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엔 격월검침’…규정 지키니 돌아온 건 중징계였다
나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이다. 누군가의 집이나 가게에 방문해 도시가스 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를 한다. 가스레인지, 보일러 도시가스가 공급되는 곳을 방문해 누출이 없는지, 안전장치는 제대로 설치되어있는지 점검한다. 나는 6개월에 한 번 3500세대를 돌면서 안전점검을 한다. 별로 힘들지 않을 것 같은가? 아니다. 나는 매달 도시가스 계량기 검침도 해야 하고 고지서 송달도 한다. 안전점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번에 끝나면 운이 좋다. 두 번, 세 번 방문해도 안전점검을 못 끝내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고 보니 한 달에 9000세대 이상은 가는 것 같다. 내 만보기가 2만보, 3만보를 찍는 것은 당연하다. 만보기도 좀 쉬어야 할 텐데.
생리현상 해결할 곳도 마땅치 않다
기후위기로 열대야가 어느 때보다 길어지고 있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일이 많다. 몸이 무겁다. 하지만 계량기 검침을 해야 한다. 건물 틈 속에 숨어 있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계량기도 검침해야 한다. 동료 중 많은 사람이 다친다. 폭염에 쉴 곳도 없다. 생리 현상을 해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추락, 낙상, 미끄럼, 개 물림, 계단에서 구르고, 고객들의 폭언, 폭설, 성희롱 등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안전점검을 하고 계량기 검침을 하고 고지서 송달도 해야 한다. 미세먼지로 인해 동료들이 다들 기관지 질환을 달고 산다.
2018년 폭염이 있었다. 폭염에서 일하는 야외노동자들의 안전대책을 마련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시는 도시가스 공급 규정을 고쳤다고 한다. 새로운 도시가스 공급 규정은 6월에서 9월, 하절기엔 ‘격월검침’을 실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2020년, 2021년 한 달 실시하더니 2022년엔 시행하지 않으려 했다. 하절기 격월검침은 폭염 시 야외에서 일하는 안전 점검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회사와 많은 대화를 했다. 하지만 회사는 도시가스 공급사 핑계만 댔다. 제도가 유실되는 것은 막아야 했다. 2022년 나는 규정대로, 서울시 권고대로 격월검침을 했다. 정부와 서울시의 권고를 지키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나를 징계했다. 아니,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외침을 징계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전염병이 창궐한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비상이었다. 서울시는 도시가스 안전점검 전 비대면 사전의향 조사를 통해 세대별 의사를 확인하고 희망하는 세대만 점검하라는 점검수칙을 시행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회사는 안전점검률이 낮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내렸다. 정부의 지침대로 서울시의 권고대로 업무를 수행했지만 나는 징계를 두 번이나 당했다. 한 번 더 징계를 당하면 해고될지도 모르겠다.
격월검침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올해도 7월 중순에서 8월 초 한 달 시행하겠다고는 했지만, 영업용 검침, 경감세대 검침, 원격세대 검침 등은 제외하고 있다. 격월검침을 시행한다고 생색은 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격월검침이 아닌 반쪽짜리 격월검침을 시행하고 있다. 이것도 서울시의 안전점검 노동자들에게 전면 시행되고 있지 않고 일부만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 면담을 요청했다. 서울시는 도시가스 공급사들과 한국가스공사가 협의해야 하는데 가스공사가 부정적이라고 한다. 가스공사는 서울시와 도시가스 공급사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경기도는 격월검침을 하고 있다는데 왜 서울은 안 되는지 알 수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내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일반도시가스사업자 표준안전관리규정에 의하면 3천 가구에서 4천 가구당 1인 이상 안점점검원을 선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점검원이 4천 세대가 넘는 안전점검을 할 뿐 아니라, 계량기 검침, 고지서 송달 업무까지 한다. 안전점검의 항목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제대로 된 안전점검만이 도시가스 사고를 예방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충원이 필요하다. 또한,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미 만들어진 규정이라도 지켜달라
서울의 5개 공급사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업무를 고객센터로 외주화했다. 서울시민의 안전을 외주화했다. 가스요금의 고지 및 수령을 포함한 점검원의 안전관리 업무나 하절기 격월검침, 전염병에 대한 대책 마련 등 모두가 실질적인 사용자인 도시가스 공급사와 서울시가 결정한다. 실질적인 사용자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지 않으면, 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들의 안전한 노동환경은 보장되지 못한다.
기후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온 세계 시민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재앙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되어야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노동을 해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대책이 시급하다.
정부와 공기업들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모두 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서울시와 도시가스 공급사, 한국가스공사는 이미 만들어진 규정도 지키지 않고 있다. 나는 아주 소박한 소망을 한다. ‘제발 이미 만들어진 규정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졌으면….’
허보기 가스점검원(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 분회장)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규정했다. 한데 당장 기후재난에 직면한 이들과 미래세대에게, 이 목표가 충분할까. 헌법재판소에선 정부의 목표가 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심판이 진행 중으로, 헌재는 오는 29일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2019년 네덜란드, 2020년 독일에서 정부의 목표가 불충분하다는 판결이 있었다. 지난 4월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인권 침해’로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한겨레는 이번 ‘기후소송’의 당사자이기도 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함께 기후재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연속 기고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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