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데날리 등반] "절대 잠들면 안 돼!" 남편 말에 정신 붙잡고 정상 오르다

김송희(잼쏭부부 유튜브 크리에이터) 2024. 8. 2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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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날리 캠프4(4,350m) 전경.

2018년 남편과 처음 알래스카를 여행했었다. 광활한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120cm가 넘는 알래스카 할리벗(대광어)도 잡아보고, 자연산 연어의 맛도 봤다. 그중에서 단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알래스카 데날리 경비행기 투어였다.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데날리가 어떤 곳인지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이 경비행기 투어가 인생에 한 번쯤 해봐야 하는 것이라는 말만 듣고 둘이서 거의 100만 원의 비싼 돈을 내고 참가했었다. 앵커리지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조그만 마을 탈키트나에서 탑승한 빨간 경비행기는 우리를 새하얀 빙하 위로 올려 보내주었다. 그리고 빙하 위로 우뚝 솟은 데날리(6,190m) 정상을 한 바퀴 돌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거대하고 웅장했다. 데날리Denali는 원주민 언어로 '커다란 것The Great One'이라는 뜻이다. 경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데날리는 이름 그 자체였다. 주변에 다른 높은 산들 없이 혼자 우뚝 솟아 있어서인지 히말라야 산맥의 여느 6,000m대의 산들과 다르게 위용이 대단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 산을 올라봐야지!'

윈디 코너에서 최진철 대원. 발 아래 운해가 가득하다.

썰매와 함께 시작하는 독특한 등반

몇 년 뒤 나는 남편에게 데날리에 가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20대에 8,000m급 산을 여러 번 등반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라면 왠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데날리는 북미 대륙 최고봉이라서 7대륙 최고봉 완등에 도전하는 등반가라면 누구든 꿈꾸고 도전하는 산이기도 하다. 남편은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7대륙 최고봉 중 이미 세 곳을 오른 상태라 귀가 솔깃해 했다.

하지만 트레킹이 아닌 안전 장비를 갖추고 떠나야 하는 전문등반이기에 고산등반 경험이 부족한 나와 둘이 가기는 부담스러웠는지 팀을 꾸려보자고 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사람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남편과 에베레스트 정상을 같이 올랐던 최진철 대원, 두 번의 데날리 도전을 실패하고 세 번째 도전을 꿈꾸는 유승조 대원, 남편인 전재민 대원, 나(김송희) 이렇게 4명의 팀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선택한 루트는 웨스트 버트레스West Butress 루트다. 데날리 서쪽 능선을 따라 비교적 완만하게 정상에 오르는 루트다. 데날리에 도전하는 대부분의 등반가가 선택하는 노말 루트다. 등반 적기는 5~6월이고 한 해에 약 1,000명이 도전한다. 올해도 954명의 클라이머가 데날리 입산 허가 신청을 했고, 대부분 가장 성수기인 5월 말~6월 초에 등반을 진행했다.

캠프1에서 캠프2로 향하는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진철, 유승조, 전재민 대원.

순수 등반 기간은 10일 정도이지만 데날리는 바람이 심하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 많아서 예비일 포함해 보통 3주를 등반 기간으로 잡는다. 그래서 식량이 고민이 많았다. 매일 최소 5,000kcal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할 텐데 일반식으로 할 경우 무게가 감당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 식량은 모두 수분이 없는 가벼운 알파미와 누룽지 등으로 정했고, 거기에 입맛을 돋울 간편 국과 스팸 등을 추가했다. 알래스카 현지에서 추가로 오트밀과 땅콩버터, 치즈를 구입해서 비상식으로 쓰기로 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데날리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에서 가장 추운 산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북위 66°부터 북극권인데 데날리는 북위 63°에 위치에 있어 사실상 북극권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보니 같은 높이라도 히말라야의 산보다 춥고, 주변에 바람을 막아줄 높은 산맥도 없다 보니 직격으로 맞아야 한다. 그래서 겨울에 온도가 영하 80℃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어마 무시한 추위를 자랑한다. 그렇다 보니 방한장비는 8,000m 히말라야 급으로 챙겨야 해서 장비의 부피가 만만치 않았다. 21일치 식량과 연료, 거기에 방한 장비까지. 그 양을 감당하려면 배낭 하나로는 역부족이다.

