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비치’ 고민시·‘개구리’ 윤계상·‘술래’ 이정은…“외면이 가장 무서운 것” [인터뷰] 

2024. 8. 2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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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배우 고민시ㆍ윤계상ㆍ이정은 인터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진다.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지고, 밤거리를 걷다 밀려드는 인파에 깔리고, 수학여행 중 배가 침몰한다. 그것이 아니라도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많고 많은 사건들이 매일같이 일어난다. 아무리 긴긴 시간이 흘러도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들. 쿵 소리가 잦아들면 우리는 그 사건을 서서히 잊고 외면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총 8회차 중 7회를 이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했다고 알려진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그 소리를 들을 이가 아무도 없다면, 소리가 난 것으로 볼 수 있는가”를 인용한 문장이다. 버클리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知覺)된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드라마는 이와는 다른 사유를 던진다.

드라마에선 두 개의 시간대에서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진다. 2001년 7월의 레이크뷰 모텔 살인사건과 2024년의 펜션 살인 사건. 교묘한 톤 차이를 더했을 뿐 시점도 시대 구분도 모호하게 만든 드라마는 다소 불친절해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런 덕에 지금까지도 드라마는 ‘호불호’가 갈린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벌어지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흉악 범죄’. 그 사건으로 인해 ‘일상의 공간’이 파괴된 2001년의 구상준(윤계상)과 2020년대의 전영하(김윤석)의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엮인다. 영어 제목은 ‘더 프로그(The frog)’다. 제목처럼 드라마에선 흉악범(2001년 지향철, 2024년유성아)들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삶이 파괴된 개구리(구상준, 전영하)의 고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연출은 ‘미스티’, ‘부부의 세계’의 모완일 감독이 맡았다.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드라마는 공개 3일째인 지난 26일 기준 넷플릭스 시리즈 중 시청 순위 세계 5위에 올랐다. 한국에선 25~26일 이틀 연속 1위다. 엇갈린 반응치곤 괜찮은 성적표다. 이 드라마를 이끄는 2024년의 살인마 고민시, 2001년의 개구리 윤계상, 두 시대를 잇는 경찰 이정은을 만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고민시 [넷플릭스 제공]
‘돌을 던진 자’…인생 캐릭터 만난 ‘살인마’ 고민시

“왔어요?”

검은 눈동자는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펜션 주인 영하(김윤석)의 차를 작정하고 들이받은 뒤 돌아와, 태연히 그림을 그리며 말할 때였다. 스파게티 접시에 얼굴을 처박아도 그의 눈과 입은 웃었다.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에 자기연민이 뚝뚝 묻어나는 나르시시스트. 원하는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한 마디로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그는 2024년에 산다.

“좀처럼 보기 드문 ‘코리안 비치’라는 해외 시청자의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게 참 좋았어요.”

배우 고민시(29)가 20대의 마지막에 ‘인생캐’를 만났다. 그가 연기하는 유성아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는 ‘돌을 던지는 자’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필모그라피를 확장해왔지만, 이토록 기괴한 인물은 없었다. 고민시는 “한국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인데다 대본 자체가 주는 서늘한 기운이 내내 묘했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생각도 못했던 캐릭터와의 만남이라고 했다. ‘캐스팅 비화’가 있다. 오디션을 위한 모완일 감독과의 두 번째 미팅 자리였다. 이전의 오디션과는 달리 그날따라 고민시는 큐빅이 박힌 블랙 스트랩 구두를 꺼내 신었다. 모 감독은 고민시에게 “구두가 예쁘다”며 “평소에도 신는 거냐”고 물었다. 3초간 구두를 바라보다 “특별한 날에만 신는 거예요”라고 답하는 고민시에게서 모 감독은 ‘유성아’를 봤다는 답을 들려줬다. 그가 캐스팅된 이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넷플릭스 제공]

이 작품에 ‘선택받은’ 고민시는 그날로 유성아가 되기로 했다. 다이어트는 첫 번째 준비 과정이었다. “인생 최저 몸무게”라는 43㎏까지 줄였다. 가느다란 뒷목부터 이어지는 척추뼈가 토독토독 튀어나왔다.

