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깃털처럼 가벼워진 대법원장이란 자리
‘사법 흑역사’ 만든 김명수 전 원장
대법원장의 명예와 무게 점점 추락
존경받는 대법원장 없는 건 불행
2011년 양승태 대법관은 퇴임 당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고위 법관들이 퇴임 직후 변호사로 개업해 거액의 수임료를 챙겨 비판 여론이 일 때였다. 퇴임한 그는 백담사에 머물며 보름간 설악산을 다녔고 네팔로 가서 트레킹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법원장 후보 인사 검증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미국에서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가 이 대통령의 설득으로 대법원장이 됐다. 당시 그 초연함이 화제가 됐다.
그는 대법원장이 된 후에도 “전관예우가 법조 병폐로 지적되는 것은 슬픈 현실”이라고 했다. 해결책 중 하나로 평생법관제를 제시했다. 대법관에 못 오른 법원장들이 하급심에 복귀해 재판하면서 65세 정년을 채울 수 있게 한 것이다. 그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일이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 변호사 등록을 하고 대법원에 올라온 기업 형사 사건을 수임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간 전직 대법원장들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거나 로펌에 들어가도 사건 수임 대신 자문·고문 역할만 했다. 대법원장이란 자리의 무게, 그리고 사건 수임이 법관들에게 줄 부담 등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직 대법원장이 하급심 사건도 아니고 대법원 사건을 수임했다. 그 자체로 부적절한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어느 법조인은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퇴임 후 7년간 아무런 활동을 못 했다.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으로 6년간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느라 큰 고통을 겪었고, 재판 진행 중에 폐암 수술도 받았다. 올 초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변호사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생활’을 위해 사건을 수임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은 그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개 50대 후반에 임명되는 우리 대법관들은 임기가 종신제인 미국과 달리 임기 6년을 마치면 60대 초반 정도 나이여서 변호사 개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정년이 70세인 대법원장도 다를 게 없다. 10여 년 전 ‘청백리’로 불렸던 어느 대법관은 퇴임 후 아내가 운영하던 편의점에서 일하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이라는 말과 함께 대형 로펌으로 갔다. 그 직후 대법원 사건 수임 상위권을 기록했다고 한다. 퇴임 후 후학 양성에 기여하겠다고 해놓고 로펌으로 직행한 대법관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전관예우 의혹을 계속 부추긴다는 것이다. 한때 전직 대법관들이 대법원 사건을 독점하면서 ‘도장 값’으로만 수천만 원씩 받아 간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 어느 변협회장이 재임 시 대법원 사건 수임을 조사해 봤더니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변호사가 선임된 대법원 사건의 70~80%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전직 대법원장까지 대법원 사건을 수임했으니 그게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치겠나. 당장 대법관들도 부담스러울 테고 양 전 대법원장 측에 유리한 결론이라도 나오면 바로 전관예우 의심을 받을 것이다.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민의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법부 역사에선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 외에 그런 대법원장이 없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권 편에 서서 법원을 정치판처럼 만들고 거짓말까지 했다. 사법의 흑역사다. 그런데 재판·법원 행정에서 출중했다는 평을 들어온 양 전 대법원장까지 대법원 사건 수임으로 대법원장 자리의 명예와 무게를 또 낮췄다. 대법원장 자리가 이렇게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건 나라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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