캠프4에서 날씨가 맑아지길 기다리며 설동을 팠다.

그래서 대부분의 등반가는 썰매를 이용한다. 4,300m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설원이 이어져서 썰매를 끌기 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형 특성상 썰매를 이용한 등반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 번도 썰매를 끌며 산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나 생소한 등반방식이었다. 하지만 막상 탈키트나 비행장에서 빌린 썰매를 보니, 어렸을 때 눈썰매장에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형태의 플라스틱 썰매라 정겨웠다.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알래스카

탈키트나 비행장을 이륙한 경비행기는 30분 정도 날아간 뒤, 해발 2,200m 부근 빙하 위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경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이곳부터 본격 데날리 등반이 시작된다. 멀게 느껴졌던 데날리 정상이 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자,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여기서부터 보통 캠프3(3,300m)까지는 스키나 설피를 이용해 이동한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산재해 있어서 크램폰을 신고 걷는 것보다 좀 더 안전하기도 하고, 눈이 많이 쌓여 있으면 크램폰보다 훨씬 쉽게 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날리에선 용변을 모두 수거해 가야 한다.

우리 중 1명은 스키로 이동하고 나머지 3인은 설피를 신기로 했다. 설피는 처음 신으면 넙적한 형태 때문에 걸을 때 조금 어색하다. 데날리 훈련 겸 지난겨울 일본 홋카이도 설산에서 여러 번 설피를 신어보았는데 남편 재민은 이번이 첫 설피다. 겨울에는 남극에서 안전요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터라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남편은 설피 훈련을 할 기회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0분도 되지 않아 남편의 설피가 두 동강이 나는 사태가 발생해 버렸다. 한국에서 장비 체크를 꼼꼼하게 하지 못한 잘못이다. 다행히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설피 없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이었기에 둘 다 캠프2 지점에 설피들을 묻어두고 설원을 올랐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2주 뒤 하산할 때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는데 설피가 없어 두 배로 힘이 들었다. 아무래도 캠프3까지는 설피를 갖고 가는 게 좋을 듯하다.

분명 세계에서 가장 추운 산 중 하나라고 해서 준비를 단단히 해왔는데, 출발 후 며칠간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한 건 더위였다. 날씨가 좋아지는 시기에 맞춰 와서 하루 종일 햇볕이 뜨거웠고, 하얀 설면에 반사되어 오는 빛은 강렬했다. 그래서 이틀간 운행할 때는 고어텍스 바지 지퍼를 다 열고 망사로 된 내복 하나만 입고 운행했다. 그래도 쉴 때마다 온 몸은 땀으로 가득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설피를 신고 출발했다.

게다가 알래스카의 태양은 24시간 지지 않았다. 물론 일몰과 일출이 있기는 하다. 해는 밤 12시쯤 지고 오전 3시쯤 떴는데, 가장 어두워야 할 자정에도 텐트 밖은 여전히 랜턴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보통 겨울 산행을 할 때는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오후 5시 정도면 운행을 마무리하기 마련인데 데날리는 해가 중천에 떠있다. 그래서 운행 시간에 제약이 없다. 반대로 텐트에서 잘 때는 이게 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밝아서 잠을 이루기 어렵다.

그래서 헤드랜턴이 참 계륵 같은 존재다. 안 챙겨가자니 애매하고 챙겨가자니 쓸 일이 없을 것도 같고…. 결국 우리는 헤드랜턴을 16일간의 원정 기간 내내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다.

데날리 패스 전 설사면을 오르는 최진철 대원. 뒤는 캠프5.

너무 헷갈려! 미터 대신 피트

출발 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빙하의 갈라진 틈, 크레바스였다. 다행히 아직 큰 크레바스는 많지 않았고 우회해 가는 비교적 안전한 길엔 얇은 대나무 표지기가 있었다. 가장 성수기에 온 영향도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밟아 놓은 길을 따라 걸으면 크게 길을 잃거나 할 일은 없었다.

