 번만 살려줘. 그때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 기억나지?” 하는 역할. 전 그런 역할이 너무 재미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배우 정상훈’의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다양성이 될 수도 있고, 친근함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사실 요즘 제 무기를 바꾸고 싶어요. 그 무기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노력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요. 하지만 제 무기가 하나는 더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준비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세요?
‘정상훈’ 하면 그냥 웃음이 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제 이름을 들었을 때 “아유 정상훈 너무 좋지”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배우면 좋겠습니다.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김영준 | Stylist : 윤상영 | Hair : 러비 다호 | Make-up : 미영
Copyright © 아레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