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내가 후배 의원 170명 고발한 이유”

박세준 기자 2024. 8. 28. 0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심토로] 이희규 대한민국 헌정회 위원장의 한탄

● 대통령에게 쓴 편지 200장…與 대오각성 해야
● 민주당의 검사 탄핵, 尹 탄핵 위한 징검다리
● 대통령 끌어내리고 이재명 지키겠단 심산
● 입법부가 특정 의도로 사법부 공격… 헌정 질서 붕괴
● 여야는 지지자 업고 정쟁 일삼으나…
● 지지 정당 없는 국민 불안 점점 커져

"나는 공화주의자요."

이희규 대한민국 헌정회(이하 헌정회) 미래전략특별위원장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를 만난 날은 8월 6일. 폭염 경고문으로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리던 날이다. 무더위에도 그는 넥타이까지 단단히 매고 나왔다.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면모가 옷차림에서 묻어났다.

대한민국 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로 이뤄진 단체다. 이 위원장은 16대 국회의원(2000년 5월 30일~2004년 5월 29일)을 지냈다. 국회의원일 때 그의 당적은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다. 이 위원장은 7월 8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후배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70명을 형사 고발했다.

민주당은 7월 2일 현직 검사 4명(강백신 수원지검 차장검사·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엄희준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4명의 검사가 허위 진술 강요 및 정치적 중립을 저버렸다는 것이 탄핵 사유였다. 이에 이 위원장은 이 탄핵안이 국기 문란 및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탄핵안에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 전원을 형사 고발했다.

이 위원장은 A4용지 7페이지에 달하는 형사 고발 이유서를 직접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볼펜으로 눌러쓴 이유서에 이 같은 내용이 있다.

"민주당의 검사 4인에 대한 탄핵안 발의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기본적 헌정 질서를 파괴시키는 사법 방해 행위이며 국회의원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입니다."

20년 전 의원 출신 인사가 직접 펜을 들면서까지 현역 후배를 꾸짖고 나서게 된 연유를 들어봤다.

이희규 대한민국 헌정회 미래전략특별위원장. [이상윤 객원기자]

대의 민주주의 원칙 어긴 민주당

한때 몸담았던 정당의 후배들을 고발했다.

"당적이 뭐가 중요하겠나. 중요한 건 이들이 헌정 질서를 위협하고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겼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검사 탄핵안이 어떤 부분에서 대의 민주주의 원칙을 깼나.

"검사 탄핵안 발의를 하려면 먼저 국민의 의사를 모으는 절차가 필요했다. 민주당은 탄핵안 발의 전에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다수 국민이 정말 검사 탄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민의를 모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절차가 전혀 없었다."

이 위원장은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민주당의 검사 탄핵안에는 문제가 많다"며 "탄핵안에 민주당의 부적절한 의도가 읽힌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왜 검사 탄핵을 추진할까.

"검사 4인이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 확인해 보면 (민주당의) 의도가 명약관화하게 보인다. 민주당의 비위를 수사한 검사만 탄핵안에 이름이 올랐다."

민주당 검사 탄핵안에 이름을 올린 검사 4명 가운데 엄희준, 강백신 검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김영철 검사는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 수사를 담당했고, 박상용 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 송금 의혹 수사를 담당했다.

이 위원장은 "대한민국은 헌정 국가다. 입법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사법부를 공격한다면 결과적으로 국가 헌정 질서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 목표는 조기 대선

이원석 검찰총장이 7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 총장은 앞서 2일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 제출에 따른 입장을 발표했다. [동아DB]
사법부도 민주당의 탄핵안 발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탄핵안 발의 당일인 7월 2일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참모들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민주당의 검사 탄핵안 발의를 "위헌·위법·위법·사법방해·보복·방탄 탄핵"이라고 규정했다.

사법부는 민주당의 검사 탄핵안 발의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에도 법조인 출신 의원이 많다. 검사 탄핵이 무리수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6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무리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민주당은 검사 탄핵에 나섰다.

"당대표를 지키는 동시에 대통령 탄핵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라 본다. 검찰을 흔들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관리할 시간이 생긴다. 동시에 30%에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을 보이는 대통령에게 압박이 된다."

대통령 탄핵안 발의도 가능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지거나 여권의 악재가 생기면 언제든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에도 나설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발의하려면 국회 정원 3분의 2를 넘겨야 한다.