해발 3,000m의 캠프2까지 크레바스가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캠프3(3,300m)~캠프4(4,300m) 구간에 오히려 히든 크레바스가 여러 곳 있었다. 4명 모두 설피와 스키를 캠프2에 묻어두고 온 상태라 조금 주의를 요하긴 했는데 다행히 어느 정도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혹시 눈이 많이 내려서 크레바스가 살포시 가려져 있거나, 6월 중순쯤 되어 크레바스의 틈이 커질 경우엔 조금 더 주의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한편 미국은 우리나라와 도량형이 달라서 한국인인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기본적인 거리도 km대신 마일mile을 쓰고, 무게는 파운드lb, 온도는 섭씨가 아닌 화씨, 특히 고산 등반에서 중요한 해발고도는 피트ft를 쓴다. 그래서 주요 캠프의 이름도 피트를 이용해서, 3,200m(11,000ft)에 위치한 캠프3는 11k캠프, 해발고도 4,300m(14,200ft)에 위치한 캠프4는 14k 캠프, 정상 공격을 위한 마지막 캠프인 캠프5(5,250m, 17,200ft)는 17k캠프라고 주로 표현한다.

캠프4 원정대의 텐트와 설동

단위에 한참 적응하다 보니 11k캠프, 캠프3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급해지기 때문에 썰매를 눈 속에 묻어두고 배낭만 메고 이동했다. 캠프4까지 대부분 썰매를 이용하지만 우리 팀은 썰매보다는 배낭이 편했다. 그렇다보니 배낭으로 짐을 두 번 옮겨야 했다. 대부분의 등반대처럼 윈디 코너Windy Corner에 '캐시'하기로 했다. 캐시Cache는 임시 보관한다는 뜻이다.

단 그냥 묻어두면 분실의 위험도 있고 쓰레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대나무 표지기 여러 개와 함께 스티커 태그를 붙여둬야 한다. 원정 출발 전 데날리국립공원사무소에서 직원과 필수적으로 미팅을 하는데 그때 팀 정보가 적힌 주황색 스티커와 배변 통을 받는다.

총 5장의 스티커 태그를 받아 랜딩포인트, 캠프1, 캠프2, 캠프3, 윈디 코너에 사용했다. 올라오면서 각 캠프에 하산 중 먹을 식량 및 더 이상 필요 없는 장비(설피, 스키, 썰매 등), 올라오면서 이용한 배변통CMC을 캐시해 뒀다. 데날리에서는 소변을 제외한 대변은 수거해서 사무소까지 가지고 내려와야 된다. 지속가능한 등반 환경을 위해 여러모로 관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도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 임시 화장실을 필수 지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윈디 코너에 짐 캐시를 끝낸 전 대원.

정상이 코앞인데…기약 없는 기다림

캠프3(3,300m)에서 윈디 코너(4,100m)까지 길은 짐을 캐시하며 왕복하게 되는데 이를 마냥 나쁘게 볼 필요도 없다. 고산적응을 위해 좋기 때문이다. 해발 3,000m가 넘어가면 고산병에 주의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좋은 활동이 높은 고도에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다. 또한 너무 애쓰지 않고 천천히 걷는 것! 다행히 지난 가을 다녀온 히말라야 트레킹의 영향이 아직 있는지 4,000m까지는 크게 고소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걸을 때마다 맥박수를 체크하며 너무 심장이 빠르게 뛸 때는 쉬었다 가는 등 호흡 조절을 하며 걸으려고 노력했다. 하루 동안 20kg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걷고 온 영향일까, 다음날 캠프4로 가는 발걸음이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출발 5일차에 캠프4(4,350m)에 도착했다. 여기가 사실상 데날리 베이스캠프다. 이곳에서 날씨가 좋으면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캠프인 캠프5(5,250m)에 오른 뒤, 정상공격을 시도한다. 캠프4에는 데날리국립공원 직원들도 상주하고 있고 의료진도 머물고 있어서, 동상이나 고산병 같은 증상이 있을 경우 도움받을 수 있다.

데날리 정상까지 2,000m도 남지 않아서 금방 등반이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행복한 상상도 잠시, 데날리 날씨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산 정상 부근에 강한 바람이 일주일가량 지속되었다. 인터넷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빙하 위에서 24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고소적응 차 다녀온 헤드월 상단.

