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소재로 우리 사회에 화두… 그의 만화엔 ‘우리’가 있었다 [나의삶 나의길]
한국 만화계의 대부
철저한 자기 관리·고정관념 탈피 ‘모델’
젊은 만화가들이 가장 닮고 싶은 스승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항상 소재에 대한 갈증”
각시탈·오! 한강·19번 홀·타짜·식객 ···
작품마다 보여주는 철저함·‘열혈’ 특징
넘어야 할 산 ‘웹툰’
“웹툰 산업 규모 커져··· 소재 다양해져야
허영만 필명 버리고 새 이름 도전하고파
인기에 급급 않고 ‘종이의 칸 맛’ 살릴 것”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한국 만화계의 대부’.
젊은 만화가들이 가장 닮고 싶은 스승이자 철저한 ‘자기관리’와 ‘고정관념 탈피’라는 키워드의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한 평론가는 “그의 만화를 통해 비로소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고 적었다.
‘제9의 예술’ 만화로 데뷔 50년을 맞은 ‘만화가’ 허영만(75)이다.
이처럼 허영만은 색다른 소재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져왔다. 골프, 바둑, 패션, 화투, 관상 등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펼쳤다. 야구로 필승을, 권투로 꺾이지 않는 의지를, 태껸으로 민족성을, 자동차로 세계 속의 한국을 주장했다. 50년 동안 자신의 작품으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왔다. 그의 작품세계는 특정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의 작품이 말하는 곳, 그곳엔 언제나 우리가 있었다.
그는 “항상 소재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식객’의 경우, 원래 있는 음식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관련 자료를 전부 봐야 했어요. 한 장소에서 며칠씩 머무르며 조사하고 수집하는데, 노숙을 한 적도 있습니다.”
‘타짜’ 때는 어땠을까.
“그전에 도박을 다룬 ‘48+1’을 그렸는데, 리얼리티가 부족한 듯해서 항상 마음에 두고 다녔죠. 그러다 8광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얘기를 들은 겁니다. 패를 돌릴 때 한 사람에게 같은 패 4장을 몰아주는 비법 등도 함께.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말도 이때 들은 거예요. 함양에 있다는 그 사람. 커다란 가축시장 장날 ‘돈’ 보고 모여들면 화투를 친다는 … 그렇게 그린 것이 ‘타짜 1부―지리산 작두’예요. … 오른손으로 그리므로, 왼손을 거울에 비치면 오른손처럼 보입니다. 거울을 하나 더 놓으면 다시 왼손으로 보이죠. 그렇게 손을 그렸어요. 기술 부리는 손을.”
“이는 성인만화잡지 ‘만화광장’에서 연재를 제안한 것인데, 편집진들은 사실 반공 만화를 원했어요. 일단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조건을 제시했죠. 해방 이후 분위기는 생활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게 그렸어요. 어른들도 다 계시고 했으니. 그때 이야기 그대로 했을 뿐. 당시 허용 범위 한계를 오가며 그리던 생각이 납니다.”
쉴 틈 없이 이어온 그의 만화 열정은 마침내 일상에 닿는다. 식문화를 예술로 승화한 ‘식객’은 미식 유행을 이끌어내며 대중의 광범위한 사랑을 받았다. ‘요리’를 통해 완성되는 ‘음식’이 서사를 가진다는 점을 시사하며 전문 정보와 이야기의 감동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장장 8년 동안 연재됐다.
“제 만화에는 슈퍼스타가 없어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로도 쉽게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허영만 만화의 특징은 다양한 소재의 완성도와 강렬한 감정적 움직임 그리고 특유의 유머에 있다.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소재가 다양한데, 모두 완성도를 달성하고 있다. 기업, 경마, 도박, 세일즈 같은 소재는 제대로 된 사전 조사를 거쳐야만 독자의 신뢰를 얻는다. 작품마다 보여주는 철저함이 바로 허영만 만화의 재미이자, 미덕이고, 특징이다. ‘열혈(熱血)’도 돋보인다. 서사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감정의 고양을 말한다. ‘아스팔트 사나이’의 강토는 총알을 맞고도 다시 일어나 혼다와 포드, GM 사장의 항복선언을 받는다. 유머도 강점이다. ‘보물섬’ 연재물들은 만화적 과장이 잘 살아 있고, 서사의 재미를 충족시켜 주었다.
여순사건은 “여전히 노려보고 있다”고 답한다. 급히 진행하기보단, “내면에 우뚝 섰을 때 풀어내야 한다”고 뚝심 있게 말한다.
그에겐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웹툰’으로의 진출이다.
“웹툰 수익이 좋다는 것 잘 알아요. 생각도 해보지만 행여 노년에 욕먹을 일 만들까 봐 염려하는 겁니다. 종이는 흔적을 남기는데, 모니터엔 흔적이 남지 않아요. 맘에 안 드는 부분입니다.”
웹툰이 산업으로서 너무 커지다 보니 작가가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돌아가, 웹툰으로 시작한다면 ‘허영만’이란 필명을 버리고 새 이름으로 도전하고 싶어요. 그래도 ‘통’하는가 보고 싶거든요.”
3개월 연재 분량쯤 그려놓은 게 있단다. 하지만 메인 제작사들이 선뜻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엄살을 떤다.
“한때 야구 동호회 ‘먹물’에 들어가고, 골프를 치고, 요트를 타고, 산에 오르고, 식도락과 도박까지 즐겼던 것도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만화 같은 소재’가 아니라 ‘색다른 소재’를 만화화하는 허영만의 작품세계는 모두 그가 ‘쉼’ 속에서 일을 구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소맥 폭탄주’ 열 잔쯤은 거뜬히 마시며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그렇지만 술은 조금씩 ‘즐겨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분위기가 무르익어도 ‘1차’만으로 끝낸 뒤 탁 털고 일어서는 것이다. 철칙을 어긴 적이 없다. 다음날 오전 5시 눈을 뜨는데 오전은 대개 집에서 보내고 졸리면 또 자다가 오후에 사무실로 나간다. 국민 ‘식객’의 해장 비법은 그냥 ‘물’과 ‘시간’이다.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적게 먹는 것이란다.
“많이 먹으면 다음 끼니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거든요. 하하.”
광양에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은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라는 문패를 내걸고, 10월20일까지 허영만 특별전을 연다. 대표작을 비롯해 만화 원화, 드로잉, 취재 자료 등 2만여점을 전시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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