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데이터 반쪽 개방…일본·대만인 통계로 만드는 한국보험
#50대 직장인 A씨는 건강검진을 받던 중 용종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았다. A씨는 용종 제거 후 건강관리에 집중해 이전보다 컨디션도 좋고 몸도 더 튼튼해졌다. 수술받은 이력이 있지만 보험사로부터 건강체(건강한 사람)로 인정받아 보험료 인상 없이 새로운 보험도 가입했다.
#금요일 퇴근 길, 후방에 있던 차가 갑자기 B씨의 차량을 들이받았다. 몸은 아픈데 주변에서 경적이 울리고 정신이 없다. 그때 핸드폰이 올린다. 차량 내 센서를 통해 충돌 사실을 알았다는 보험사 직원은 견인차 출발 소식과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렌터카 옵션 등을 안내했다. 사고 과실, 책임 등에 관해선 데이터 기록이 있어 B씨가 진술하거나 처리할 부분이 없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놓인다.
보험사들이 비금융 데이터 활용을 통한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공공의료데이터, 차량 데이터를 각각 공유하면 현실에서도 가능한 사례다. 데이터 공유에 일부 우려도 있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다양한 내외부 데이터 결합을 통해 보험료 인하, 보험 가입 대상 확대, 보험사기 방지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공공의료 데이터'는 보험사들이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필요성도 더 커졌다. 보험사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국내 인구구조가 고령화되면서 고령자·유병자 관련 담보 개발 수요가 늘었다. 특히 건강보험 시장 경쟁이 치열해져 다른 회사에 없는 보험 상품과 서비스, 타사보다 저렴한 가격 경쟁력이 중요해졌다.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위해 다양한 데이터 접목은 필수다.
하지만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으로부터 익명 데이터를 제한적으로 받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가령 당뇨병은 선천적 당뇨, 후천적 당뇨, 영양실조 관련 당뇨, 상세 불명의 당뇨 등 종류가 다양한데 전체 당뇨병 환자 숫자만 받기 때문에 세분된 담보 상품 개발이 어렵다. 또 특정 질병에 걸린 환자가 약물치료, 건강 악화 등으로 합병증 등 후속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합병증을 보상하는 상품 개발을 위해서는 특정 질병 환자의 후속 질병 관련 추적관찰 데이터가 필요하다.
대만, 일본 등 해외에 돈을 주고 데이터를 들여오는데 비용 부담과 함께 데이터 정확도가 떨어진다. 마땅한 해외 데이터가 없는 경우에는 아예 상품 개발이 어렵다. 예를 들어 국내 소아비만 증가율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소아청소년 비만 유병률은 19.3%로 5명 중 1명이 비만 아이다. 특히 소아비만은 고협압, 당뇨병 등 합병증이 무섭다. 소아청소년기에 비만일수록 중년기에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및 심뇌혈관질환을 앓고 사망하게 될 확률도 높아 반드시 관리가 필요하다. 소아비만 합병증인 성조숙증, 아토피 등 일부 담보가 개발돼 있지만, 데이터 확보시 사춘기장애, 동맥경화 등 더 다양한 소아비만 합병증을 보장하는 상품 고도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 없이는 위험 요율 산정 등이 어렵고 리스크도 커질 수 있어 보험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꾸준히 건보공단이 보유한 가명 형태의 공공의료 데이터 공유를 지속해서 요청해왔다. 가명 정보는 추가 정보 없이는 개인을 알아볼 수 없고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에 동의 없이 활용이 가능하다. 보험사가 정보를 요청하면서 개인정보가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온 집단 정보, 결과값을 전달받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1년 보건 의료분야 가명 데이터를 활용한 보험상품 개발은 개인정보보호법상 산업적 연구에 포함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법적으로 가명 정보를 통한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
법적 근거가 명확해지자 보험사는 2021년 8월부터 건보공단에 공공의료 데이터 이용 신청을 2번 했으나 거절당했다. 3번째 두드리고 있으나 어떤 데이터도 공유받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데이터 경제 활성화 추제과제'를 발표하고 건강보험 가명 데이터 민간 활용 촉진을 위한 기관별 지침을 개정한 후, 올해 상반기에는 데이터 개방·반출 계획을 발표했지만 건보공단은 응하지 않고 있다.
건보공단 노동조합과 일부 시민단체 등은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이 '국민 동의 없는 개인 의료정보 활용'이라고 반발한다. 가명 처리를 하더라도 추가 정보가 있으면 개인 질병 정보를 식별할 수 있고,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금 지급 거절에 악용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보험업권은 이를 부인한다. 가명 공공의료 데이터는 엄격하게 비식별 처리된 표본자료로 개인 특정과 추정이 안 되고 보험 상품 개발 시 보험사는 보험가입자에게 불리한 내용은 포함하지 않는 등 관련법 준수와 함께 당국의 감독을 엄격히 받고 있어 국민 편익을 저해하는 상품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차량 데이터는 자동차 제조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소비자는 차량 데이터 기반으로 내비게이션, 원격제어, 차량관리 등 일부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서비스 요금을 지불함에도 데이터 전송 권한이 없다.
보험사가 관련 데이터를 이용하면 상품부터 서비스, 사고예방 및 조사까지 활용도가 높다. 운전습관, 안전장치 장착·실행 여부 등에 따른 합리적 보험료 산출, 센서·카메라 데이터를 활용한 사고피해 규모 인식과 관련 신속 보상, 예비부품 사전 주문, 정비소 예약 등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배터리 상태 모니터링을 통한 화재 위험 알림 등 사고 예방도 가능하다.
교통 분야의 마이데이터 도입시 정보항목으로 차량 데이터 내용을 포함해 자동차 제조업체가 보유한 데이터를 수리업체, 배터리업체, 보험사 등 제3자에게 전송하는 형태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배터리업체도 배터리의 성능 개선을 위해서는 차량 데이터가 필요한데 지금은 중고차업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고 있다.
내년 3월에는 의료와 통신 분야의 마이데이터가 도입될 예정이다. 의료 마이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보법에 따라 민감한 보건 의료정보를 관리·분석하는 특수전문 기관으로 지정받아야 한다. 보험사 관계자는 "의료 마이데이터를 통해 개인 건강관리가 가능해져 헬스케어 서비스가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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