“보다 날 것, 동물적인 느낌과 함께 기괴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을 열심히 했고, 식단을 극단적으로 줄였어요. 하루에 계란 두 개, 조미김만 먹었죠. 그래도 촬영장에선 배고픔과 힘듦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만족감으로 충만했어요.”

유성아 역시 스토리가 없는 인물은 아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재력가 아버지와 그를 위협하는 전 남편과의 관계는 유성아의 결핍을 상징한다. 고민시는 그러나 “모든 전사와 서사를 지우고 오로지 납득할 수 없는 살인마로만 부각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드라마에선 내내 아름다운 광기가 고민시를 휘감는다. 그에겐 “아름다워야 한다”는 과제 역시 주어졌다. 찰랑거리는 똑단발에 화려한 의상,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광기 어린 눈동자. 고민시가 빚어낸 유성아는 장면 장면마다 묘한 미장센을 만들었다. 화가로 나오는 유성아가 그리는 원색의 추상화가 고민시와 어우러져 TV라는 화폭에 담겼다. 깡마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격렬한 액션 장면도 볼거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고민시 [넷플릭스 제공]

“감독님께서 유성아는 악한 인물로만 그려지다 보니 계속해서 다음 행동을 궁금하게 만들려면 보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셨어요. 워낙 납득이 안 가는 인물이다 보니, 아름다움을 통한 ‘보는 재미’를 가져야 한다는 판단이셨죠. 그래서 외적으로도 굉장히 노력했어요. (웃음)”

지난 몇 년 사이 고민시는 가장 주목받는 20대 여배우로 떠올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시즌3,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비롯해 tvN ‘서진이네’ 시즌2의 고정 자리까지 꿰차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나의 강점은 쉴새없이 일하는 것”이라며 “절대적으로 현장을 사랑하다 보니 현장에서 후회없이 일하며 다양한 역할에 두려움 없이 임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고민시의 이름은 ‘높은 곳에서 멀리 보라’는 의미다. 고민시가 걷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늘 다음이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질리지 않고,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늘 궁금함을 주는 배우가 된다면 좋겠어요. 아직은 매번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에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넷플릭스 제공]
“우연히 돌에 맞은 개구리를 보는 자” 술래 이정은

강력계 형사 윤보민. 그의 별명은 술래다. 조용히 관찰하며 사건을 파악한다. 굳게 다문 입, 외양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 하지만 그의 얼굴엔 대체로 표정이 없다. 그는 시간과 시간을 연결하고, ‘돌을 던지는 자들’을 솎아낸다.

배우 이정은(54)은 이 드라마를 통해 인생 첫 ‘형사’ 캐릭터를 만났다. 그는 “윤보민은 섣불리 행동하는 대신 피해자가 입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별명이 ‘술래’라는데 술래치곤 움직임이 없다.

“시청자 반응 중에 왜 아무 것도 안 하고 지켜보기만 하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뭘 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보민의 두 개의 시간대를 산다. 2001년 연쇄살인범의 범죄 현장이 된 모텔과 소시오패스 살인마의 집착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2020년대 펜션 사건을 잇는 연결고리다.

이정은은 “윤보민은 우연히 돌에 맞은 개구리를 보는 사람”이자, “쿵 소리가 나지 않아도 뒤돌아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무관심과 외면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면하지 않고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피해자’를 보는 사람이다. 그는 “윤보민은 주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성실함을 가진 인물”이라고 했다. 그 모습이 이정은과 닮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넷플릭스 제공]

“경찰 역을 꼭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이 나이에 제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을 표현하면 후배들게에도 나중에 비슷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관찰자였던 술래가 마침내 움직이 시작할 때 시청자들은 ‘정의 구현’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경찰의 촉으로 무장한 이정은의 눈빛은 살인마를 좇는 그만의 광기로 버무려졌다. 정작 그는 “윤보민이 행동하는 수난보다 내내 가만히 관찰하는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했다.

