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다. 수천년의 역사와 많은 전쟁을 이야기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4월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별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시진핑 주석이 정말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그때는 잘 믿기지 않았다. 트럼프의 ‘헛소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중국 역사 교과서도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 교육부가 2018년 발표한 새 교육과정에 따라, 역사 교육의 내용을 규정한 ‘중외역사강요’ 상권(중국사)이 2019년에, 하권(외국사)은 2020년 발간되었다. 이에 따르면, 중국과 한반도의 오랜 역사적 관계는 ‘종번(宗藩)체제’로 개념화되었다. 정치, 문화 제도적으로 우월한, ‘종주권’을 가진 제국 중국과 그 문화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복속했던 비자주적 ‘속국’ 한반도 왕조들의 관계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중국 역사를 다양한 민족을 통일하면서 제국을 형성해온 역사로 서술하고, 자국과 주변국과의 역사 관계를 ‘대국과 소국’ 관계로 치환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 질서 전반에 대한 중국의 ‘대국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강조되었다. “중국 역사 심화학습교재는 한국의 정치제도에서 일상 문화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제도와 문화를 복사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서술하고, 한국전쟁 참전은 지역 평화와 질서를 책임져야 하는 대국으로서의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쓰고 있다. 한복이나 김치 원조 논쟁은 이러한 교과서 서술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엽적인 현상일 뿐이다. 중국의 대국화 전략에 따라 제국적 역사 인식이 더욱 심화될 것을 예시한다.”(오병수 편 ‘한중 역사 교과서 대화’ 동북아역사재단)
먼저 역사를 거슬러 가보자. 학자들은 중국의 명·청과 조선 사이의 조공책봉 관계가 실제로는 ‘정치적 의례’였다고 분석한다. “조선 등 주변국들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치고 중국은 그 통치자를 책봉하는 의례를 통해, 주변국가들은 중국 중심의 지역 질서에 순응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중국은 그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유사시 원조한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의 왕조들은 중국 왕조와의 장기간에 걸친 평화 공존을 실현하고 내정과 외교에서 사실상 ‘완벽한 자주권’을 누릴 수 있었다.”(김종학 ‘흥선대원군 평전’) 오드 아르네 베스타 예일대 교수도 ‘제국과 의로운 민족’에서 “조선의 사대는 명과 다른 외적의 한반도를 향한 간섭을 막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한반도의 왕조들은 규모와 인구 등이 압도적인 중국과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정치적 의례’로 중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세를 표현하는 대신, 현실 정치에서는 자주권을 지키며 중국에 흡수되지 않는 외교술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이 한반도와의 전통적 관계를 규정할 때 강조하는 ‘속국’ ‘종주권’ ‘종번체제’ 등의 용어는 20세기 이후의 맥락에서 왜곡되고 의도적으로 ‘재창조’된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외교사를 연구하는 김종학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전근대에 속국은 조공국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19세기에 ‘주권의 유무’를 중시하는 서양 국제법이 새롭게 들어오면서 ‘주권을 갖지 못한 나라’ 또는 ‘상위의 주권을 가진 중국이 간섭이나 개입할 수 있는 나라’로 속국의 의미가 변질되었다”고 분석한다. 또, “종주권이란 용어는 전근대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가 20세기에 만들어진 말인데, 지금 그것으로 과거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종주권’ 용어는 19세기 말 오스만 제국과 그 판도에서 떨어져 나온 이집트, 세르비아 등의 관계를 종주국(suzerain state)-봉신국(vassal state)으로 설명하는 유럽 열강 제국주의의 용어가 일본의 번역을 거쳐 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인데, 지금 중국이 ‘의도적으로’ 이를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중국의 새로운 역사 만들기의 배경에는 중국의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만들기가 있다. 오병수 동국대 연구교수는 이런 변화를 역사 교육 차원만이 아니라, 강대국으로서 부상한 중국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제국적 인식으로 바꿔나가려는 국가 전략의 변화, ‘제국의 재구성 과정’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종학 교수도 “부강해진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 이 지역에서 새롭게 패권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과거 역사의 재해석과 맞물려 가고 있다”고 짚었다.
19세기 말에도 중국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질서’ 만들기를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김형종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는 지난 6월 서울대 역사연구소 강연에서 청이 19세기 한중관계에서 ‘천조상국의 편법 외교’를 시도했다고 분석했다. 중화제국은 스스로를 ‘천조’, ‘천조상국’으로 지칭하면서 천하를 통치한다고 여겼지만, 1880년대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마주하게 되면서 이런 세계관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 제국은 전통적인 천조체제와 근대 조약체제의 틈을 이용한 편법외교를 조선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무너져가려는 천조체제의 허상 지키기에 집착하는 시대착오적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1882년 청은 조선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면서 ‘조선은 청의 속방(屬邦)’이라는 조항을 넣었다. 위안스카이(원세개)는 10년 가까이 총독처럼 조선 조정 위에 군림하면서, 청의 국익을 일방적으로 앞세우며 강압적으로 내정 간섭을 했다. 여러 차례 고종 폐위를 시도하고,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공사가 현지 청 외교관의 지시를 받도록 강요하는 등 조선을 속국으로 계속 묶어두려 했다. 김형종 교수는 “청은 서구의 국제법 체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아류 제국주의의 방법론으로 천조체제의 허상을 지키는 데 집착하다가, 결국 조선의 독립도 좌절되고 청도 붕괴되고 말았다”고 했다.
눈여겨 볼 점은 19세기 말 청은 일본이 류큐(오키나와)를 병합하고, 베트남을 프랑스가 식민지화하는 데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조선에 대해서는 끝까지 집착했다는 것이다. ‘중국에 한반도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김형종 교수는 중국이 조선을 특수한 ‘속국’으로 여기며 집착한 데는 중요한 지정학적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명·청 시기에 중국 왕조가 베이징을 수도로 삼은 이후에는 한반도가 중국 안보와 직결되게 되었다. 한반도에 적대적인 세력이 들어서면 만주(현재의 동북 3성)가 위협받고 이것은 곧바로 수도 베이징을 위협하면서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베이징을 위협할 수 있는 적대적 세력이 한반도 북부를 장악하는 것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인식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내전 승리 직후의 피폐한 상황에서도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19세기 말 중국이 “편법외교”를 조선에 강요하다 실패한 뒤 한중 양국은 일제 식민통치와 냉전 등을 겪으며 오랫동안 관계가 끊겼다. 양국이 현대적 주권 개념에 기반한 역사관과 외교관계를 제대로 만들어나갈 기회도 오랫동안 사라졌다. 1992년 8월24일 수교한 이후 지난 32년은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부터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와 고구려를 “중국의 고대 지방 정권”으로 규정한 중국이 이제 전근대 한반도의 역사 전반을 ‘종주국-속국’ 관계로 해석하려 하는 것은 한중관계의 현재와 미래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국이 2016~17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에 반발해 한국에 보복 조치를 취했을 때, 천하이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은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고 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을 압박했지만,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더 명확하게 동참한 일본에 대해서는 보복 조처를 하지 않았다. 2022년 8월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당시 박진 외교장관에게 ‘5가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견지하라(堅持五個應當)’고 요구했는데, 첫번째는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였다. 1880년대 일본이 조선을 향해 ‘청으로부터 독립하라’고 요구했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중국이 명·청 시기에 조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종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이를 상실했고 다시 부강해진 중국이 그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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