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증원은 되돌리기 어렵지만… 후년은 협의 여지 있어

조백건 기자 2024. 8. 2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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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 출구 전략 찾나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1만여 명이 집단 이탈하면서 시작된 의료 파행이 6개월을 넘어가고 있다. 정부는 “매년 2000명 의대 증원”을 고수했고, 전공의들은 “당장 백지화”를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양측 모두 미묘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여당은 “2026학년도(내년 입시) 의대 증원은 유예하자”는 입장을 정해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의료계가 원하는 증원 백지화 뉘앙스를 풍기는 ‘유예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도 지난 2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의정 갈등) 사태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소속 병원에) 안 돌아간다. 나를 잡아가라”고 했던 기존 발언과 달리 여당에 사실상 중재 요청을 한 것이다. 의료계에선 “정부·여당은 물론 전공의 내에서도 이번 사태의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전보다 더 확산하고 있다는 방증”이란 얘기가 나온다.

◇2025학년도 증원 입장은 평행선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원점 재논의 의향이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원점 재논의’ 시점이다. 전공의들은 “당장 2025학년도(올해 입시)부터 의대 증원을 백지화해야 복귀할 수 있다”고 하고 있고, 정부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는 지금 백지화를 발표하면 엄청난 혼란이 생긴다는 입장이다. 이미 7월 초에 수시 재외국민·외국인 전형 원서 접수가 끝났고, 내년도 의대 신입생 대부분을 선발하는 수시 모집도 며칠 뒤인 다음 달 초 시작된다. 내년도 의대 증원은 되돌릴 수 없는 사안이란 것이다. 정부로선 압도적인 ‘의대 증원 찬성’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당장 증원 백지화를 발표하라고 하면, 대화나 협상이 무의미하다”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2026학년도 증원은 협의 여지

현 고2가 입시를 치르는 2026학년도 의대 증원 문제는 2025학년도에 비해선 협의 여지가 있다는 전망이 많다.

정부도 2026학년도 입시부터는 의대 증원 재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의료계가 ‘통일된 의대 증원안’을 제시하면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증원 숫자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엔 ‘통일된 증원안’이란 재논의 전제 조건까지 철회하고, 의료계가 대화에만 참여하면 재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들의 경우 지금도 대외적으로는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 없이는 대화도 복귀도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전공의 내부에서도 “더는 이렇게 지낼 순 없다”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영남의 한 사직 전공의는 본지에 “자녀도 키워야 하고, 대출금도 상환해야 한다”며 “언제까지 동료 눈치 때문에 복귀를 미룰 순 없다”고 했다.

◇의대 학장들 “2026학년도 증원 협의하자”

일각에선 여당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건의안에 일부 전공의들의 기류 변화가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박단 대전협 회장이 지난 20일 비공개로 만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당이 대통령실에 이런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5학년도가 아닌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를 제안한 것은 박단 회장이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2026학년도 증원 문제를 협의하자는 의견도 있다’는 식으로 일부 전공의들의 의견을 전달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사직 전공의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 방침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전공의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며 “박단 회장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했다.

6개 의대 학장들도 지난 24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찾아가 “올해 안으로 의정협의체를 만들어서 2026학년도 정원은 이 협의체에서 결정하도록 하자”며 “정원을 늘리든 줄이든 이 협의체 결과에 따르자”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인사들은 “대통령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는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 보자고 발표하는 식으로 전공의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대화를 하게 된다면 의료계는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정부와 의료계가 동수(同數)로 참여하는 의정협의체를 신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직역의 사람들이 들어오면 합의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대일 협의체 신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위원장은 명망 있는 원로 법조인 등이 맡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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