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문병기]美 ‘주택 위기’ 대선 쟁점 부상… 포퓰리즘 공약 경쟁 우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4. 8. 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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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후 임대료 상승 본격화… 위스콘신 등 대선 경합주서 많이 올라
NPR “美 주택 부족 최대 700만 채”
해리스-트럼프 “주택 위기 해결” 공약… 감세-규제 완화 경쟁에 포퓰리즘 우려
저가주택 위주 공급에 중산층은 불만… “교통 체증, 집값 하락 우려”
올 6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서부 콜로라도주 엥글우드의 주택가에 ‘주택 판매’를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최근 미국 곳곳에서는 주택 판매 가격과 임대료가 치솟아 저소득층의 주거난이 고조되고 있다. 이 사안은 11월 5일 대선의 주요 의제로도 부상했다. 엥글우드=AP 뉴시스

포퓰리즘 우려 높은 美 주택난 해법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5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약 30분 떨어진 버지니아주 타이슨스코너. 대형 쇼핑몰과 호텔이 밀집한 이곳의 한 22층 건물 앞에 ‘접근 금지’라는 붉은색 글씨가 적힌 팻말이 보였다. 한때 일대에서 가장 큰 호텔이었지만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후 적자가 쌓이면서 문을 닫았다. 약 4년간 버려져 있던 이 호텔은 최근 리모델링 계획이 확정됐다. 지역 정부의 지원을 받아 544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저소득층 아파트로 개조하는 사업이다. 이 호텔에서 약 500m 떨어진 자동차 매장 또한 최근 문을 닫았다. 이 매장 역시 저소득층을 위한 20층 아파트 건물 2동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11월 5일 미국 대선이 약 70일 남은 가운데 최근 주택 문제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이후 주요 도시의 주택 임대료와 매매 가격이 치솟자 주거난에 취약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서민용 주택 공급을 늘려 달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공영 NPR방송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미 전역에서 최대 700만 채의 주택이 부족하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또한 모두 경제 공약으로 “저소득층용 다(多)가구 주택 확대” 등을 내놓았다. 다만 섣불리 저소득층 주택 공급을 늘렸다가 이에 부정적인 중산층 유권자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타이슨스코너에서 만난 주민 빌 버드 씨 또한 “저가 주택이 늘어나면 교통 체증이 심해지고 인근 지역의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며 “이사를 고민 중”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두 대선 후보의 저가주택 공급 확대 공약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 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해리스 “세제 혜택” vs 트럼프 “규제 폐지”

해리스 후보는 22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모든 사람이 경쟁하고 성공할 기회가 있는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를 창출하겠다. 이를 위해 주택 부족을 종식시키겠다”고 외쳤다. 그는 자신의 경제 슬로건으로 ‘새로운 미래 구축(New Way Forward)’을 내걸고 그 핵심으로 주택 위기 해결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집권 시 300만 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200만 가구 신규 주택 건설 목표치를 1.5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특히,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2만5000달러(약 3300만 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주고, 이들에게 주택을 분양하는 건설업체에도 세금을 감면해 주기로 했다. 건설업계의 세금 부담을 줄여 저렴한 주택을 더 많이 짓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또 주택 건설에 관한 규제 대부분이 연방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소관인 만큼 50개 주 정부의 규제 완화를 유도하기 위해 400억 달러(약 53조 원)의 연방 기금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 후보 역시 공화당 ‘정강 정책’을 통해 생애 첫 주택 구입자 지원과 함께 규제 완화 등을 공약했다. 그는 수차례 “주택 비용을 높이는 불필요한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공화당의 정강 정책은 신규 주택 건설을 허용하기 위해 연방 토지의 일부 구역을 개방하고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게 세금 인센티브와 지원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 경합주 표심 좌우

두 대선 후보가 앞다퉈 주택 위기 해소 공약을 내놓는 것은 이 의제가 대선 승패를 좌우할 주요 경합주의 표심을 가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 웹사이트 ‘렌트닷컴’ 조사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위스콘신주의 주택 판매 중간값은 한 해 전보다 8% 이상 올라 미 50개 주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펜실베이니아주 또한 6% 이상 올랐다. 이 외 네바다, 미시간, 조지아, 애리조나주의 상승세도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2% 올랐지만 주택 비용은 0.4% 올랐다. 전반적인 물가 오름세가 둔화됐는데도 주택 비용만 ‘나 홀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신규 주택 건설은 상당히 줄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으로 건설비와 용역비가 급증하면서 건설업계 또한 신규 주택 건설을 꺼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고금리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또한 오름세를 보이면서 기존 주택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하려는 수요도 크게 줄었다. 역시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2019년 8월 이후 현재까지 미 전역의 주택 재고가 27% 감소했다.

● 포퓰리즘 우려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타이슨스코너의 한 호텔 전경.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고객 감소로 문을 닫은 이 호텔은 조만간 저소득층용 아파트로 거듭난다. 타이슨스코너=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두 대선 후보가 주택 위기 해소를 외치고 있지만 그 해결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선심성 지원이 오히려 중산층 이상의 주택 수요까지 부추겨 주택 가격 상승세를 가속화시키고,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인 거품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마이클 렌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경제매체 ‘포천’에 두 후보 모두 “장기적인 공급 부족의 원인인 규제 의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세부 사안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브라이언 캐플런 조지메이슨대 교수도 “주택 공급을 늘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수요만 늘리는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가 주택 위주의 공급 정책에 부정적인 중산층 유권자의 표심 또한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인근에 저가 주택이 늘어나면 자신들의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내 뒷마당에는 혐오시설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른바 ‘님비(NIMBY)’ 현상이다.

또한 해리스 후보와 트럼프 후보는 현 집값 상승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해리스 후보 측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신규 주택 건설 확대를 위한 규제 개혁에 실패해 주택 공급난이 가중됐다”고 주장한다. 또 트럼프 후보가 공약한 대중국 고율관세 부과 공약이 미국의 수입물가 상승을 야기해 전반적인 고물가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건설비 또한 상승하면 주택 위기가 더 악화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불법 이민자 증가 등이 주택 위기를 가중시켰다”고 맞선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미국은 물론이고 많은 서방 국가에서 주택 위기가 불법 이민자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극우 포퓰리즘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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