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하루 4시간만 부탁드려요”, 팽창하는 가사·돌봄 시장
① “하원도우미 선생님 구합니다. 오후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아기 놀아주기, 점심·저녁 챙겨주기, 목욕 등 업무입니다. 시급은 1만3000원입니다. 집에 CCTV 있습니다. 필요한 서류는 주민등록등본+신분증사본+가족관계증명서+건강진단결과서입니다. 대면 면접 진행합니다.”
② 김모(55·여) 씨. 본인인증 완료+등초본인증 완료+정부 시터교육 인증 완료+아이돌봄 인적성 인증 완료+엄마 인증 완료. “안녕하세요. 대학생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신생아부터 초등생까지 돌보고 있습니다. 긴급, 단기 돌봄을 가장 선호합니다.”
①은 당근마켓 알바서비스에 올라온 하원도우미 구인글이다. 12시간 만에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읽었다. ②는 육아도우미와 부모를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 맘시터에 공개된 육아도우미의 정보와 소개글이다. 육아도우미가 활동 가능한 시간대와 선호하는 돌봄 유형 및 연령, 책읽기·야외활동·한글놀이·간단한 청소·밥챙겨주기 등 가능한 활동이 나열돼 있다. 육아도우미에 대한 후기도 볼 수 있다. 해당 사례의 후기는 150건에 달했다.
과거엔 부모들이 인력사무소를 통하거나 지인에게 알음알음 육아 도우미를 소개받았다. 전단지를 붙여 도우미를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젠 그 시장이 온라인으로 옮겨왔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구인 공고를 내거나 아예 육아 돌봄 전문 앱을 통해 도우미를 고용하는 식이다. 육아 돌봄 중개 시장이 더 편리하고 투명해진 셈이다.
돌봄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업체나 지인에게 제공받는 정보가 한정되다 보니 (도우미 간) 비교가 쉽지 않았다. 온라인 시장이 열리며 정보의 비대칭이 해결된 셈”이라며 “또 발로 뛰는 전단지보다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구인글을 올리고 부모와 도우미 간 빠르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비싼 전일제 대신 파트타임 선택
육아 돌봄 시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루 종일 아이를 봐주거나 특정 필요 시간에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다. 전자는 비용이 부담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3월 발표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사·육아도우미 비용(월 임금)은 264만원이다. 지난해 기준 30대 가구의 중위소득이 509만원인 걸 감안하면 소득의 절반가량 써야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젊은 부부들은 플랫폼을 통해 돌봄 도우미를 일정 시간에만 고용하고 있다. 주로 등·하원 시간이나 병원 방문 등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는 경우다. 시간당, 횟수당으로 금액이 계산돼 훨씬 경제적이다.
경기도 과천에서 17개월 된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A(30) 씨는 당근마켓을 이용했다. 그는 “아기가 아프거나 짧은 시간 급하게 필요할 때 같은 지역 사람이 편하다. 동네 사람을 구할 수 있어 당근을 이용했다”며 “3번의 면접 만에 마음에 쏙 드는 선생님(도우미)을 만났다”고 말했다. A 씨는 건당 5만원을 지출한다. 주 5일 고용하면 한 달 비용으로는 100만원이 나간다.
최근 둘째를 낳은 B(36·경기도 군포) 씨는 맘시터를 이용했다. 첫째의 하원과 이후 육아를 위해서다. 맘시터 이용권은 한 달에 4만4900원. 여기에 B 씨가 고용한 도우미의 시급은 1만5000원으로 일주일(하루 4시간씩) 총 비용은 30만원이다. 전부 합치면 한 달에 125만원 정도 드는 셈이다. B 씨는 “맘카페에서 일일이 손품 팔지 않고 앱에서 바로 각 도우미 선생님의 후기글을 읽는 것도 편리했다”고 말했다.
맘시터를 운영 중인 맘편한세상 관계자는 “공신력 있는 문서 등은 원본 확인 후(비대면) 인증배지를 부여한다”며 “본인인증, 주민등록등초본, 보육교사자격증, 가족관계증명, 대학졸업증명, 건강진단결과서, 아이돌봄인적성검사, 맘시터e테스트, 맘시터교육수료 등 9가지”라고 설명했다.
