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통한 ‘사실무근 뉴스’에… 재벌 총수도 기업도 속앓이 [심층기획-사회 혼란 빠뜨리는 '가짜뉴스·딥페이크']

박미영 2024. 8. 2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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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계 ‘가짜뉴스’ 홍역
‘위기설’ 컬리 “허위 유포 법적조치 검토”
정몽구 건강 이상·삼성 반도체 사고…
무분별 허위 정보로 계열사 주가 요동
딥페이크로 유명인 사칭 사기도 횡행
기업 가치 훼손·주주들까지 피해 미쳐
2023년 美 SVB 파산 사태 SNS가 도화선
국내선 저축은행 ‘뱅크런’ 문턱까지 가
“사후약방문식 아닌 사전 예방책 시급”

‘A그룹 명예회장 사망’, ‘B사 대규모 사고 발생, 피해 규모 1조원’, ‘C기업 합병 추진’.

경제·산업계가 최근 들어 부쩍 쏟아지고 있는 가짜뉴스로 홍역을 앓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재벌 총수 등 기업인을 둘러싼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기업과 주주에게까지 피해가 미치는 실정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외국에서는 SNS가 불을 댕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탓에 은행이 파산하기까지 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가짜뉴스로 한 저축은행이 뱅크런 문턱까지 갔었다. 금융당국은 SNS를 기반으로 한 시장 불안 조성행위에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과거처럼 피해 발생 후에야 마련되는 사후약방문식이 아닌 예방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벌총수도 속앓이… 계속되는 ‘가짜뉴스’

27일 재계에 따르면 재벌 총수와 기업을 둘러싼 가짜뉴스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리테일 테크 기업 컬리는 이날 “최근 컬리의 재무상태 등을 둘러싼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현재 현금 유동성 등 재무구조는 안정적”이라며 “온라인 등에 허위사실 유포 시 법적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재무구조가 불안정하다’, ‘김슬아 대표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등 컬리를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이 무분별하게 확산됐었다.

지난 6월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었다. 유튜브를 통해 사실인 것처럼 확산하면서 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가 ‘사실무근’이란 공시까지 내야 할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었다.

삼성전자를 둘러싸고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웨이퍼 생산과정에서 결함이 발생했다는 가짜뉴스가 돌았었다. 지난 6월26일 주식시장 개장 전 일부 매체가 관련 보도까지 하면서 주가는 개장 직후 급락했다. ‘웨이퍼뱅크 내 사고 발생. 손상차손 1조원, 반도체 적자 가능성’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그럴싸하게 포장된 가짜뉴스에 투자심리까지 요동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가짜뉴스의 먹잇감이 됐다. 지난해 4월 ‘이 회장이 구입한 코인’이라는 가짜 정보로 투자금을 갈취한 사기업체가 늘어나자 금융감독원이 투자자들에게 주의보를 내렸었다. SNS에 유명인 사진과 이름을 사칭해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글을 올리고 카카오톡 등에 개설된 대화방 가입을 유도한 뒤 돈을 가로채는 이른바 ‘유명인 사칭 리딩방 사기’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유명인이 직접 투자를 권유하는 모습을 담은 가짜영상도 횡행하고 있다.
‘세기의 이혼’으로 주목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소송 과정에서 ‘회장직 전격 사임’ 등의 갖가지 가짜뉴스로 곤욕을 치렀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포함된 내용이면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가짜뉴스가 반복되고 있다”며 “당사자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주는 탓에 그 피해는 유·무형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고 세계일보에 말했다.

가짜뉴스를 만들거나 퍼뜨린 유튜버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현대차는 2020년 악의적으로 회사를 허위 비방한 유튜브 채널 편집장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유튜브 전파성 및 파급력, 채널 구독자 수 및 영상 조회 수에 비춰봤을 때 피해가 중하다”며 “피해자의 명예 및 권리회복이 어려우며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며 A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문제의 영상 조회 수는 180만회를 넘겼었다.
커뮤니티 글에 흔들린 신뢰 경제·산업계는 최근 부쩍 쏟아지고 있는 ‘가짜뉴스’로 홍역을 앓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저축은행업계에서는 뱅크런이 촉발될 뻔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10일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직후 국내에서는 ‘저축은행 두 곳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1조원대 결손이 발생해 지급정지가 예정됐다’는 내용의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대규모 예금 인출 조짐이 나타났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저축은행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SNS가 뱅크런에 기름 부어… “대비책 필요”

금융가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서 알 수 있듯 각종 악재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는 탓에 항상 뱅크런 공포에 시달린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실러 애리조나주립대 경영학과 교수 등 미국과 유럽의 5개 대학 연구자들은 최근 ‘뱅크런 촉매제로서 소셜미디어’라는 논문을 통해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트윗이 SVB의 뱅크런을 악화시켰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SVB는 지난해 3월 위기설 확산으로 하루 만에 예금 420억달러(약 56조원)가 빠져나가면서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고, 결국 문을 닫았다.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인 은행이 불과 36시간 만에 파산하면서 현지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었다.

이 논문은 뱅크런을 앞두고 예금주들이 SNS에 ‘SVB 위기’를 공유하면서 공포를 확산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SNS 기반 뱅크런은 금융 시스템에 새로운 위험 요소”라며 “정책 입안자들은 위기가 빠르게 진행되는 새 시대에 맞는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 앞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기다리는 예금주들의 모습. 미국 16위 시중은행이었던 SVB는 유동성 위기 확산과 이에 따른 모바일 뱅크런이 발생해 하루 만에 56조원이 인출되는 등의 진통을 겪은 끝에 파산했다. 신화통신
국내에서는 가짜뉴스로 뱅크런이 촉발될 뻔하기도 했다. 작년 SVB 파산 직후 ‘저축은행 두곳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1조원대 결손이 발생해 지급 정지가 예정됐다’는 내용의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대규모 예금인출 조짐이 나타났었다. 당시 저축은행중앙회가 나서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을 밝혔고, 금감원 또한 초기 진화에 나서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연이어 새마을금고를 둘러싸고도 가짜뉴스 등을 원인으로 한 뱅크런이 발생하자 행정안전부와 금융위원회 등이 범정부 대응단을 꾸려 대응에 나서야 했다.

한국에선 특히 이 같은 ‘디지털 뱅크런’에 대한 우려가 큰 편이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많고 디지털 인프라가 잘 갖춰진 만큼 가짜뉴스로 금융시장이 받는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한다.

장호규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당장 디지털 뱅크런의 위험성이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사태 발생을 대비해 긴급 명령 등 대책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며 “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리딩방 사기 등 금융 범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금융당국이나 수사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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