"여당 의석수가 국회 정원의 3분의 1을 넘으니 대통령 탄핵안 발의는 어려울 것이다. 어렵사리 발의가 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탄핵에 실패할 경우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사태처럼 역풍이 불 수 있다. 민주당엔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이미 7월 19일과 26일에 대통령 탄핵 청문회가 벌어졌다. 대통령 탄핵안 즉각 발의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 때문이었다. 청원 게시 30일 이내 5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은 소관상임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다. 이 기준을 이용해 야당 의원들이 청문회를 연 것. 뒤이어 탄핵 반대 청원도 5만 명 이상의 동의 기준을 넘었다. 법사위 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은 이를 두고 "공평하게 대통령 탄핵 반대 청문회도 개최하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탄핵 관련 논의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조금이라도 대통령 임기를 줄일 수 있다면 탄핵 논의를 계속할 것이다. 민주당의 궁극적 목적은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기 대선에 집착하는 이유는.

"민주당은 조기 대선이 절실하다.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사법 리스크도 해소될 것이라 보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권을 쥐어야 한다. 그러니 검사 탄핵안처럼 헌정 질서를 흔드는 무리수가 이어지게 된다."

답장 없어도 '서면 고언' 멈추지 않겠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 출신 인사지만, 지난 대선 윤 대통령을 공식 지지한 이력이 있다. 2022년 2월 헌정회원 1100여 명 가운데 316명이 당시 대선 후보이던 윤 대통령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 위원장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대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다. 현 정부를 지키기 위해 민주당 의원 고발에 나선 것은 아닌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나는 정치인 윤석열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대선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는다."

민주당 출신인데도 보수정당 후보를 지지하게 된 이유는.

"당시에는 국민의힘이 보수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전통적 우익 보수세력은 궤멸했다. 이 궤멸을 이끈 사람이 윤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은 정치적 원수를 대권 주자로 만드는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지지자들 입맛에 맞는 사람보다는 집권 가능한 사람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

현 정부가 기대한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지금의 정부는 대선 승리에 도취돼 있는 것 같다. 논쟁적 사안과 정책이 있다 해도 국민을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정부의 뜻대로 강행 일변도다. 지지율은 30% 아래로 떨어지지만 괘념치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남은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민심이 정부를 완전히 떠난다면 민주당의 바람처럼 조기 대선 정국이 열릴 가능성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파국이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를 막기 위해 헌정회 차원에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위원장은 현 정부 집권 초기부터 최근까지 정부에 자필 서신을 보내왔다. 집권 초 대통령실 이전 문제를 시작으로 해병대 장병 사망사건, 대통령 영부인 거취 문제 등 논쟁적 사안이 생길 때마다 정부는 물론 관계 기관에도 서신을 보냈다. 그는 "지금까지 보낸 서신만 A4용지로 200페이지가 넘는다"고 말했다.

서신을 보낸 뒤 정부나 관계 기관의 반응은 있었나.

"없었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서신을 보낼 계획이다."

답장 없는 편지를 계속 쓰는 격인데.

"만에 하나라도 반영되는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아침에 싸워도 점심은 같이 먹을 수 있어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8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부당 합병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한 뒤 복권 결정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동아DB]
이희규 위원장은 2021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된 이야기를 꺼냈다. 2021년 7월 23일 헌정회원들이 국무총리실을 찾았다. 이 위원장이 주도한 방문이었다. 그의 손에는 헌정회원 161명의 서명이 들려 있었다. 이날 헌정회는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나 이재용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건의서를 제출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재용 회장이 8·15 특사로 사면됐다.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말 신년 특별 사면됐다. 이 위원장은 "정치권 및 재계의 화해를 위해 헌정회가 직접 사면을 요청했다"며 "정권을 두고 다투던 상대도 화해할 수 있는데, 현재 정부와 여당은 서로를 살려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반목만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정회원이자 전직 국회의원으로서 현역의원들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싸우더라도 한자리에서 밥은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국회의원이던 20년 전에는 오전에 회의에서 다른 당 의원과 격렬히 언쟁하다가도 점심은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사람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내건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서로를 정치권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각오로 싸워선 안 된다. 열성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기댄 만큼 국민의 목소리에서는 멀어진다."
신동아 9월호 표지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