◆맞벌이·1인가구 증가로 가사·돌봄 플랫폼도 ‘쑥’
편리하고 경제적이라는 점 외에 가사돌봄 시장이 커진 또 다른 이유는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맞벌이 가구가 처음 600만 가구를 넘어섰다. 통계를 집계한 2015년 이래 처음이다. 비중으로 보면 배우자가 있는 가구 중 절반가량이 맞벌이인 것이다.
아이러니지만 1인가구도 수요에 가세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국에 혼자 사는 사람이 1000만 명을 넘었다. 이는 전체(약 2000만 가구) 가구 중 40% 이상이다.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청소가 귀찮은 1인가구들은 가사와 돌봄 도우미를 모바일 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인력사무소에 전화할 필요 없이 앱을 통해 비용과 후기를 확인하고 본인이 필요한 서비스와 도우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앱 시장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맘시터·청소연구소·미소 등 주요 가사·돌봄 중개 앱을 설치한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올해 7월 기준 45만7000명이다. 지난 2021년 7월 규모(27만3000명)와 비교하면 3년 만에 67% 성장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사·돌봄 플랫폼 종사자는 2년 새 2배 증가한 5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청이 분류하는 가사·육아도우미 취업자 수(2023년 기준 10만5000명)의 절반에 달한다. 다만 플랫폼에는 맘시터, 자란다, 청소연구소 등 가사·돌봄 플랫폼 말고도 세탁 대행 플랫폼(런드리고, 세탁특공대), 심부름·알바 플랫폼(해주세요) 종사자 등도 포함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사·돌봄 플랫폼 시장이 태동했던 2016년 당시엔 가사도우미 연결 앱만 20여 개 생겼다”며 “최근 가사는 미소나 청소연구소, 돌봄은 맘시터나 자란다 등으로 시장이 재편됐다”고 말했다.
이어 “수요자는 3040이 많은 편인데 이들 모두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다 보니 5060 도우미들이 앱을 통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사도우미 중개 앱 미소는 지난해 4분기 90만 명이 이용하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0% 성장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소연구소를 운영 중인 생활연구소 역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서비스 가입자 수만 150만 명, 등록 가사도우미는 14만 명이다. 맘시터는 지난해 거래 추산액이 2600억원에 달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300% 성장했다. 서비스 가입자 수는 올해 8월 기준 135만 명, 이 중 육아도우미는 90만 명이다.
다만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가사·돌봄 플랫폼의 인력풀이 조만간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10년간 육아 돌봄 시장에서 일한 C(62·서울 송파구) 씨는 “감기 한 번 걸리면 한두 달은 일을 쉬어야 하는데 파트타임은 수익도 크지 않은 데다 나를 증명해야 하는 건 너무 많다”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육아도우미 취업자 수는 △2021년 12만1000명 △2022년 11만4000명 △2023년 10만5000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돋보기
돌봄인력 부족해 필리핀 가사관리사 데려왔는데 비싸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지난 8월 6일 입국했다. 이들은 돌봄 공백 완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에 따라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한 첫 외국인 가사관리사다. 교육을 거쳐 9월 3일부터 현장에 투입된다.
문제는 비용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홍콩(시간당 2797원)과 대만(2472원), 싱가포르(1721원)에 비해 높다는 지적이다. 한국에 투입된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하루 8시간 근무하고 한 달에 238만원을 받는다. 최저임금(9860원)과 4대 사회보험, 주휴수당 등을 반영한 금액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7% 더 올라 1만30원이 되기 때문에 가구당 부담 금액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한 사람분의 월급을 고스란히 써야 하는 구조인 셈. 선정 가구의 40% 가량이 강남권에 집중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신청한 751가구 중 318곳(43%)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있는 가구였다.
다만 비싼 서울 물가를 고려하면 이들의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란 의견도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퇴근 후 서울 강남에 마련된 숙소에서 생활한다. 매달 숙소비 40만원과 식비, 생활비 등은 본인이 내야 한다.
일각에선 맞벌이 가정의 육아와 가사를 돕고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가 무색하단 지적도 있다. 지금도 ‘이모님’들에게 월 200만∼300만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 인력 유입이 돌봄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했던 내국인 여성(중·고령)의 일자리 잠식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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