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너른 평원

관리자 2024. 8. 2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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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화창한 여름.

넓은 강과 숲, 멀리 보이는 언덕을 배경으로 여러 명의 여성이 달리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인해 체력적으로 큰 힘이 드는 코스지만, 프랑스혁명의 중추적인 사건인 1789년 10월 '베르사유 여성 행진'을 기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생존 필수품인 빵을 구하기 위해 파리에 모인 여성들은 20㎞를 행진해 왕과 왕비를 만나러 갔고, 이들의 요청은 왕실과 의회를 향한 강력한 정치적 요구로 이어지며 프랑스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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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데이네카, ‘너른 평원’, 1944년 204x330cm, Russian Museum, Saint Petersburg.

뜨겁고 화창한 여름. 넓은 강과 숲, 멀리 보이는 언덕을 배경으로 여러 명의 여성이 달리고 있다. 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지만 놀랍도록 리드미컬한 구도 속에서 시원한 바람과 맑은 날씨를 만끽하며 달리는 모습에 보는 사람까지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그림 속 모든 것들은 움직인다.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흔들리는 나뭇가지, 밀려오는 물결 모두 이들의 달리기를 격려하는 듯하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데이네카(Alexander Alexandrovi ch Deineka, 1899∼1969년)는 구소련 시대의 중요한 화가이자 조각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구상예술가 중 한명이다. 강렬한 색채와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데이네카의 작품들은 인간의 육체적 힘과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며 낙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944년 여름, 화가는 독소전쟁(1941∼1945년) 발발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대작을 드디어 완성한다. ‘너른 평원’은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한 평화로운 삶과 빛나는 청춘에 대한 즐거운 찬가로 보이지만 당시 소련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 한복판에 있었다. 전선으로 불려 나간 남성 대신 매일 아침 공장으로 달려가던 젊은 여성들은 조국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믿었으리라.

사상 최초로 남녀 선수가 같은 인원으로 출전한 2024 파리 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 마라톤 경기로 마무리됐다. 모든 종목을 동등하게 선보이겠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자,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여자 마라톤이 처음 개최된 지 4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한 것이다. 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파리 시청에서 출발해 콩코르드광장과 에펠탑을 거쳐 베르사유궁전을 찍고 파리 시내로 돌아오도록 설계됐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인해 체력적으로 큰 힘이 드는 코스지만, 프랑스혁명의 중추적인 사건인 1789년 10월 ‘베르사유 여성 행진’을 기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생존 필수품인 빵을 구하기 위해 파리에 모인 여성들은 20㎞를 행진해 왕과 왕비를 만나러 갔고, 이들의 요청은 왕실과 의회를 향한 강력한 정치적 요구로 이어지며 프랑스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뜨거운 여름. 혁명 중에도 전쟁 중에도 국가를 위해 또 국가에 의해 끊임없이 달리는 여자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박재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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