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는 왜 원폭 추도식에 이스라엘 초대하지 않았을까 [방구석 도쿄통신]
외교문제 비화했던 이스라엘 불초청 사태
市에 항의연락 4000건…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같냐”
일각선 옹호 “서방은 핵무기 피해 몰라, 이게 일본의 임무”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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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초 일본 나가사키시(市)에서 ‘원폭의 날’을 기념해 열린 평화기념식은 뜻하지 않은 외교 문제로 비화했습니다. 당시 시 당국이 행사에 이스라엘 외교부 대표를 초대하지 않자 미국·영국·유럽연합(EU) 등 주요 해외 대사들이 이에 거세게 항의, 일제히 행사를 보이콧해 벌어진 사태였는데요. 이후 나가사키시엔 4000건에 육박하는 항의 전화·메일이 쏟아졌다고 27일 교도통신·아사히신문 등이 보도했습니다. 하루 최소 200여 건의 불만이 접수된 것입니다.
스즈키 시로(鈴木史朗·57) 나가사키 시장은 이날 회견에서 이러한 소식을 전하면서, “원폭의 날 평화기념식에 (주일) 이스라엘 대사를 불초청한 건 결코 정치적 이유에서가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G7(7국) 국가들로부터 실망의 메시지가 전해졌고, 실제로 일본을 뺀 모든 G7 국가들이 대사를 파견하지 않았다. 어떠한 판단을 해도 정치적 영향은 막을 수 없단 걸 알았다. 이는 내가 반대된 판단을 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나가사키는 태평양전쟁 때인 1945년 8월 9일 미군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지역입니다. 시 당국은 당시 피폭으로 숨진 수십만명의 희생자를 추도하는 차원에서 매해 평화공원에서 행사를 열고 있어요. 희생자를 추도하는 나가사키 행사에 최근 전면전 위기가 고조된 중동 분쟁 불씨가 튀어 외교 대립이 발생한 셈입니다.
당시 나가사키시의 결정을 두고 서방에선 전면적인 비판이 쏟아진 바 있어, 해당 사태에 대한 일본 언론의 관심도 아직까지 뜨겁습니다. 사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앞서 나가사키시는 원폭 피폭 79년째를 맞아 지난 9일 개최한 희생자 추도 행사에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를 비롯,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 주일 대사에게도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어요. “러시아와 그 우방국 벨라루스, 그리고 이스라엘 대사를 초대하지 않는다”면서 “엄숙한 분위기에서 행사를 치르기 위한 결정”이라고 당국은 설명했죠.
나가사키시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행사장에서 불시에 벌어질 규탄 시위나 테러 등을 우려해 올해로 3년째 원폭 관련 행사에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작년 10월 자국 영토에 대한 기습 공격을 계기로 하마스와 전쟁하고 있는 이스라엘에도 같은 판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반면 주일 팔레스타인 대표부 측엔 “행사 실시에 지장이 없다”는 판단에 초청장이 보내졌고 실제로 일등참사관에 행사장에 자리했습니다.
이에 미국·영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 대사들은 “이스라엘을 러시아와 같은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며 속속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스즈키 시장은 거듭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 대사는 “원폭 희생자를 애도하는 목적의 행사가 정치화되어선 안 된다”며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사태 당사자인 길라드 코헨 주일 이스라엘 대사도 나가사키시의 결정에 대해 “행사 본연 목적에 반하는 것으로 세계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며 유감을 표했었고요. 줄리아 롱바텀 주일 영국 대사도 비슷하게 “독립국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그 우방인 벨라루스와 달리,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상대로)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을 같은 취급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나가사키와 함께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의 원폭을 맞았던 히로시마에서는 지난 6일 관련 행사가 개최됐는데요. 나가사키와 다르게 이곳엔 주일 이스라엘 대사가 초대됐습니다. 행사 약 한 달 전부터 현지 원폭 피해자 지원 단체가 “(하마스 주둔지)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을 불러선 안 된다”고 거센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지역 당국이 자체 판단을 내린 것이었죠. 서방 각국 대사들도 당시 히로시마 행사에는 자리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피폭 80주년을 앞두고 국제사회가 추도 행사의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케이신문도 사설에서 “나가사키시는 위령(慰靈)을 위한 행사에 중동 정세 문제를 부주의하게 끌고 가져왔다”며 “이스라엘과 러시아를 동렬로 다뤄선 안 된다는 (서방 대사들의) 우려는 이치에 맞는다”고 전했죠.
미국 전직 외교관인 마크 긴즈버그는 23일 일본 올어바웃뉴스에 “나가사키시는 기념행사와 관계없는 외교 문제를 들고 나와 ‘평화’로 묶일 행사의 신뢰도를 훼손했다”며 “이번 소동은 생각보다 더 길게 각국 외교부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각에선 나가사키의 판단을 옹호하는 반응도 나옵니다. 사태 이후 나가사키시엔 4000건의 항의 연락이 쏟아졌는데, 시의 대응에 찬동하는 연락도 2000여 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매체인 신초샤(新潮社) 포사이트(foresight)도 21일 “이번 나가사키 평화기념식 사태는 이스라엘과 ‘가자 전쟁’을 둘러싼 일본과 유럽의 인식 차이를 부각시킨다”며 다소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매체는 “유럽 등 세계에선 최근 ‘핵 폐기’에 대한 피폭자들의 호소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며 “유럽인들은 핵무기의 진짜 피해를 일본인들만큼 알지 못한다. 시 당국은 중동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과, 친(親)이스라엘적 서방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나아가 “나가사키시가 가자 전쟁에서의 (이스라엘의) 대량 살육에 항의하려면 이스라엘뿐 아닌 (이스라엘에 군사 원조 중인) 미국 대사도 행사에 초대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라며 “다만 미국 대사를 보이콧하면 국제 정치적 반동이 커질 것을 우려해 그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이중잣대”라고 덧붙였습니다.
나가사키시는 내년 행사엔 이스라엘을 초대하게 될까요? 스즈키 시장은 27일 현지 회견에서 “접수되는 의견들을 토대로 (초청 여부를) 다시 판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8월 28일 53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지난 ‘원폭의 날’ 나가사키에서 이스라엘 및 중동 정세를 놓고 불거진 외교 문제와 이후 일본 언론들의 분석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51~52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J팝 붐 중심, ‘파란나시’ 토미오카 “韓日 음악시장 가장 큰 차이는…”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8/14/GBYLLRHSZ5AOHPIX72RG7GG4DY/
‘펀쿨섹’ 고이즈미는 자민당을 쇄신할 수 있을까 ☞ 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4/08/21/GJSLFDDQJVBGDFEZKZOIHKBN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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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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