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로 급성장하는 C-커머스···국내 제조기업 대응은 어떻게?[경제밥도둑]
지난 5월 정부는 국가인증통합마크인 KC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몇 년 새 해외 직구가 크게 늘면서 유해물질 우려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사흘 만에 이를 철회했다. 이후 약 100일이 흐른 지금, ‘초저가’를 앞세운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계 온라인 쇼핑플랫폼인 C-커머스의 약진은 ‘현재진행형’이다.
C-커머스의 성장을 보는 국내 기업과 소비자의 시각은 양면적이다. 소비자들은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졌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 제조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공세에 시장 경쟁력을 잃을까 걱정한다. 전문가들은 해외직구 증가 흐름을 뒤집기 어려운 만큼 규제보다는 역직구 시장 개척 등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알리·테무 ‘초저가’ 전략으로 1년 새 64% 성장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직구 금액은 29억4300만달러(3조8868억)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증가했다. 통관 건수는 8918만1000건으로 1년 전보다 45.9% 늘었다.
알리·테무 등 C-커머스는 직구족 증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앱 리테일 분석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지난달 결제추정금액은 3068억원으로 1년 전보다 64% 증가했다. 알리와 테무의 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 합계는 지난달 기준 1602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6% 폭증했다. 일부 제품 유해물질 검출 논란으로 최근 증가세가 주춤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상향 추세다.
C-커머스는 ‘초저가’를 내세워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5000원 운동화, 1000원 한우 등 프로모션을 열어 팬데믹 이후 고물가에 시달리던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다. C-커머스에서 패션·잡화를 주로 구매한다는 직장인 이모씨(26)은 “잔뜩 구매한 것 같은데 비용은 4만~5만원 수준이다. 가격이 워낙 싸니 가끔 품질이 안 좋은 게 와도 ‘뽑기가 잘 안 됐네’하고 넘어가게 된다”면서 “소소하게 ‘플렉스하는’(뽐내는) 기분을 내기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테무의 캐치프레이즈는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다.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진 돈이 적어도 사고 싶은 걸 마음껏 살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 것”이라며 “저렴한 인건비로 생산가를 낮췄고, 한국과 가까운 곳에 물류센터를 지어 물류시간을 단축하는 등 맞춤형 전략도 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기업 경영 부진 우려도
C-커머스의 약진을 바라보는 국내 제조업체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제조기업 2228곳 중 27.6%는 중국 제품의 저가 수출로 매출·수주에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향후 피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답한 기업은 42.1%였다. 국내 제조업체 10곳 중 7곳은 중국산 해외 직구 증가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해외직구 금지 정책에 담긴 면세 한도 하향 등 조치도 이런 국내 기업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해외직구의 경우 150달러까지는 면세대상이다. 이 때문에 부가가치세를 내는 국내제품이 역차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발적 규제로 진입 허들을 높인다고 해도 C-커머스의 국내 진출을 막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해물질이 검출될 우려가 있는 제품에 대한 안전검사와 같은 장치는 필요하다”면서도 “해외직구도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채널 중 하나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이 흐름을 뒤집는 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 규제와 무관하게) 소비자는 결국 저렴한 상품을 찾아가게 돼 있다”면서 “아직 조악한 제품도 좀 있지만 품질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어서 C-커머스를 통한 ‘저가 중품질’ 시장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글로벌 직구시장으로 눈길 확대해야”
해외직구 증가에 따른 순기능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초저가 이커머스 시장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맞춰 국내 기업들도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발만 봐도 초저가 시장과 중간 가격대 시장이 분리돼 있다. 수요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 직구와 내수 시장을 제로섬 시장으로 볼 필요는 없다”면서 “해외직구 제품의 등장으로 시장 외연을 확대할 수도 있고, 이들과의 경쟁이 국내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역직구 활성화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역직구는 해외 소비자에게 국내 플랫폼 쇼핑몰을 통해 국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역직구(해외직접판매) 액수는 39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0% 늘었다. 정 교수는 “현재 국내 플랫폼은 모두 내수용이고 중국 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직구 플랫폼은 없다”면서 “이미 K-팝이나 K-뷰티 등 한류가 세계 시장에서 통한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에 이를 통해 외국인에게도 팔 수 있는 플랫폼 채널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해외플랫폼도 국내 역직구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알리의 모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은 지난 8일 한국기업 전용사이트인 ‘한국 파빌리온’을 개설해 국내 역직구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 교수는 “해외플랫폼의 역직구 시장 진출은 국내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갈 기회”라며 “정부 차원에서 직구 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경쟁이 어려운 분야는 철수·업종 변경을 도와주고, 경쟁력 있는 분야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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