이정은의 필모그라피는 다채롭다.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한 그는 ‘걸그룹 댄스’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50대의 몸을 가진 20대 취준생(‘낮과 밤이 다른 그녀’), 판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로스쿨’), 위풍당당하고 괴기스런 입주 가정부(‘기생충’)로 무수히 많은 모습을 꺼냈다. 그는 “장르를 생각하고 작품을 정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왜 연기를 하냐고 물어본다면, ‘좋아서’라고 대답하게 돼요. 새로운 시도를 해야 제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네?’ 하는 폭을 늘려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색다른 연기를 하는 것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고 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넷플릭스 제공]
‘돌에 맞은 개구리’ 윤계상…“모른 척 덮으면 안된다는 것 알게 돼”

“우리 같은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개구리.”

무심코 던진 돌에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왜 하필 나였냐”고 울분을 토한다. 돌을 던진 사람은 말한다. “내가 가는 그 길 위에서 당신이 있었다”고, “왜 거기에 있었냐”고. 두려움이 가득 찼던 갈색 눈동자엔 황망한 상실이 채워진다.

윤계상의 시대는 2001년으로 돌아간다. 한적한 시골 마을, 오랜 고민 끝에 빚을 내 사들인 모텔에서 열세살 아들을 둔 부부는 여행객들을 받으며 성실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평범한 일상’이 깨진 것은 연쇄살인범이 모텔에서 살인을 저지르면서다.

2001년 ‘뉴 논스톱’을 시작으로 ‘발레교습소’(2004), ‘범죄도시’(2017)까지 매작품 새 얼굴을 꺼내고, 매 작품 그 배역에 딱 맞는 모습으로 선다. 이번에도 윤계상은 영락없이 ‘돌에 맞은 개구리’ 구상준이었다. 윤계상이 이 드라마를 선택한 것은 ‘새로움’ 때문이었다.

그는 “판타지와 멜로 드라마는 흔하지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기존의 대중성을 가진 드라마는 아니었다”며 “무언가 새롭고 색다른 대본을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 작품은 잔향이 짙게 나는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일상이 망가진 구상준을 마주하며 윤계상 역시 전에는 쉽사리 와닿지 않았던 감정들을 안게 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윤계상 [넷플릭스 제공]

“‘아무도 없는 숲속’이라는 것은 외면하는 사람들의 시선, ‘나무가 쿵 쓰러진다’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것, ‘소리가 들렸는가 안 들렸는가’는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 들렸다’고 한다면 모른 척 하는 거죠.”

구상준은 사건의 간접 피해자다. 살인마가 죽인 직접 피해자가 아닌, 어쩌다 보니 사건에 휘말린 ‘모텔 사장’이다. 하지만 상준의 가족은 살인마를 마주하고, 토막난 시체를 목도하며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난다. 그는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구상준의 감정이 잘 드러난 장면은 감독에 갇힌 연쇄살인마를 찾아가 ‘왜 나한테 그런 거냐’고 물을 때였다”며 “모든 사건을 겪은 뒤 살인범과 대면하는 이 장면을 찍을 당시 정말 지옥 같았다”고 돌아봤다.

구상준의 시간은 과거로부터 흘러 2020년대로 가닿는다. 노년의 상준을 보여주기 위해 윤계상은 무려 13~14g이나 감량했다. 그는 “하루에 닭가슴살 하나만 먹고 굶었다”며 “식욕을 열심히 참으면 누구나 살을 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이어트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그는 “살을 때면 얼굴이 쭈글쭈글해질 중 알았는데 내가 골격이 작아 생각보다 어려보였다”며 “분장을 두 시간이나 하고 CG(컴퓨턱래픽)를 입혀 완성한 모습”이라고 했다.

노년의 상준이 담아내는 무게는 윤계상이 발견한 이 드라마의 또다른 메시지다. 사건 이후 20년이 지나 치매 노인이 된 그는 여전히 2001년의 트라우마에 갇혀 산다.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은 고통과 사건들이 겹겹이 쌓이면 한 사람의 삶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회의 여러문제들, 크고 작은 사건을 직접 겪지 않더라도 그 이면에 다른 문제들이 존재하고 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일이든 외면하지 말아야겠구나, 외면이 가장 무서운 것이구나, 모른 척 아닌 척 덮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배우게 됐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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