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영양덩어리’ 고구마…원래 이름은 감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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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겸손하다.
고구마는 감자에게 이름을 빼앗겼다.
쉽게 말해 감자는 원래 고구마를 뜻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초창기 고구마 재배가 어려워 보급이 더뎌지는 사이 감자가 널리 퍼지면서 고구마는 원래 이름 감자를 감자에게 내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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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앞섰지만 재배는 어려워
널리 퍼지던 감자에 명칭 내줘
대표 식량작물…115개국 생산
비타민A 보급·혈당 조절 효과
늦여름부터 가을까지가 ‘제철’
고구마는 겸손하다. 고구마는 감자에게 이름을 빼앗겼다. 도입 시기는 고구마가 감자보다 앞선다. 1763년 일본 대마도를 답사한 조엄이 고구마를 조선에 들여왔다. 감자는 19세기 초반 청나라에서 도입됐다. 감자는 한자어 ‘감저’에서 온 말인데 이는 마처럼 생겼는데 단맛이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쉽게 말해 감자는 원래 고구마를 뜻했다. 감자는 ‘북감저’라고 불렀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초창기 고구마 재배가 어려워 보급이 더뎌지는 사이 감자가 널리 퍼지면서 고구마는 원래 이름 감자를 감자에게 내주고 만다. 사실 고구마와 감자는 전세계적으로 볼 때 인류의 주 영양원이 되는 채소 가운데 1·2위를 다투는 사이다.
고구마는 세계 115개국에서 연간 1억2000만t 이상이 생산되며 지구상에서 다섯번째로 중요한 작물이다. 고구마는 비타민B·C·E, 철분, 아연과 같은 미네랄이 들어 있다. 특히 호박고구마처럼 속이 진한 노랑색·주황색을 띠는 경우는 인체 내에서 비타민A로 전환되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 비타민A 결핍으로 어린이의 성장 지연, 감염, 실명 문제가 심각한 지역에서 호박고구마는 꼭 필요한 식량이다. 2016년 호박고구마를 연구·보급한 네명의 과학자가 세계 식량상을 수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육종으로 베타카로틴 함량을 높인 고구마를 보급해 비타민A 결핍에 시달리는 지역 어린이를 구해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밥 대신 고구마를 먹는 사람도 많다. 영양 성분을 보면 그럴 만하다. 생고구마 100g에는 지방은 거의 없고 탄수화물 35.5g과 단백질 1.1g, 식이섬유 2.4g이 들어 있다. 굽거나 찌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섬유질 비중이 증가해 100g당 4.2g(구운 것), 3.8g(찐 것)이 된다.
2022년 학술지 ‘식품생명과학(Food Bioscience)’에 호주 연구진이 고구마가 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22건의 관련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가 실렸다. 고구마는 비타민A와 철분 보급, 혈당과 혈압 조절, 변비 완화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구마에는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이 풍부한데 이로 인해 아침 빈속에 고구마를 먹으면 위산 분비가 자극돼 속이 쓰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아침에 고구마를 먹으면 안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음식을 조금 곁들여 먹는 걸로 충분하다.
가을은 고구마와 함께 온다. 나 같은 먹보에게는 단풍보다 고구마가 더 기다려진다. 겨울철 군고구마 때문에 고구마의 제철을 겨울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구마는 늦여름부터 가을이 제철이다. 겨울까지 저장해두고 먹을 수도 있지만 햇고구마의 그윽한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때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잘 익은 고구마에서는 캐러멜·아몬드·견과류·꽃과 꿀의 냄새가 난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구워서 꺼내면 마치 꿀을 구운 것만 같은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버터를 따로 넣지 않아도 버터 냄새가 난다. 실제로 버터 속 향기 물질이 고구마에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레스토랑 ‘피공일’에선 이지호 셰프의 숯불에 구운 고구마를 아이스크림·팥앙금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그야말로 인생이 달콤해지는 듯한 맛이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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