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운행하겠다"...레미콘 운송사업자들, 신개념 으름장
레미콘 운송비를 10% 넘게 올려달라는 운송사업자들과 경기여건상 소폭인상밖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측의 협상이 두달 가까이 평행선을 달리자, 운송사업자들이 사측 압박수단으로 '준법운행'을 들고 나섰다. 레미콘을 더 빨리, 더 많이 운송하기 위해 횡행하던 불법행위를 본인들이 멈추면 사측은 영업에 손해를 입게 되고,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본지가 확보한 '운송단가 협상의 조기 타결을 위한 준법운행 결의' 공문에 따르면 다음달 2~6일 닷새 동안 매일 점심시간 한시간 레미콘을 상차하지 않고, 같은달 9일부터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트럭 운행 중 신호 체계 및 규정 속도 준수 △레미콘 상차 전 드럼 내 잔량과 잔수 제거 △상차 후 90~120분이 초과하면 건설현장에 보고한 후 지시에 따름 △강우 중 타설, 현장 가수(加水·물을 더함) 요구 거부를 한다고 밝혔다.
준법운행으로 레미콘 배송이 줄면, 사측이 압박을 느껴 운송단가 인상에 협조할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이들은 준법운행에도 다음달 30일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더욱 강력한 현장투쟁에 돌입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지난달 1일에도 협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흘 동안 레미콘 운송의 '집단휴업'을 했다.
하지만 제조사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양새다. 운송사업자들이 열거한 사항들이 이미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을 뿐더러, 흔치 않은 위법사안도 사측의 요구가 아니라 운송사업자와 건설사들의 묵인하에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가령 운송에 90~120분이 넘게 걸린 레미콘을 처리하는 문제도 레미콘 제조사들은 "품질을 책임질 수 없다", "폐기하자"고 하면 건설사들은 "괜찮다"며 그대로 타설했다는 식이다.
정해진 시간을 넘긴 레미콘을 타설한다고 무조건 불법도 아니다. 현장에서 간이 품질검사로 KS규정에 부합했고, 감리가 승인하면 타설해도 된다.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레미콘은 원칙상 레미콘 공장에 회수하거나 건설현장에서 폐기해야 하지만 오히려 운송사업자들이 추가 소득을 위해 잔량 브로커들에게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관련 기사 : "레미콘 싸게 쓰실 분" 전봇대에 붙은 광고…"절대 쓰지 말라").
준법영업 통보를 받은 한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잔량을 브로커에게 팔고, 드럼 속의 잔량을 씻지도 않고 새 레미콘을 싣는 등 불법 행위는 '절대 하지 말라', '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경고해도 바뀌지 않던 거였다"라며 "준법운행 하려면 하라, 우리는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이들이 준법운행에 나선 것도 사측을 압박할 뚜렷한 카드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운송사업자들은 고용부 중노위 판단에 불복해 이달초 결정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별개로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 수도권 전역의 레미콘 공장과 본사 앞에 운송단가 인상을 촉구하는 동시다발적인 집회도 신고했다.
운송사업자들은 권역별로 평균 8200원(11.7%)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건설경기 불황을 근거로 2000원(2.9%) 이상의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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