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칼럼] 옥스퍼드大는 왜 차인표의 ‘위안부 소설’을 채택했나?

김윤덕 기자 2024. 8. 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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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서 총성 울리는 세계
‘훈 할머니’ 얘기 모티브로 용서·연대 강조한 소설
친일 단죄 몰이 한창인 한국 정치권도 일깨워
광복 80년, 한일 수교 60년… 과거사 대전환점 만들어야
지난 6월 '옥스퍼드 한국문학 페스티벌'에 초청돼 강연하고 있는 배우 차인표. 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훈 할머니를 모티프로 쓴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다음 학기 옥스포드대 아시아중동학부의 한국학 필수교재로 채택됐다. /주영한국문화원

배우 차인표가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군을 막 제대하고 돌아온 97년 여름이었다. TV를 켜니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의 할머니가 공항 게이트를 걸어 나오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열여섯 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캄보디아 오지에서 55년을 살아온 훈 할머니. “죽기 전 고향에 꼭 와보고 싶었다”는 칠순의 여인이 입국장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 차인표는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과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소설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일본 군대를 폭풍처럼 응징하고 통쾌하게 복수하는 줄거리로 쓰려고 했는데 분노만으로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포기했던 원고를 다시 집어든 건, 두 아이 아빠가 된 8년 뒤다. 차인표는 분노와 복수를 용서와 화해로 승화하는 반전을 택했다. 백두산 기슭 ‘호랑이 마을’ 주민과 그곳에 주둔하던 일본 병사들이 태풍에 쓰러진 벼를 합심해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차인표는 “우리 슬픈 역사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 보니 차마 응징과 복수를 선택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09년 출간됐지만 “아무도 안 읽어” 절판된 이 소설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든 건 지난 6월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아시아중동학부 한국학 필수 교재로 차인표의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채택한 것이다. 선정 이유가 눈길을 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는 요즘, 용서와 연대라는 화두를 던졌다”고 했다. 아시아중동학부 조지은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자극적인 스토리와 치열한 복수로 끝나는 작품들과 달리 ‘엄마 별’이 필요한 이들에게 따뜻한 공감과 연대를 호소하는 이야기가 문학적 울림을 준다”고 했다. 옥스퍼드대는 이 소설을 대학 내 모든 도서관에 비치하기 위해 영어·독일어·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빌미로 다시 불붙은 정치권의 친일 공방을 관전하다 엉뚱한 상상을 했다. ‘죽창가’를 부르며 친일·반일 감별에 나선 이들은 차인표를 어느쪽으로 분류할까? 북한 주민의 처참한 실상을 그린 영화 ‘크로싱’에 출연하고,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시위를 했으며, 소설에선 일본군을 미화했으니 ‘뉴라이트’인가? 아들과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던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 소설 속 무대를 백두산 기슭의 호랑이 마을로 설정했으니 좌파인가?

친일몰이는 확실히 퇴행적이다. 태어나 보니 선진국에 살고 있는 한국의 10대, 20대는 ‘슬램덩크’를 보며 ‘오타니 녹차’를 마시고 ‘푸른 산호초’를 일본어로 따라 부르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 사석에서 만난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 특파원은 “K팝, K드라마에 매료된 일본 청소년들 대화에 ‘진짜’ ‘졸라’ ‘대박’이란 한국말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일본과 무역업을 하는 한 사업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들려줬다. 도쿄에서 만난 한 고교생이 “서울에 가보니 한국이 일본보다 잘사는 것 같던데 왜 우리에게 돈을 달라고 하느냐” 묻더란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일본을 앞질렀다.

문제는 철 지난 일본 콤플렉스에 갇혀 있는 기성세대와 정치권이다. 10위권 경제 대국에 살면서도 ‘한국은 약소 민족이라 지금도 수탈당하고 있다’는 망상에서 헤어나질 못 한다. 거대 야당은 그 망상을 파고든다. 혈세 1조6000억원을 낭비시킨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도 모자라 친일 공직자 색출, 독도 지우기 의혹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로 인해 실추될 국격, 국익엔 관심이 없다. 북·러·중 위협 속에 안보와 경제에 관한 한 같은 배를 탔다고 할 수 있는 일본을 적대시해서 우리가 얻을 실익은 무엇인가.

지구상 모든 분쟁이 그렇듯, 증오와 저주는 보복의 악순환을 낳는다. 그곳에 승자는 없다. 용서는 굴욕이 아니다.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는 가장 용기 있는 방법이자, 승자가 패자에게 베풀 수 있는 특권이다. 광복 80년, 한일 수교 60년을 앞두고 과거사에 대한 대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교토국제고 우승이 감동을 준 건, 고시엔 구장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져서가 아니라, 이 교가를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들이 입 모아 함께 부르는 모습 때문이었다. 어쩌면 용서와 연대는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가장 ‘실용적인’ 대안이다. 폭풍에 쓰러진 벼를 살리기 위해 호랑이 마을 주민과 일본 병사들이 다 같이 팔 걷고 뛰어든 건 매우 현실적인 대처이기도 했으니까. 거기서 생산될 쌀은 모두를 먹여 살릴 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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