가장 느린 시간은 밤이었다. 오후 8시부터 쌀쌀해지기 시작해 침낭 속에 들어가 있는데 밖은 여전히 훤하고 낮에 운행을 안 하니 몸이 덜 피곤해서 잠들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기보다는 고소적응차 해발 5,000m 헤드월 상단까지 올라갔다 오기도 하고, 윈디 코너에 내려갔다 오기도 하고, 하루는 거대한 설동을 파서 그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움직이고 나면 밤에 훨씬 더 숙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길어질지 모르는 원정기간에 대비해 하산하는 팀에게 남은 음식도 지원받아 이것저것 잘 챙겨먹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일주일 만에 바람이 잦아든다는 소식이 들렸다. 내일부터 이틀간 바람이 비교적 약하다고 한다. 그 이후엔 또 한 번 강한 저기압이 찾아온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일주일을 또 날려버려야 할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전 회의 후 오후에 짐을 꾸려서 캠프5로 출발하기로 했다. 캠프5로 가는 길은 헤드월 부분의 가파른 고정로프 구간과 바위가 많은 리지를 걸어야 해서 지금까지의 등반보다는 조금 더 힘들고 위험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 팀은 3인 1조로 안자일렌을 하고 이동했다. 특히 크램폰을 끼고 있는 상태라 바위를 잘 못 디디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발걸음에 특별히 주의를 했다. 강한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흐리고 눈발이 날리는 날씨에 운행을 하여 2km 남짓한 거리를 6시간에 거쳐 이동해 캠프5에 도착했다.

정상을 등정한 뒤 또 짐을 끌고 하산하고 있다.

캠프5의 하룻밤은 고통스러웠다. 우선 고도 5,000m 이상에서 처음 보내는 밤이다 보니 어김없이 고소증세가 찾아왔다. 잠들기 전 머리가 아파서 타이레놀을 하나 먹었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극지방에 가까워 산소가 더 부족한 느낌이었다. 두통도 두통이지만 잠 자체가 오질 않았다. 정상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이었을까. 아직 6,000m 이상의 지대엔 발을 디뎌본 적이 없어서 설렘도 약간 있었을 것이다.

눈만 감은 채 7시간을 보내고 오전 6시에 일어났다. 아직 캠프 전체가 고요했다. 여느 때처럼 물을 끓이고 밥을 먹는데 고산이라 입맛이 뚝 떨어져 밥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안 먹으면 힘이 안 날 테니 꾸역꾸역 밥을 입에 넣었다. 오전 8시 반, 정상을 향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여기서부터 데날리 패스를 넘은 후 정상까지 약 10시간 걸릴 예정이다.

데날리 패스를 소리 지르며 오르다

바람도 세지 않고 날도 좋아서 출발하기 좋은 상황인데 의아하게도 다른 팀 중 아무도 출발준비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데날리 패스까지 해가 들어와야 따뜻해서 운행하기 좋다고 다들 오전 11시가 넘어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하지만 늦게 출발하면 안 좋은 점도 있다. 정상을 자정 가까운 시간에 도착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른 출발을 대체로 선호했다.

밤새 눈이 소복이 쌓여서 데날리 패스(5,500m)까지 길을 만들며 가야 했다. 남편이 가장 앞에서 러셀을 해준 덕분에 뒤에서 조금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계속 잠이 오는 것이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어딜 밟고 있는 건지, 이 몽롱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팀원들에게 내 상태를 미리 알렸다.

"기분이 너무 이상해. 잠이 들 것 같아!"

남편은 고산이라 당연한 증세라고 말했다. 대신 절대 잠들면 안 된다고, 잠에게 지면 안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때부터 잠에 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큰 소리로 다짐을 하면서 걸었다.

"할 수 있다! 파이팅! 힘내자!"

정상을 바로 앞에 둔 김송희 대원.

