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넬이 편은 들어줬지만..자존심 구긴 ‘악마’ 보라스, 명예회복 할 수 있을까[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악마의 에이전트'라 불리는 스캇 보라스는 지난 오프시즌 자존심을 구길대로 구겼다. 겨울의 승자가 되는 것이 익숙했던 보라스지만 지난 겨울은 아니었다.
'보라스의 고객'들은 지난 겨울 FA 시장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계약 규모도 최초 이야기가 나오던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스타급 선수들이 새 팀과 계약이 늦어지며 스프링캠프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모든 '보라스의 고객'들이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무능한 에이전트'를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선수도 있었다.
시장이 차가웠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겨울 FA 시장에서는 '역대급' 계약이 연이어 나왔다. 오타니 쇼헤이가 비록 계약 규모의 97%를 '디퍼(지연지급)'하는 충격적인 꼼수를 썼지만 LA 다저스와 무려 총액 7억 달러의 FA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대규모 계약임은 물론 역대 프로스포츠 단일 계약 기준 최고액 계약이었다.
포스팅을 통해 태평양을 건넌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다저스와 12년 3억2,5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역대 포스팅 최고액이자 역대 빅리그 투수 최고액 계약이었다. 미국 무대 경험이 전무한 야마모토는 종전 투수 최고액 계약자였던 게릿 콜(NYY)보다 총액이 큰 계약을 맺었다.
두 건의 계약은 최고의 성공 사례였다. 종전 최대 규모 계약이었던 마이크 트라웃(LAA)의 12년 4억2,650만 달러 계약을 아득히 뛰어넘은 오타니는 물론 투수 계약의 새 역사를 쓴 야마모토까지, 다저스가 적극적으로 지갑을 연 것도 있었지만 에이전트들의 협상력이 뛰어났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오타니의 에이전시는 그가 빅리그에 도전할 때부터 함께 해온 CAA스포츠. 야마모토의 에이전시는 와서맨이었다. 두 회사 모두 특급 스타 플레이어들을 다수 보유한 대형 에이전시지만 '업계 1인자'라 부르기는 어려웠다. 선수에게 극한의 이득을 안겨준다는 '악마' 보라스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오타니의 7억 달러는 보라스조차 꿈도 꿔보지 못한 금액이었고 야마모토의 3억2,500만 달러는 보라스가 성사시킨 콜의 계약(9년 324M)을 100만 달러 넘어선 '상징성'이 있는 계약이었다. 두 계약 모두 스스로 최고임을 자부하는 보라스의 자존심을 긁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보라스는 지난 겨울 지속적으로 무리수를 던진 끝에 사실상 '자멸'했다.
포스팅으로 빅리그에 도전한 이정후에게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을 안긴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FA 선수들의 계약이 문제였다.
보라스에게는 지난 겨울 '빅 4'가 있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좌완 블레이크 스넬,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의 우승 주역이었던 좌완 조던 몽고메리, 재기에 성공하며 부활을 알린 외야수 코디 벨린저, 골드글러브 수상자인 공수겸장 3루수 맷 채프먼이었다.
네 선수는 모두 FA 시장에서 각 포지션의 최대어급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다. 스넬은 기복이 심했고 몽고메리는 쌓아놓은 커리어가 부족했다. 벨린저는 예전의 강력함과는 다른 성적을 냈고 채프먼도 준수하지만 최고라 부르긴 어려웠다.
하지만 보라스는 이 선수들을 마치 몇 년 연속 맹활약한 선수들처럼 '값'을 불렀다. 당연히 구단들은 소극적으로 협상에 임했고 계약은 계속 늦어졌다. 네 선수 중 스프링캠프 개장 이전에 새 팀을 찾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벨린저는 옵트아웃 조항이 포함된 3년 8,000만 달러 규모 계약으로 2월 말 원소속 구단 시카고 컵스에 잔류했고 채프먼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3월 초 3년 5,4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스넬은 3월 중순 샌프란시스코와 2년 6,200만 달러 계약을 맺었고 몽고메리는 넷 중 가장 늦은 3월 말에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와 1년 2,500만 달러가 보장되는 계약을 체결했다.
보라스 협상 전략의 실패였다. 네 선수 모두 더 이른 시기에 더 좋은 조건의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라스는 무모하게 '더 많은 돈'만을 요구했고 그렇게 협상이 난항을 겪는 사이 시간이 흘렀다. 겨울 FA 시장에서 시간은 구단의 편이다. 구단은 FA 선수 한 명이 없어도 시즌을 치를 수 있지만 선수는 소속팀 없이 시즌을 시작하는 것이 엄청난 위험부담이기 때문. 결국 스프링캠프가 개장하고 각 구단이 전력 구상을 마무리해가자 보라스도 투항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다른 에이전트들의 '역대급 성과'를 지켜봐야 했고 본인은 뼈아픈 대실패까지 경험했다. 그야말로 보라스에게는 굴욕의 오프시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전 고객의 비난까지 마주하게 됐다.
MLB 트레이드 루머스(MLBTR)에 따르면 최근 몽고메리는 "보라스가 FA 계약을 망쳤다"고 보라스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 2시즌 활약으로 주가가 오르던 상황이었던 만큼 몽고메리 입장에서는 계약이 당연히 불만일 수 밖에 없었다. 몽고메리는 실제로 애리조나와 계약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야마모토가 소속된 와서맨으로 에이전시를 옮겼다.
다만 모든 고객이 불만인 것은 아니었다. 두 번이나 사이영상을 수상했지만 사이영상 수상 시즌을 제외하면 늘 아프고 불안한 투수였던 탓에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스넬은 보라스가 따낸 2년 6,200만 달러 계약에 만족하며 몽고메리를 비난하고 나섰다. 스넬은 "보라스와 함께한 경험은 최고였다"며 "몽고메리는 본인이 선택한 것이고 원하던대로 계약한 것"이라고 보라스를 옹호했다.
양측의 말에 모두 일리는 있다. 계약을 에이전트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몽고메리가 캠프가 시작하기 전 다른 제안들을 거절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3월 말까지 미계약자 신분으로 남은 것은 몽고메리의 선택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 맞다. 하지만 보라스가 '더 좋은 계약을 따내주겠다'고 몽고메리를 설득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제안을 거절한 몽고메리의 선택이 보라스의 설득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만큼 몽고메리의 불만도 이해는 되는 것이다.
비록 스넬이 편을 들고 나섰지만 보라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최악의 오프시즌을 보낸 보라스가 다가올 FA 시장에서는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올겨울 FA 자격을 얻는 보라스의 고객은 후안 소토(NYY), 코빈 번스(BAL), 알렉스 브레그먼(HOU), 피트 알론소(NYM), 타일러 오닐(BOS), 기쿠치 유세이(HOU) 등이다.(자료사진=스캇 보라스)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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