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독립문
광복절이 지나고 8월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연일 이어진 폭염으로 미뤄왔던 독립문을 방문했다. 파리의 개선문처럼 위압적이지는 않지만, 땡볕 아래 서 있는 독립문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독립문 가운데 아치형태의 문 위의 태극기는 가운데 점이 찍혀 있는 독특한 태극이며, 사괘의 배치도 현재의 것과 다르게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이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을 방문할 때 최초로 사용됐고, 이후 대한제국의 국기가 됐다. 그러나 그 당시 국권이 흔들리고 있던 상황에서 통일된 국기를 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태극기를 잘 몰랐던 백성들은 1898년 완공된 독립문의 태극기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린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에 앞장섰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문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상징물이다. 청의 전신인 후금이 1627년 황해도 지역까지 침략해 조선과 형제 관계를 맺었던 정묘호란이 있었고, 이어 1636년 병자호란에서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해 군신 관계를 요구했다. 당시 조선이 오랑캐라 일컫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로부터의 군신의 예를 요구받았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며, 영화 '남한산성'을 통해 본 인조대왕의 처절함이 짐작된다.
이후 조선의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노력은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이어졌으며, 1895년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조선은 청으로부터 약 260여 년 만에 독립을 이뤄냈다. 하지만 자주자립자강의 독립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흐름에 휩쓸려 묻혀 버리는 아쉬움을 남겼다.
갑신정변으로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은 1896년 독립협회를 설립하며 독립문과 독립공원의 건립을 추진했다. 자금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성금으로 조성됐으며, 황태자를 비롯한 중앙과 지방의 관료, 교사, 학생, 기생 등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독립협회는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또한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칭해 독립협회의 사무실로 사용했다. 서재필은 독립문과 독립관 일대를 수목원, 운동장, 시민공원, 광장으로 나누어 대규모의 복합 시민공간을 계획했으나 자금부족으로 계획대로 진행되진 못했다. 서재필의 워싱턴 DC에서의 경험이 독립공원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워싱턴 DC는 미국에서 가장 공원이 잘 조성된 도시 중 하나이다.
독립문의 설계는 서재필의 사진첩에 있는 파리 개선문을 참고해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이 담당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독립문의 크기나 구조형식이 파리의 개선문보다는 오히려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개선문인 로마의 티투스 황제 개선문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서기 70년경 로마의 티투스 황제가 유대를 정복한 후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그 석재를 로마로 가져와 건설했다고 한다. 그 크기가 높이가 15.4m, 폭 13.5m, 두께 4.7m의 구조물이다.
독립문의 공사는 한국인 심의석이 맡아 완성했다. 그는 34세 때 배재학당 건축 작업에 참여하며 서양 건축술을 익혔고, 이후 덕수궁의 석조전 공사에도 참여하며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엔지니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의석은 높이 14.28m, 폭 11.48m, 두께 6.2m의 독립문을 45㎝×30㎝ 크기의 화강석 1850개를 쌓아 독립문을 완성했다. 이 방식은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조선의 성곽 건축에 많이 사용된 기법이다. 독립문은 전후좌우가 대칭이며 전후가 아치로 이루어져 사면이 아치인 파리의 개선문과는 다르다. 아치의 종석에는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을 조각했다. 문의 안쪽에는 옥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실이 있다. 독립문 전후면의 문 위에는 '독립문'과 '獨立門'문으로 새겨진 현판이 붙어있고 현판의 양쪽에 태극기가 음각돼 있다.
독립문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유럽식 개선문으로, 그 아름다움과 멋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독립문과 관련해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이완용의 것이라는 설, 둘째는 독립문에 새겨진 태극기가 중국식 태극이라는 설이다. 우리 민족에게 문(門)은 역사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한다. 광화문과 숭례문이 그러했듯, 독립문 역시 그러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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