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 민생외면" 벼르는 野…예산안 국회 통과까지 험로 예고

세종=박광범 기자 2024. 8. 2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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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예산안]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대통령실 제공 /사진=(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진짜 '예산전쟁'은 이제부터다.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된 정부 예산안이 '안(案)'이란 꼬리표를 떼고 실제 예산이 되기까지는 국회라는 험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안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표정책이라 할 수 있는 지역화폐 예산이 단 한푼도 담기지 않았고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예산도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쟁점이 된 새만금 예산도 총액 기준으로는 삭감돼 야당 반발이 예상된다. 당장 민주당은 정부의 예산안을 두고 "부자감세, 민생외면, 미래포기가 반영된 예산안"이라고 혹평하고 나섰다.

정부가 27일 발표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 지역화폐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지역화폐는 전국 약 230여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내 소비 촉진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주민이 지역화폐를 이용해 소비하면 결제액의 일정 비율을 캐시백 등으로 돌려주는 형태다. 지역화폐는 지자체 자체 사업으로 출발했지만 2018년 정부가 군산 등 고용위기지역 등을 대상으로 지원을 추진하면서 중앙정부 재원이 투입됐다. 이후 코로나19(COVID-19)를 겪으며 재정 지원 규모가 확대됐다.

윤석열정부 들어 기류가 바뀌었다. 정부는 2023년 예산안 편성 때부터 지역화폐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

야당은 반발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대선공약 실현을 위해 지역화폐 사업에 대한 정부 재정 투입을 요구했다. 결국 국회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 요구에 결국 2023년 3525억원, 2024년 3000억원의 지역화폐 예산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됐다.

특히 내년 지역화폐 예산을 둘러싼 국회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건 이 대표가 22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이 지역화폐와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른바 '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을 22대 국회 첫 법안으로 추진해 단독 처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5년 예산안 상세브리핑에서 "국민들 개개인의 어떤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현금성 지급을 하는 방식보다는 필요한 분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그다음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며 "(2025년 예산안은) 책임 있는 민생 해결 예산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야당의 민생회복지원금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앞서 최 부총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과 관련 '부작용이 우려되는 미봉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에 대한 입장문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은 발행되자 마자 국민들이 구매하여 고물가 시기에 가계지출 부담 경감에 기여하고 동시에 소상공인·자영업의 매출증진에도 보탬이 되는 일석이조의 정책"이라며 "그럼에도 정부는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일체 반영하지 않는 민생외면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야당 반대를 뚫어야 하는 정부로선 야당 요구를 깡그리 무시할 순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예산안 및 세법 처리 과정에서 여야정 협상의 산물로 지역화폐 예산 일부가 다시 한번 부활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다른 사업의 예산 삭감이 불가피하다. 예산은 감액 범위 내에서 증액하는 게 원칙이다. 지난해 지역화폐 예산 3000억원이 부활하는 과정에선 환경 및 일반·지방행정 등 분야 예산이 줄었다.

아울러 새만금 예산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 내년 예산안에 새만금 예산은 약 4000억원 가량 담겼다. 지난해보다 줄어든 규모로 야당 반발이 예상된다. 앞서 새만금 예산은 지난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쟁점예산으로 부각됐고 결국 야당 요구에 따라 정부안보다 3000억원 가량 증액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내년 전주-새만금 고속도로 완공에 따라 예산안 총액이 줄었을뿐 이부분을 제외한 예산은 올해보다 늘었다는 입장이다.

노인일자리 사업도 논란이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노인일자리 사업을 '질 낮은 일자리'라고 비판해왔던 윤석열정부가 이 사업 예산을 크게 늘리기로 하면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노인빈곤률을 고려했고 단순 현금복지가 아니라 일하는 복지를 해보잔 차원에서 노인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개편했다"며 "통상 노인일자리 중 양질의 일자리는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서비스형'과 '민간형'을 말하는데 이 비중을 지난 정부 5년 평균 22%에서 내년 37% 수준으로 1.7배가량 높였다"고 설명했다.

줄어든 SOC 예산…"거시경제 안정적 성장 위한 정부 재정 역할 필요" 주장도
분야별 재원배분/그래픽=이지혜
내년 예산안은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에 가깝다는 평가다.

실제 예산안의 분야별 재원배분을 살펴보면 내년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안은 총 25조5000억원으로 올해 예산(26조4000억원)보다 3.6%(9000억원) 줄었다.

정부는 도로와 철도 등 완공 노선이 많았고 신규 사업의 경우 초기 단계에선 상대적으로 소액의 설계비·착수금만 들어가 SOC 예산안이 감액 편성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내년 예산안에는 용인산단을 관통하는 국도 45호선 이설·확장(4→8차로) 예산이 담겼는데 실제 착공은 2026년 이뤄지는 까닭에 2025년엔 설계비만 반영됐다.

다만 일각에선 SOC 사업 축소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경기 위축 우려가 제기된다. SOC 예산 축소가 가뜩이나 부진한 건설 경기 위축을 부추길 수 있단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건설투자가 올해와 내년 각각 0.8%, 0.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향후 건설투자는 주거용·상업용 중심의 입주물량 축소와 신규착공 위축 영향으로 공사물량 감소가 본격화되면서 당분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구조조정 관련 불확실성도 하방리스크로 잠재해 있다"고 밝혔다.

산업정책을 위한 예산을 두고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 'ABC+'라는 이름의 첨단산업 육성 예산을 담았다. △AI(인공지능) △Bio(바이오) △Chips(반도체)의 앞글자를 딴 예산이다.

구체적으로 4조3000억원 규모의 장기, 저금리 설비투자자금 대출을 위한 예산 2500억원을 편성했고 반도체 생태계 펀드 규모도 3000억원에서 4200억원을 확대(예산 300억원 투입)해 팹리스·소부장의 대형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첨단산업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저금리 R&D(연구개발) 자금 융자를 위한 예산도 기존 9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다. 앞서 발표된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 후속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해당 방안은 보조금 등 지급 없이 산업은행을 통한 저리 대출과 세액공제 등 간접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단 지적이다.

정부는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재정 여력이 약해진 상황이지만 재정이 꼭 필요한 곳에는 예산을 과감히 지원했단 입장이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낮냐, 높냐를 따질 수 있는데 저희가 판단하기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급격한 긴축재정이 경제 전반에 충격이 될 수 있단 우려는 여전하다. 건전재정은 가파른 긴축이 아닌 세수 기반 확충 등을 포함한 중장기 시계에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로 통화정책 여력이 크지 않은 만큼 정부 재정이 '최후의 보루'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를 보완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정부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거시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달성하기엔 내년도 예산안이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며 "민간이 부족한 부분을 정부 재정으로 보완해줘야 하고 그 보완을 못해주면 결국 거시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 우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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