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반도체 키웠듯… 민간기업이 ‘우주항공의 기적’ 쓰게 할 것”[현안 인터뷰]
전세계 우주항공 800조 규모
韓 시장 점유율은 1%에 불과
민간이 주도해야 산업 판 커져
머스크 같은 인재들 나오도록
파괴적 혁신기업에 기회 주고
민간로켓 전용 발사장 구축도
‘재사용발사체’ 퀀텀리프 전략
2030년까지 기술 확보 목표
“‘한강의 기적’과 ‘반도체 기적’을 이뤄냈듯이 우주에서 ‘제3의 기적’을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윤영빈 초대 우주항공청장은 조용하지만 다부지게 그의 포부를 밝혔다. 오는 9월 3일, 출범 100일을 맞는 우주항공청은 우주자원 개발·활용과 우주항공 산업 육성·진흥을 위해 정부 부처 내에 흩어져 있던 우주·항공 관련 업무를 결집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관련 부처다.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세계 각국은 우주 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국가뿐 아니라 민간 기업들까지 우주 개발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윤영빈 초대 청장은 항공우주 산업 발전을 위해 개발 비용을 낮추고, 이를 통해 민간 기업들의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결국에는 민간기업들이 개발의 키(Key)를 쥐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회 일정으로 바쁜 윤 청장을 지난 23일 국회 앞 글래드 호텔에서 만나 우주항공청에 대한 청사진을 들어봤다.
―곧 우주항공청 출범 100일이 된다. 소감은.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제 개청한 지 3개월 정도 지났는데, 첫 주는 개청 행사로 정말 바빴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우주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우주위원회에서 우주항공청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는데, 상당히 담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3번째 기적’을 창출하자는 비전이다. ‘한강’(제1의 기적), ‘반도체’(제2의 기적), ‘우주항공’(제3의 기적) 기적 이렇게 말이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먹거리 산업인 효자 산업이 됐다.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12%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주항공 산업의 경우 우리나라의 시장 점유율은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현재 우주항공 산업이 세계적으로 800조 원 규모가 되는데, 10년 후면 3배로 커진다고 한다. 또, 이후 10년 후엔 2∼3배 더 커질 것이다. 이게 세계경제포럼(WEF)의 분석이다. 미래먹거리가 되는 게 불 보듯 확실한데, 지금부터 노력해야 선점할 수 있다.”
―어떻게 우주항공 산업을 키울 수 있나.
“과거에는 국가주도로 우주개발이 됐다. 지금은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바뀌어 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뉴 스페이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최근이다. 그것의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테슬라 회장인 일론 머스크다. 엉뚱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스페이스X 회사를 세우고 로켓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참여가 중요한데.
“그렇다. 옛날보다 우주에 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다. 민간기업이 우주에 가는 것이 해 볼 만하다는 고민을 시작하고 우주사업에 뛰어든 게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민간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요즘은 발사체가 같은 성능이면서도 작고 저렴해진다. 머스크를 인정해야 할 부분은 그가 우주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점이다. 민간주도의 뉴 스페이스를 끌어내는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를 빨리 쫓아가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미래 먹거리를 위해 민간기업이 커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마치,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키워냈듯이 말이다. 인재가 몰리면 그 분야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항공 시장은 반도체 시장보다 더 빨리 클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기업이 이 시장에 참여하고 싶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그 마중물 역할을 우주항공청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스페이스X와 같은 성공적인 민간 우주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발사체 분야의 민간주도 산업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성 확보와 환경 제공에 주안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할 생각이다. 먼저, 경제성 확보 측면에서는 재사용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파괴적 혁신을 선도할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는 기업들에 재사용 발사체와 같은 혁신기술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용기 있는 도전으로부터 ‘퀀텀 리프(Quantum Leap·비약적 도약)’를 추구한다면 성공적인 민간 우주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우주센터 인근에 민간로켓 전용 발사장을 구축해 민간 기업들이 편하게 발사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발사 때마다 매번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도를 정비해 주기적인 반복 발사는 일정 기간 면허를 한 번만 받으면 되도록 ‘발사허가제도’도 개선할 생각이다. 아울러,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허가대상 이외의 발사체(고도 100㎞ 미만)에 대해서도 사전신고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그간 개별 기업이 불편함을 겪었던 부분들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그간 우리 우주항공 분야 민간 산업계가 정부 하청 형태의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뉴 스페이스 시대의 핵심 주체로서 주도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
―최근 재사용 발사체에 대한 관심도가 어느 때보다 높다. 우주항공청이 ‘한국형 재사용 발사체’를 만든다면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나.
“현재 전 세계 여러 국가의 정부와 기업들은 스페이스X의 팰컨9을 모델 삼아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먼저 치밀한 ‘한국형 재사용 발사체 개발 로드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선행연구들을 종합해 우주항공청이 구심점이 돼 체계적인 개발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다. 재사용 시연체를 개발해 오는 2027년에는 수직이착륙 시험비행을 수행할 계획이다. 우리가 다른 선진국보다 늦은 만큼, 차근차근 선두국가를 추격하기보다 한 번에 몇 단계를 과감히 건너뛸 수 있는 퀀텀 리프를 추구하는 등 도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학·연의 역량을 결집해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는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위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사이에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을 두고 지식재산권 다툼이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지재권은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권리다. 항우연은 항우연대로, 차세대발사체 이전에 누리호 기술을 갖고 있으니 그 기반 위에 차세대발사체를 민간과 함께 공동개발했다. 민간 기업은 같이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지재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그러면 사업에 참여할 동인이 없다는 주장이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는 얘기다. 양측이 협업해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 이런 상황이 돼서 솔직히 답답하고 안타깝다. 최근 국가계약 분쟁조정위원회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의 신청을 각하했는데, 법적 다툼보다는 양측이 합의하는 게 좋다. 합의를 끌어낼 것이다. 국가개발혁신법의 해석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지재권 소유는 정부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과거의 사례를 참고할 생각이다. 항공 분야가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국가 출연연구소로 항공개발을 했는데, 이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나 민간기업에 기술 이전을 하면서 비슷한 분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사례를 연구해 보겠다. 최근 두 차례 양측을 불러 얘기를 들었다. 8월 말이나 9월 초쯤 한화 측을 먼저 만나 그들의 입장을 들어 보려고 한다. 이후 항우연도 만나 얘기를 들어 본 뒤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내겠다.”
―최근 미국의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이 문제가 된 바 있다. 이에 대한 제도 개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우주항공 선도국과 국내 기술 격차를 고려할 때, 우주항공 첨단기술의 빠른 확보를 위해서 해외 우수 인재 유치는 필요하다. FARA(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는 미국인이 외국정부를 위해 일하면서 미국의 정책이나 법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지 파악하고자 하는 취지다. 미국 정부 및 언론 관계자와의 접촉 내역을 간략하게 등록하는 것으로, 국내 기밀 유출과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도 필요한 경우 외국인은 채용할 계획이지만, FARA 준수 과정에서 기밀 유출 우려가 없도록 제출내용에 대해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외국인에 대한 비밀취급인가 발급은 원칙적으로 제한할 생각이다. 해외에서 스카우트해 오는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일단은 비밀문서 취급 인가를 허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업무상 필요하다고 하면 위원회를 열어 사안마다 대응할 계획이다.”
―‘제2의 우주인 프로젝트’ 계획은 있나.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할 사안으로, 현재 상황에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다만 미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Artemis Program)’을 협의 중인데, 우리도 그런 사업 과정에서 (우주인) 참여가 가능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제2 우주인 프로젝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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