3시간쯤 지나니 멀어보였던 데날리 패스에 도착했고, 잠과의 싸움이 지나가자 여기부터는 추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분명 바람이 잦아든다고 했는데 데날리에서는 잦아든 게 이 정도인가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손가락이 시리기 시작했다. 다들 우모장갑을 끼고 계속 걸으며 칼로리를 태워 몸을 데우는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는 오르막을 오르다가 널찍한 운동장 같은 풋볼필드를 지날 무렵 바로 뒤에 따라오던 캐나다 친구 루카스와 만났다. 캠프4에서 우리 팀 바로 건너편 텐트에 머물면서 우리의 설동에도 놀러온 적 있는 이웃이다. 캠프5에서 3일 정도 악천후를 견디다가 식량이 떨어져 오늘 포기하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아침에 우리 팀이 출발한 걸 보고 마음을 바꿔 출발했다고 한다. 루카스는 "길을 내줘 고맙다"고 인사하며 우리를 지나쳐 먼저 정상을 향했다.

캠프5를 출발한 지 8시간. 드디어 정상 능선 위에 도착했고 눈앞에 정상이 보였다. 다행히 바람도 멎었다. 한 발짝씩 숨을 고르며 올라가다보니 먼저 지나갔던 루카스와 유승조 대원이 정상을 밟고 내려왔다. 진철 대원과 재민은 내 느린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주었다. 그렇게 6월 6일 오후 5시 우리는 6,190m 북미 최고봉 데날리 정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데날리 정상에는 지질조사국이 설치한 고도 표시봉이 있다고 한다. 열심히 찾았지만 며칠간 내린 눈으로 다 덮인 모양이었다. 인리치 기기에 표시된 정상 위성좌표로 몇 m 이동하자 정확한 정상을 찾을 수 있었다. 정상에서 30분간 머물며 등정 기쁨을 만끽했다.

정상 리지에 올라선 전재민, 김송희 대원. 뒤가 바로 데날리 정상이다.

"다시는 고산등반을 하지 않겠다"

내려오는 길에선 이제야 올라오는 수십 명의 등반가들과 마주쳤다. 선두에서 오느라 조금 더 춥고 힘들긴 했지만 일찍 출발한 덕분에 앞뒤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우리만의 속도로 오롯하게 등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이 고산 등반을 해서 이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처음 도전해 본 고산등반이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로 남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재민은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할 때 앞에서 응원해 주었고, 그 힘 덕분에 정상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나중에 내려와서 물어보니 내가 데날리 패스를 지날 무렵 힘들어서 그만 내려가자고 했었는데 그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 내려간다고?'

결과적으로 팀원 전원이 정상을 가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특히 고산등반에서는 진행과 포기의 결정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고생스런 모든 과정을 함께 해준 팀원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데날리라는 거대한 산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정신 줄을 억지로 꽉 잡아본 적이 없었다. 이 정신력이면 무슨 일도 다 해낼 것 같다는 용기도 얻었다.

데날리를 내려오면서 다시는 고산등반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인생의 모든 일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그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혹시 데날리에서 불던 찬바람과 참을 수 없는 몽롱함이 그리워질 날이 온다면, 그 다음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궁금하다.

데날리 필수품·가민 인리치InReach!

데날리에 와서 놀란 점은 가민Garmin사의 인리치 이용률이었다. 가민이 미국회사인 탓도 있을 것이다. 인리치는 일정 월 이용료를 내면 인터넷이 없는 오지 환경에서도 위성을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날씨도 체크할 수 있다. 또한 위기상황이 생겼을 때 바로 SOS를 보낼 수 있어 어쩌면 최근 오지를 탐험하는 원정대에겐 필수 장비인 것 같다.

데날리 공원사무소에서도 우리의 인리치 연락처를 물어보았고, SOS 번호도 필수로 저장하게 했다. 또한 경비행기 회사에서도 팀의 인리치 연락처를 확인한 뒤 하산할 때 비행기 일정 조율을 위해 미리 인리치로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다. 이번 데날리 원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팀은 인리치를 가지고 다녔다.

우리는 운 좋게도 지난해 아시아 여성 최초로 홀로 남극점에 도달했던 김영미 대장이 유용할 것이라며 기기를 빌려줘 따로 구매하지 않았다. 덕분에 원정 내내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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