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방벽은 2.5m, 북한은 2.3m… 홍수 나면 모든 물은 신의주로 온다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고질적 후진국형 人災… 10년간 기상 재해로 1600명 넘게 숨져
핵·미사일 개발 대신, 그 돈으로 홍수 방지 대책부터 세워라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 이유 중에는 의외로 날씨 예보도 있다. 당국은 방송 내용이 거짓 선동을 위한 가짜 뉴스라며 병사와 주민들을 교육했다. 하지만 남쪽에서 들리는 날씨 예보가 북한 기상수문국의 예보보다 정확했다. 확성기 방송으로 “인민군 여러분, 오늘 오후에 비가 오니 빨래를 걷으세요”라고 하면 북한군 부대에서 실제로 빨래를 걷었다고 한다. 날씨 예보에 대한 신뢰는 다른 방송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확성기 방송은 점차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북한 기상수문국 출신으로 전방에서 근무했던 탈북자 K의 증언이다.
모든 국가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폭우와 홍수 및 가뭄 등을 경험하지만 사전 대응 체계에 따라 피해는 천양지차다. 대응 체계가 부실한 북한은 기상이변에 의한 재해가 심각한 후진국 국가로 분류된다.
이번 여름 평안북도 신의주와 의주군 및 압록강 상류 자강도 일대에서 발생한 수재(水災)는 북한의 재해 대응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정은이 이달 초 다닥다닥 설치된 천막 숙소를 찾아, 아이들을 끌어안고 주민들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영상으로 소개됐다. 천막에 빽빽이 들어찬 수재민들은 김정은 전용 열차에 싣고 온 구호 물품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수해 복구 기간 어린이 등 1만5000여 명을 평양으로 데려가 보호하겠다는 중대 조치와 피해 복구를 약속했다. 김정은은 애민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수해 아이들을 만나고 평양에서 특식을 제공했지만 깡마른 아이들은 당황한 모습이다. 1500여 명 이상의 사망 및 실종자를 감추기 위한 민심 조작 전술이다.
당국은 김정은의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무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조선중앙TV로 내보냈다. 강물이 불어난 상태가 예사롭지 않아 혹시 보트가 나뭇가지에 걸려 전복될 경우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김정은이 수영을 할까 하는 호기심으로 여러 차례 화면을 돌려 보았다. 나뭇가지에 이마가 가볍게 부딪히는 경미한 접촉 사고(?) 이외에 별 특이 사항은 없었다. 김정은이 연설한 전용 열차에는 출시 4개월 된 3억원짜리 신형 벤츠 마이바흐 전용차가 실려 있었다. 차량 번호판 넘버는 ‘7·271953′였다.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을 의미했다.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국경 지대 수재민들에게 웅장한 마이바흐 전용차는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이라 놀란 표정들이었다.
북한의 수재 대응책 중에서 특이한 부분은 남한에 대한 이례적인 비난이다. 김정은은 “한국 쓰레기 언론들은 날조 자료를 계속 조작해내면서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남측 언론들을 맹비난했다. 그는 “피해 지역 실종자가 천 명이 넘는다느니, 구조 헬기가 여러 대가 추락했다는 허위 보도를 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수해 인명 피해는 한 명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현장에서는 매일 시신을 치우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위성사진과 방송에 나타난 침수 피해를 과장 왜곡 보도를 할 이유도 없다. 사태가 심각하니 오히려 남한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김정은이 목소리를 높인 대남 비난의 저의는 두 가지다. 우선 구체적인 피해 실상이 외부로 알려지는 데 대한 불안감과 열등감의 발로다. 일반 주민들이 알기 어려운 남측 보도를 최고지도자가 직접 반박하는 것은 민심 이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내부 결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조짐은 사전에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은은 정부가 지원 의사를 밝힌 바로 이튿날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며 “이러한 모략 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자력 복구를 강조했다.
다음은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을 둘러보고 빈약한 구호 물품을 던져 주는 것 이외에 애민 지도자가 추가로 하는 일은 없다.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기상 예보 체계를 개선하고 제방 구축 및 관개 시설 개선 등 종합적인 홍수 관리 대책은 구호에 불과하다. 미사일 등 엄청난 무기 개발 예산을 전용하여 근본적인 홍수 대책을 추진하는 과업은 절대 하지 않으니 기상 재해는 반복된다. 특히 밀가루 등 구호 물품을 푸틴 대통령이 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평양 수뇌부가 강조하는 ‘애민’은 허망해졌다.
과거부터 압록강 위화도 등 의주 일대는 홍수 침수 지역으로 유명했다. 큰 비가 올 때마다 서해 만조로 물이 역류하여 제방이 무너지고 저지대가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해서 중국은 단둥 쪽 홍수 방지 방벽을 2.5m로 높였다. 반면 신의주 쪽은 2.3m라 홍수가 나면 모든 물이 신의주로 밀려들어 온다. 압록강 홍수 피해는 최고지도자의 직무 유기가 원인이다.
북한의 자연재해는 고질적인 연례 행사다. 과거 1990년대 중반 홍수와 왕가뭄에 의한 기근으로 최소 100만명 이상이 사망한 ‘고난의 행군’ 시기는 제외하더라도 최근 3년 동안에만도 홍수, 가뭄, 해일 및 태풍이 계속 발생했다. 세계재해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1991∼2023년 간 북한의 기상 재해는 총 43회 발생하여 연평균 1.3회 수준이다. 2003년 이후 10년간 기상 재해로 인한 총 사망자 수는 1672명으로 연평균 167.2명 수준이다. 미확인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사망자는 배로 증가한다.
자연재해는 사전 대응이 우선이다. 대책이 부실하면 자연재해에 그대로 노출되고 미봉책으로 대응한다. 김정은은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가 발생한 함경도 지역을 시찰한 뒤 평양시 노동당원 1만2000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수도 당원 사단’을 현장 복구에 파견했다. 하지만 피해는 매년 반복되며 북한 당국은 자연재해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 만큼 무대책의 후진국형 대형 인재(人災)는 불가피하다.
북한은 1975년에 세계기상기구(WMO)에 가입했으나 국제 협력은 제한적이다. 기상 정보를 민감한 군사 정보로 여기다 보니 외부와 기상 정보 공유가 어렵다. 북한 기상수문국은 기상 예보율 정확성이 90%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신뢰는 바닥이다. 북한의 기상 예보는 자체 정보를 토대로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한다. 러시아제 구호 물품을 가지고 현장을 방문하기보다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고 그 돈으로 홍수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흉흉한 민심을 달래는 첩경이다. 평양은 성난 민심이 언젠가 수령의 고급 외제 승용차를 한 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동서고금의 전례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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